한국서도 터진 제목학원 예능…원조는 '가부키'라는데[日요일日문화]
제시어 하나로 답변 내놓는 형태
재치있는 답변이 관건
예능 등 다양한 형태로 변화
"랜덤 사진 보고 한마디!"
침대에 앉아 멍하니 있는 산타클로스 사진이 화면에 뜨고, 잠깐의 정적 끝에 개그맨이 대답합니다.
"12월…26일이라고?"
그리고 참가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죠. 모두가 인정할만한 재치 있고 재미있는 답변이면 노란색 화면이 닫히고, 이후 'IPPON'이라는 화면이 뜨는 이 예능. 요즘 우리나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일본의 제목학원 예능, '잇폰 그랑프리 (一本グランプリ)의 한 장면입니다.
이 예능처럼 하나의 주제를 주고 사람들이 재치 있게 다양한 답변을 내놓는 것을 '오오기리(大喜利)'라고 하는데요. 사실 일본의 전통극 가부키가 원조인 것 아셨나요? 생각보다 전통 있는 개그 형식인데요. 오늘은 제목학원으로 알려진 일본의 오오기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오오기리는 에도시대 가부키 공연에서 유래했습니다. 원래는 오오기리는 지금의 기쁠 희(喜), 이로울 리(利) 자를 쓰는 게 아니라 발음은 같은데 다른 글자로 '大切り'를 썼다고 합니다. 끊을 절(切)자인데요. 키리(切り)라는 뜻은 그래서 잘라낸 토막을 의미합니다. 연극에서는 마지막 막을 뜻하는데요. 특히 그날 상영하는 공연 중 두 번째 공연의 마지막 장면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서 클 대(大)자를 붙여 '오오기리(大切り)'라고 부르게 된 것이죠.
다만 이게 잘라낸다는 의미다 보니 딱히 좋은 한자는 아니라, 좋은 뜻의 글자로 바꿔 지금의 기쁠 희자를 쓰는 오오기리(大喜利)로 표시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마지막 장면이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을까요? 당시 극의 마지막 부분은 에도시대 상인 사회를 배경으로 사람 사는 이야기, 의리, 연애 등 인간이 사회에서 겪는 여러 가지 갈등을 주제로 한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를 풀어낸 춤도 함께 극에 올렸다고 하는데요. 이런 연극이 끝나고 만담가들이 별도로 마지막에 선보이는 공연이 오오기리가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오기리는 만담과 수수께끼 등으로 관객들과 소통하는 요소를 포함합니다. 특히 만담에서는 백일장처럼 제목, 제시어 하나를 주고 여기에 대해 각자 재치 있는 답변을 내놓는 '오다이(お題)'가 있는데요. 이것이 지금의 제목학원 예능의 시초죠. 특히 가부키 만담 중에는 객석에서 관객에게 단어 3개를 받아 그 자리에서 즉석에서 이야기를 지어내는 즉흥 연기인 '산다이바나시(三題?)'가 유명합니다.
이 때문에 SNS에서 오오기리는 하나의 공감 가는 주제를 두고 네티즌들이 서로 '나도 그런 재밌던 적이 있다'며 서로 재밌는 '썰'을 풀어나갈 때를 일컬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제목학원 예능은 어떤 룰로 진행되는 것일까요? '잇폰 그랑프리'는 2009년부터 후지테레비에서 방영하고 있는데요. 지금은 지난 2월 이후로는 정기방송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답변에 따라 나오는 '잇폰(一本)'이라는 이야기는 유도나 검도에서 단판에 이기는 '한 방'을 뜻합니다.
우리는 답변하는 모습 밖에 거의 못 보지만, 이 방송은 개그맨 10명이 5명씩 팀을 나눠서 배틀을 펼치는 구도입니다. A팀의 개그맨이 B팀 개그맨의 개그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채점 버튼을 누르는데요. 한 사람당 버튼 2개, 2점을 줄 수 있습니다. 5명이 다 웃어서 10점 만점을 획득하면 '잇폰'을 받게 되는데요. 팀마다 4문제가 나오고, 한 문제당 제한 시간 7분 이내에 얼마나 많은 잇폰을 획득하는지를 겨루게 됩니다.
가장 사람들을 많이 웃긴 각 팀의 MVP가 결승에 진출하게 되고 나머지 8인이 심사를 진행하게 돼 16점 만점을 획득해야 잇폰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난도가 확 높아지죠. 한 문제당 한쪽이 먼저 잇폰을 획득하면 그 턴은 종료되고, 3번의 잇폰을 먼저 받은 사람이 그날의 우승자가 됩니다.
단순히 사진을 보고 나오는 추리도 있지만, 일본의 정치나 문화 녹여내는 딥한 이야기도 많아 출연하는 개그맨들의 구력이 상당한데요. 공식 SNS에는 시청자들을 위한 주제어도 공개되곤 합니다. 지난 2월까지 올라왔던 '사진 보고 한마디'의 예제를 볼까요?
이 사진이네요. SNS에서 꽤 인기를 끌었던 답변은 "도와주세요. 고양이니까!"와 "누르지 말라고 말하기 전에 누르지 말라니까!"라는 것들이었네요.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이 문제는 공식 트위터에서 아예 시청자 중 잇폰을 선정해 경품까지 증정한 케이스였는데요.
잇폰으로 선정된 분은 "세콤 있잖어"를 말한 분이었네요. 조심스러운 산타의 표정이 딱 맞는 것 같죠.
여러분은 어떤 제목이 생각나시나요? 재미있는 답변이 있다면 달아주세요. 해학의 민족끼리 겨뤄봅시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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