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서 마주하는 기후위기, 논 잡초가 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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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기자]
7월 절기인 소서와 대서가 지나고 곧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추가 찾아옵니다. 본격적인 더위의 시작과 함께 장마 전선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리면서 고온 다습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조금 힘들지만, 들녘 벼와 밭의 콩을 비롯한 작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고 있답니다.
그런데 이 기간에 곡식보다 더 잘 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잡초'입니다. 며칠 사이에 논둑과 밭둑의 잡초들이 농부의 키 절반까지 쑤욱 자랐습니다. 장마가 잠시 소강 상태인 날엔 농부들이 새벽부터 부지런히 예초기로 논둑과 밭둑, 이곳저곳을 깎는 소리가 온 들판에서 들려옵니다.
▲ 논둑 풀을 깍는 청년농부 장마 비가 잠시 멈춘 틈을 타서 아들과 논둑을 예초기로 깍았다. |
ⓒ 이동현 |
우렁이는 제 역할을 못했습니다. 또 보름 이상을 잡초를 뽑았음에도, 뽑아도 뽑아도 나오는 새롭게 출몰한 잡초로 인해 애를 먹고 있습니다. 특히 지금껏 논에서 우점종(군집을 대표하는 종류)이 아닌 새 잡초를 만난 뒤로, 아침저녁으로 이것과 싸우는 고된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아침마다 함께 논에 들어와 잡초를 뽑고 있는 짝꿍 아침 저녁으로 우리 식구들은 논에 들어가 잡초를 뽑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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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하듯 잡초를 뽑지만 올해는 유난히 힘이든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잡초의 발생으로 나와 우리 식구들은 보름 이상 새롭게 발생한 잡초와의 사투를 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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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난히, 이전에는 흔히 보지 못했던 잎이 둥글고 키가 낮은 경엽 잡초가 논바닥을 장악하는 광경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보름 이상 잡초를 뽑고 있지만, 뽑아도 뽑아도 샘물 솟아나듯 계속 생겨납니다.
▲ 올해 처음 경험한 장선리 미실란 논에 우점종 잡초 올해 처음 경험한 논에 발생한 우점종 잡초랍니다. 지금까지 논에는 피(논 잡초, 벼를 닮은 잡초), 물달개비, 골플등이 우점종 논 잡초였답니다. 꽃이 피어봐야 알겠지만, 아마도 물가에서 자라는 마디꽃이 아닐까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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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풍경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곡성에는 가로수로 배롱나무(백일홍)를 심어둔 곳이 있습니다. 모내기 이후인 6월 중순부터 100일간 피고 지는 꽃인 백일홍이 마지막으로 질 때 들녘 벼의 탈곡을 마치는 것으로 원래는 자연의 호흡을 맞춰 왔습니다.
▲ 모내기가 끝나고 2주가 지나도 피지 않은 백일홍(배롱나무) 원래는 모내기가 끝날 즈음 배롱나무(백일홍) 꽃이 만개합니다. 올해는 모내기가 장선리 들녘에 다 끝나고 2주가 지나도 꽃이 피지 않았답니다. 백일홍 꽃은 평소보다 3주가 지난 7월 중하순 즈음에야 만개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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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일홍 꽃이 피지 않는 곡성 장선리 가로수 길 오른쪽 모내기가 다 끝난 곡성 대평리와 장선리 들녘 옆 도로변에 심어진 가로수나무 백일홍이 7월 중순까지 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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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란 텃밭가에 심어 놓은 두 그루의 먹자두 나무도 작년과 또 다른 모습입니다.
매년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고 그 주변을 많은 벌들이 윙윙거리며 수정을 잘해준 덕에 주렁주렁 먹자두가 열렸는데, 올해는 벌들이 많이 보이지 않더니 수정이 이뤄지지 못한 어린 열매가 일찌감치 떨어지고 한 나무에 제대로 성장한 열매가 열 개도 채 되지 않는 모습입니다.
▲ 꽃은 피었으나 벌이 오지 않아 충실한 열매를 맺지 못한 먹자두 나무 봄에 꽃은 화려하게 피었으나 벌이 찾지 않아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한 텃밭정원의 먹자두 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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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실하지 못한 열매 벌이 찾지 않아 수정이 이뤄지지 않아 몇 개 열린 열매마저 충실하지 못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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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란 들녘과 텃밭 사이에 생태 다양성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둔 '둠벙'(물 웅덩이)도 예년과 다릅니다.
▲ 꽃이 없는 연 둠벙 평소 6월 중하순이면 연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올해는 7월 하순이 되어서야 연꽃 봉우리 두개가 올라왔고 몇일 후 꽃이 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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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기후가 지속된다면 단순히 꽃이 덜 피고, 열매가 덜 맺히고, 잡초가 달라지는 것에서 그치지 않을 겁니다. 농작물 생산에 영향을 미치면서 곡물 자급률이 떨어지고 식량 부족으로 경제와 평화에 위협을 받으며 전 지구가 위기에 직면할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식량안보 위기가 불러일으킬 파장을 생각하다 보면, 달라지고 있는 지금의 풍경에 안타깝다고 한숨만 쉬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성찰이 더욱 깊어집니다. 기후 변화가 우리의 일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 정부, 기업, 가정, 시민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계속해서 논의하고 실천해야겠지요.
저와 미실란 식구들은 지구와 생태계를 지키는 유기농, 친환경 농업으로 들녘과 건강한 밥상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봅니다. 달라지는 기후 환경에서도 친환경에 적합한 품종을 연구하는 현장 탐구도 멈추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역할을 해주시겠습니까? 우리의 터전인 아름다운 지구를 지키며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애를 쓰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함께 응원하며 작은 실천을 함께해 주셨으면 합니다.
특히 친환경 농업을 지향하며 애쓰는 농부님들 제품을 찾아 주시는 것도 환경을 지키는 작은 시도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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