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요원 기밀 유출, 간첩죄 무관?…법 사각지대 어쩌나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이 대북요원 신상 등을 유출해 군사기밀누설 등의 혐의로 구속된 가운데, 간첩죄 개정 필요성이 정치권에서 대두되고 있다.
배후를 확인하기 어려운 사이버 공간을 배경으로 대다수 국가 기밀이 새어나가는 상황에서 '적국'에 한정해 간첩 혐의를 적용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다.
3일 정치권과 법조계 등에 따르면, 간첩죄 조항은 형법과 군형법·국가보안법에 각각 마련돼 있다.
일례로 형법 98조 1항은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타 법 조항 역시 '적국'과의 연계성이 확인돼야 적용 가능하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사실상 북한을 유일한 적국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중국 국적을 가진 조선족 등에게 기밀을 유출할 경우 간첩죄 적용이 어렵다. 일각에서 북한이 우리 법체계의 '사각지대'를 무대로 정보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재작년 4월 특수전사령부 소속 대위는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텔레그램을 통해 군사기밀을 넘기고 5000만원가량의 가상화폐를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 된 바 있다.
법원은 해당 사건과 관련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징역 10년을 선고했지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특전사 대위가 기밀을 넘긴 텔레그램 속 '인물'이 북한과 직접 연계됐다는 점을 충분히 증명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정보사 군무원 기밀 유출 사건도 북한과의 연계성을 명확히 입증하기 어려워 간접 혐의가 적용되지 않았다는 평가다. 해당 군무원은 기밀 자료를 조선족에게 넘긴 정황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1대 국회서 개정안 논의
미비점 보완 못하고'흐지부지'
정치권에서는 관련 법 개정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일찍이 형성됐지만, 미비점을 끝내 보완하지 못해 국회 문턱을 넘진 못했다.
실제로 21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지난해 3·6·9월, 3차례에 걸쳐 형법상 간첩죄 개정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당시 여야 의원들은 물론, 법무부와 법원행정처 간에도 이견이 빚어졌다. 적용대상을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할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기존 법체계와의 혼선, '국가 기밀' 개념의 구체화 등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우선 외국을 상대로 하는 탐지·수집·누설이 군사기밀보호법에 규율되고 있다는 점에서 간첩죄 적용 범위 확대는 법체계 간 혼선을 빚을 수 있다는 평가다.
아울러 적국에 대한 간첩죄와 외국에 대한 간첩죄를 구분하는 차원에서 '국가 기밀' 개념이 너무 폭넓게 사용되지 않도록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한국형 FARA 제정될까
"국정원, 여야 유사한 입장"
일각에선 미국의 외국대리인등록법(FARA)과 유사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외국 이익을 위해 활동하려면 반드시 '대리인' 등록을 하도록 하고, 관련 업무수행 등에 필요한 지침도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관련 논의는 미국 연방 검찰이 한국계 한반도 전문가인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선임연구원을 FARA 위반 혐의로 기소한 것이 불씨를 댕겼다는 평가다. 미 연방 검찰은 테리 선임연구원이 미 정부에 외국대리인으로 등록하지 않고 한국 정부를 대리해 왔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국회 정보위원회 여당 간사인 이성권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9일 정보위 업무보고에서 "국정원이 한국형 FARA 제정 필요성에 대해 업무보고를 했다"고 말했다.
정보위 야당 간사인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국정원의 FARA, 국가기술안전연구원법 제정 등 간첩죄 대상 확대 취지의 보고가 있었다"며 "우리(야당)도 이미 형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고 말했다.
형법상 간첩죄 개정안은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 민주당 장경태·위성락·박선원 의원 등이 각각 제출한 상태다.
박 의원은 "여야가 아직 크게 입장차가 없다"며 "국정원, 여야 간 유사한 입장을 갖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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