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시큰둥하던 DAC…대박 터지다 [천억클럽]
신약 성공률은 1% 미만이다. 임상 3상까지 가도 성공 확률은 절반이 채 안 된다고 알려졌다. 이마저도 시간과 비용이 충분히 투자됐을 때 얘기다. 평균 15년 동안 최소 1조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이쯤 되면 신약 개발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일’에 가까워 보인다. 그래서일까. 국내 대기업 바이오 계열사도 쉽게 신약 개발을 건들지 못한다. 이 어려운 길을 택한 바이오텍이 있다. 2016년 설립된 오름테라퓨틱 얘기다. 창업자 이승주 대표는 사업 철학을 사명에 담았다. ‘오름’은 험악한 산을 오르듯, 힘든 신약 개발의 긴 여정을 극복하겠다는 의미다.
사명처럼 오름테라퓨틱의 신약 개발 도전기는 험난했다. 창업 당시 오름테라퓨틱이 집중한 분야는 세포침투 항체 플랫폼 ‘오로맙’. 치료제 개발이 어려운 세포 내 질환 표적 단백질을 타깃으로 한 약물 전달 기술이다. 오름테라퓨틱은 오로맙을 토대로 암과 희귀 질환 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오로맙의 경쟁력이 발목을 잡았다. 경쟁사와 비교했을 때 나은 점을 찾기 힘들었다. 이 대표는 빠르게 새로운 아이템으로 피버팅(Pivoting)했다. 오로맙 개발을 중단하고 만들어낸 게 ‘TPD²’ 플랫폼이다. TPD² 개발 이후 오름테라퓨틱은 승승장구 중이다. 지난해 11월 미국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과 1억8000만달러(약 2400억원) 규모 계약을 체결했고 올해 7월에는 버텍스파마슈티컬(이하 버텍스)과 총 9억4500만달러(약 1조3000억원) 규모 계약을 맺었다. 8개월 동안 2건의 빅딜을 성사시켰으니 화제가 되지 않으면 이상하다.
이 대표는 “신약 개발은 험한 산을 오르는 것과 비슷하다. 많은 이가 K2 등반을 위해 오랜 기간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다 새로운 루트가 생겼고, 한 팀이 산소통을 들고 끝까지 올라갔다”며 “ADC에 TPD를 붙인 게 우리에게는 산소통이었다”고 말했다.
ADC에 TPD 접합한 차세대 기술
TPD²는 항체-분해약물접합체(DAC) 플랫폼이다. 바이오 산업에서 플랫폼은 기존 의약품에 적용해 다수의 후보물질을 도출할 수 있는 기반 기술을 의미한다. DAC는 항체약물접합체(ADC, 잠깐용어 참조)와 표적단백질분해(TPD, 잠깐용어 참조)를 결합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한 형태다. ‘항암 유도 미사일’로 불리는 ADC가 암세포를 찾는 항체(Antibody)와 암세포를 공격하는 세포독성물질(Drug)을 링커라는 연결물질로 결합(Conjugate)한 구조라면, DAC는 세포독성물질이 아닌 TPD 물질로 대체했다. TPD는 질병을 유발하는 단백질 또는 분해하고자 하는 단백질을 제거하거나 비활성화한다. 독성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기존 ADC와 달리 안전하다. TPD는 표적화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는데, 이 역시 ADC의 유도 기술과 결합돼 암세포만 분해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독특한 아이디어인 셈이다.
이 때문에 개발 초기에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 대표는 당시를 떠올리며 “2019년까지는 ADC조차 인기가 없었다. 당시 전 세계에서 발표된 ADC 관련 논문이 단 2건에 불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21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ADC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DAC에도 관심을 보이는 분위기가 생겼다. 2020년까지 왜 이런 걸(DAC) 개발하느냐 물었지만, 2021년을 기점으로 ‘이렇게 좋은 걸 왜 너희만 하고 있냐’고 하더라”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시장의 관심이 최근 빅딜로 이어졌다는 게 이 대표 진단이다.
실제 글로벌 시장에서 DAC를 향한 관심은 점차 커지는 모습이다. 관련 기업도 생기는 모습이다. 진주연 국가신약개발재단 연구원은 지난 4월 발표한 ‘신약개발 Global Trend 분석: 항체-분해약물접합체(DAC)’ 리포트에서 “DAC 연구개발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최근 (DAC 관련) 글로벌 기술이전 사례도 늘고 있는데, 지난해 총 4건의 DAC 기술이전 계약이 체결됐고 DAC 연구 스타트업도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DAC는 바이오 분야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올해 2월에는 DAC 개발 기업인 미국 파이어플라이바이오(Firefly Bio)가 시리즈A로 1300억원을 유치했는데,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릴리가 주요 투자자로 참여해 관심을 끌었다.
