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백 치고, 멍 때리기…K뷰티가 '감성' 건드렸더니 생긴 일 [비크닉]

이소진 2024. 8. 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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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피셜

「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팝업의 성지’ 서울 성수동이 최근 K뷰티의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뷰티 브랜드가 국내는 물론 해외로 외연을 넓히면서 외국인 관광객과 20·30 소비자가 즐겨 찾는 성수에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죠. 더마코스메틱 브랜드 ‘닥터지’도 그 대표주자입니다. K뷰티 붐을 이끌며 매년 40% 이상 성장했는데 론칭 21년 만에 처음 팝업을 열었습니다. 지난 5월 25일부터 6월 7일까지 스테이지35에서 열린 팝업 ‘진정 강한 너를 위해: Dr.G Cherish You’ 입니다.

결과는 대성공. 사전 예약은 하루 만에 조기 마감됐고 2주간 약 1만 6000명 이상 방문했습니다. ‘건강한 피부를 넘어 내면을 돌보는 삶의 태도를 응원’하는 브랜드 메시지가 주효하게 전달됐다는 평입니다. 흥미로운 건 이 격전지에서 흥행을 만들어 낸 이들이 팝업을 처음 만들어본 마케터들이었다는 겁니다. 성수에 인기 있던 팝업 공식을 따르지 않고 닥터지만의 정체성을 가진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는데요. 이번 비크닉에서는 이들의 팝업 성공 전략을 들어봤습니다.


스킨케어 브랜드 1위, 닥터지의 성수 팝업 출사표


" 팝업 프로젝트의 시작은 단 하나의 질문이었어요. 고객들이 닥터지를 바라봤을 때 어떤 이미지인가라는 거죠. 브랜드 철학, 헤리티지를 전달하는 동시에 브랜드를 사랑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
5월 25일부터 6월 7일까지 서울 성동구 스테이지35에서 열린 닥터지 팝업 ‘진정 강한 너를 위해: Dr.G Cherish You’

드럭스토어 기초 부문 판매 1위(올리브영 23년 1~6월 기초화장품 누적매출액 기준), 잘 나가는 닥터지가 치열한 성수 팝업에 출사표를 던진 이유는 뭘까요. “제품에 대한 충성도는 이미 높은 상황이었기에 닥터지만이 가진 브랜드 가치와 철학을 이야기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어요.” 프로젝트를 주도한 글로벌마케팅팀은 브랜드의 국내외 마케팅 총괄 및 상품 육성 전략 수립, 시행까지 브랜드와 고객을 연결하는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하고 있어요. 이번 브랜드 팝업 프로젝트는 9년차 손수지 매니저가 리더를, 4년차 박솔혜 매니저가 공간 기획 중심의 업무를 맡고 총 5명의 팀원들과 함께 했습니다.

팝업 준비에 걸린 시간은 대략 6개월.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건 부동산 임장입니다. 자양동 일대부터 서울숲까지 하루에 3만 보 이상 걸어 다니며 적합한 공간을 물색했어요. 역에 내려서 찾아오기 쉬운지, 유동 인구와 공간의 규모는 어느 정도 되는지 꼼꼼히 따졌습니다. 닥터지의 세계관을 표현하기 위해 감정을 주제로 여러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이 중요했는데 마침내 최적의 공간을 찾아냈어요.


샌드백 치고, 멍 때리기… 성공 팝업에는 ‘세계관’ 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와의 협업으로 감정이라는 키워드와 세계관을 팝업 전반에 적용했다. 팝업을 기념해 한정판 제품도 출시했다.
각각의 감정을 기억으로 담아낸 ‘구슬’과 ‘시스템 그래픽’으로 구성한 팝업 그래픽 디자인

