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휴가 뒤 '깜짝 카드'…MB 땐 9명 개각, 尹의 구상은?
윤석열 대통령이 5일부터 여름 휴가를 떠난다. 취임 후 세 번째다. 윤 대통령은 휴가에 앞서 지난 1일 참모진과 오찬을 하면서 “모두 휴가를 꼭 쓰라”며 “대신 해외로 가지 말고 꼭 국내로 휴가를 가서 내수 진작에 도움이 되게 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일 “대통령 일정이 유동적이라 언제까지 휴가라고 정확히 말할 순 없다”며 “(휴가 때) 지방에 가게 되면 아마도 군 시설에 갈 것 같다”고 전했다.
역대 대통령에게 휴가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쉼’에 해당하진 않는다. 일상적인 업무에선 살짝 해방될 수 있지만 국가에 긴요한 일을 휴가 중이라고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 대개 머리를 식히면서 향후 정국을 구상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왔다.
1993년 8월 전격적으로 실행된 금융실명제가 대표적이다. ‘남쪽의 청와대’라는 뜻의 청남대(靑南臺)에서 휴가를 마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청와대로 돌아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명령’을 발동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여름 휴가 때는 아니지만 김 전 대통령은 1995년 11월 청남대에서 머문 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구속되는 결과를 낳은 ‘역사 바로 세우기’도 본격화했다. 정국을 뒤흔드는 중요 결단이 청남대에서 이뤄지는 이른바 ‘청남대 구상’이란 말이 그래서 나왔다.
여름 휴가 뒤 대통령의 복귀와 함께 내각과 청와대의 인적 개편이 발표되는 것도 익숙한 장면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3년 차인 2010년 8월 휴가를 마친 뒤 국무총리와 9명의 장관급을 교체하는 개각을 단행했다. 당시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김태호 전 경남지사(현 국회의원)를 휴가 중에 직접 만나 설득하는 과정도 거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8월 첫 휴가에서 돌아와 비서실장을 비롯해 5명의 참모를 교체했다. 취임 6개월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격적인 ‘2기 청와대’로의 변화였다.
국가 원수로서 원래 마음 편히 떠나는 휴가가 아니기는 하지만 유독 휴가 때면 악재가 터지는 대통령의 ‘휴가 징크스’도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4년 차인 1996년 7월 청남대에서 쉬다가 경기도 등의 수해 피해가 커지자 휴가 하루 만에 급거 귀경해 중앙재해대책본부와 국방부를 찾아 인명구조와 재난복구를 지시했다. 이튿날 다시 휴가를 떠났지만, 이틀 만에 다시 서울로 돌아오며 당초 계획했던 9박 10일의 여름 휴가는 물거품이 됐다. 나라 경제가 위태로운 외환위기 속에서 취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첫 여름 휴가를 아예 떠날 수가 없었다.
휴가 측면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장 운이 나빴다. 2004년엔 탄핵 소추로 64일 동안 직무가 정지됐다 복귀한 까닭에 여름 휴가를 따로 가기가 어려웠고, 2006년엔 7월 대포동 2호 발사 실패와 10월 첫 핵실험 실시 등 북한의 무력 도발이 이어지며 청와대를 떠나기 어려웠다. 2007년엔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샘물교회 피랍 사건으로 역시 청와대를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5년 임기 5번의 여름 휴가 중 3번이나 ‘관저 휴가’를 보낸 것이다.
취임 13일 만에 연차를 쓰고, “연차를 다 쓰겠다” 공언할 정도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적극적으로 휴가의 중요성을 강조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휴가 공약을 지키느라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취임 첫해인 2017년 6박7일(근무일 기준 5일)의 여름 휴가를 떠났는데, 휴가 직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했는데도 휴가 기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한·미 정상의 전화 통화는 문 전 대통령 휴가 복귀 직후 이뤄졌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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