경쟁 본격화 구간 걱정 없어
DAC 원조…연이은 빅딜로 자신감
점차 경쟁이 달아오르는 분위기지만 오름테라퓨틱은 걱정 없다는 눈치다. 일찌감치 DAC 시장을 개척한 ‘원조’의 자신감이다.
오름테라퓨틱은 지난해 11월 BMS와 ‘ORM-6151(급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후보물질)’ 계약을 맺었다. ORM-6151는 TPD² 활용 후보물질 중 하나다. 암세포 표면에 과발현된 ‘CD33’을 표적하는 항체와 ‘GSPT1’ 표적 단백질 분해제(TPD)를 결합한 형태다. 계열 내 최초(first-in-class)로 미국에서 임상 1상 IND(임상 시험 계획)를 승인받은 후 임상 들어가기 전 단계에서 기술이전이 성사됐다. 총 계약 규모는 1억8000만달러. 이 중 반환 의무가 없는 업프론트(선급금)가 1억달러다. 통상 국내 바이오텍이 기술 수출 과정에서 받는 업프론트 비중이 10% 내외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계약이다. 다만 마냥 좋은 일은 아니었다. 관련 업계에서는 “기술이전이 아닌 파이프라인 매각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왔다. “업프론트 비중이 높은 건 오름테라퓨틱 자금 사정이 배경이 됐을 것”이라면서 “밸류를 조금 낮추고 업프론트를 높였을 텐데, 마일스톤(단계별 지급료)을 기대하기 힘든 만큼 향후 추가적인 기술이전 사례로 장기 수익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실제 오름테라퓨틱은 BMS 계약을 마무리하기 전까지 적자에 시달렸다.
오름테라퓨틱은 8개월 만에 시장 우려를 씻어냈다. 미국 버텍스와 총 9억4500만달러 규모 다중 타깃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면서다. 특히 앞선 BMS 거래와 달리 후보물질이 아닌 ‘TPD² 플랫폼’ 활용 권리를 앞세운 계약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향후 더 많은 거래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름테라퓨틱과 버텍스와의 거래는 총 3개 타깃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버텍스는 3개 타깃 발굴 과정에서 TPD²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타깃 발굴이 끝난 뒤 버텍스는 해당 치료제 관련 전 세계 독점 라이선스 취득이 가능한 옵션을 계약에 포함했다. 이번 계약으로 오름테라퓨틱은 업프론트 1500만달러와 3개 타깃에 대해 각각 최대 3억1000만달러 마일스톤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상업화 이후 로열티(경상 기술 사용료)는 별도다. 오름테라퓨틱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BMS와 기술이전은 오름테라퓨틱이 개발 중이던 급성골수성백혈병(AML) 신약후보물질을 넘기는 계약이었다면 이번에는 오름테라퓨틱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권리를 넘긴 플랫폼 기술이전”이라며 “일반적으로 플랫폼 기술이전은 업프론트가 수십억원대에서 결정되는 것을 감안할 때 두 번째 기술이전도 선급금 규모가 매우 큰 편”이라고 귀띔했다.
연이은 빅딜은 기업공개(IPO)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오름테라퓨틱은 기술특례상장 절차를 밟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오름테라퓨틱은 지난 4월 기술성 평가에서 ‘A, BBB’등급을 받았다. 기술특례상장 진행을 위해선 한국거래소에서 지정한 전문평가기관 2곳에서 BBB등급 이상 기술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 가운데 한 곳에서는 A등급 이상이 필수다. 기술성 평가 문턱을 넘은 오름테라퓨틱은 지난 6월 코스닥 상장을 위한 상장예비심사 청구를 신청했다. 연내 코스닥 상장을 마무리하는 게 목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예비심사 청구 당시에는 버텍스 딜이 성사되기 전이었다. 버텍스 거래로 회사의 장기적 수익 기반을 보장할 수 있게 된 만큼 기업가치와 IPO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잠깐용어
*항체약물접합체(ADC)
ADC는 한마디로 유도탄 방식으로 약물을 직접 전달한다. 암세포를 찾으려는 ‘항체(Antibody)’에 특정 암세포 항원 단백질을 공격하는 ‘저분자 세포독성약물(cytotoxic Drug)’을, ‘화학적 결합(Conjugation)’ 시킨 구조다. 항체가 약물을 암세포까지 유도한 뒤 선택적으로 공격하기에 정상세포가 아닌 암세포만 공격한다. 다만 ‘독성 약물’을 활용하는 만큼 안전성이 약점이다.
*표적단백질분해(TPD)
표적 치료제에서 한 단계 진화한 개념이다. 표적 치료제는 질병을 일으키는 표적 단백질에 붙어 해당 단백질의 확장이나 기능을 억제하는 저해제다. 부작용이 적다는 장점이 있지만, 약물이 결합하는 부위에 변이가 생기거나 시간이 지나면 약효가 미미해지는 단점이 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한 게 TPD다. 질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을 표적해 원천 제거하는 구조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0호 (2024.07.31~2024.08.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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