팝업에서 장소보다 중요한 건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거죠. 닥터지는 ‘인사이드 아웃 2’와 협업했어요. 손 매니저는 감정을 통해 단단한 자아로 성장하는 주인공 이야기와 닥터지가 같은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고 느껴 협업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해요.
“닥터지의 창업자인 안건영 박사가 어린 시절 얼굴에 화상을 입고, 외모 콤플렉스를 겪었지만 이를 극복했고 피부과 전문의가 되어 같은 고민이 있는 사람들을 돕고자 애썼어요. 피부 고민이 길어지면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는만큼 닥터지는 외면뿐 아니라 내면의 고민에도 관심이 많아요. 방문객들에게 감정을 마주하는 시간을 선물해 주고 싶었어요. 나도 몰랐던 내면을 탐험하고 ‘진정 강한 나’로 성장하는 여정에 초대하고 싶었습니다.”
다채로운 미션들로 감정을 마주하는 2층 ‘감정센터’
팝업 공간은 ‘감정’이라는 큰 주제 아래 총 3개의 섹션으로 나눴어요. 1층 ‘닥터지 이모션센터’에서는 닥터지 브랜드스토리를 살펴보고, 베스트셀러 제품을 직접 사용해 보는 코너를 만들었습니다. 2층 ‘공감센터’는 세 개의 게임 체험을 통해 나의 감정을 탐구합니다. 불안, 슬픔 등 해소하고 싶은 감정 샌드백을 마구 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가 하면, 주어진 시간 안에 LED 패널을 빠르게 터치하는 태핑 조이에 도전하고, 버리고 싶은 감정의 공을 골대에 골인시키는 던지기 게임을 즐기죠. 3층 ‘힐링센터’는 역동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마음을 치유하는 고요한 공간입니다. 미디어아트 월이 설치된 빈백에 누워 내면에 집중해 보고, DIY 존에서 나만의 감정 키링을 만들어보는 식이죠. 타인은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지 공감할 수 있는 거울의 방을 끝으로 투어는 마무리됩니다.

2000명 응답했다, 맥락 있는 경험 설계하기


팝업 기간 동안 하루 평균 1천 명 이상 고객이 현장을 방문했다.

이번 팝업이 흥행에 성공한 데는 ‘사전 홍보’와 ‘입소문’의 힘이 컸습니다. 닥터지는 정식 오픈 전 인플루언서 행사를 통해 화제성을 만드는 데 집중했어요. 기존의 성수 팝업과는 달랐다는 후기가 많아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했죠. 또 기존 고객에게 사전 예약 창구를 열어 기대감을 높였어요. 하루 만에 2주 분량의 사전 입장이 마감되어 내부에서도 놀랐다고 해요. 기존 소비자들이 브랜드와의 만남을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 알게 된 대목이었죠. “닥터지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팝업을 열어보니 브랜드 스토리에 대해 모르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 점에서 오프라인 접점을 만든 건 잘한 선택이었죠.”
감정 버튼을 누르면 그에 맞는 공간 무드를 느낄 수 있는 3층 ‘이모션 포커스 존’과 포토스폿이 된 거울의 방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온라인 포털 사이트에 ‘닥터지’ 언급량이 9배나 올랐다고 해요. 사람들이 방문하고, 경험하고 싶어 하는 팝업을 만들면 결국 온라인까지 선순환되는 구조가 된다는 거죠. 현장에 후기를 남길 수 있는 코너를 마련해 두었는데 2000명이 자발적으로 피드백을 남겼답니다.
“2주간 팝업을 진행하면서 생생한 후기와 고객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어요. 브랜드에 기대하거나 궁금해했던 포인트들을 현장에서 들으니 앞으로 저희가 어떻게 소비자와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지 방향이 잡히더라고요.”
팝업 만족도는 5점 만점에 4.9점. 대부분의 고객은 고객 체험을 최우선으로 설계한 행사에 높은 점수를 줬고, 샌드백을 설치한 감정타파게임존을 50.4%가 가장 즐거웠던 공간으로 꼽았죠.
닥터지 글로벌마케팅팀 손수지 매니저(왼)과 박솔혜 매니저(오) 사진 홍성철
박 매니저는 팝업 성공의 또다른 요인으로 ‘맥락 있는 공간 경험 설계’로 꼽았습니다. “매출도 잡아야 하고 브랜드도 인지시켜야 하고 너무 많은 요소를 넣다 보면 결국 두서없는 팝업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감정 탐구를 통해 내면이 강해지는 경험을 전달하는 것에 집중한 이유죠.” 공간부터 콘텐츠 기획, 운영 그리고 마케팅까지 현장을 통해 얻은 경험은 팝업 기획자들에게도 ‘진정 강한 나’로 거듭나는 기회가 됐습니다.

닥터지는 이제 글로벌을 무대로 더 활약할 예정이라고 해요. 한국에서 이미 잘 알려진 브랜드지만 미국·일본·말레이시아·태국·홍콩 등 해외 시장을 겨냥하고 있죠. 이미 상반기 글로벌 드럭스토어 스킨케어 부문에서 좋은 성적을 달성했어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이들에게 또 다른 도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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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진 기자 (lee.sojin2@joongang.co.kr), 홍성철·장우린 PD, 고은비·최린 인턴PD, 박현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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