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잿가루된 차량” “오물이 줄줄”…전기차 폭발사고 현장 가보니
지하주차장엔 매캐한 냄새 진동…차량 녹아내려 뼈대만 남아
“시한폭탄 같은 전기차…전국 어디에서도 사고 일어날 수 있어”
(시사저널=정윤경 기자)
"펑, 펑, 펑 터지는 소리가 들렸어요. 북한에서 미사일 쏜 줄 알았다니까요."
"온 집안이 분진으로 뒤덮여서 엉망이에요. 하수 배관까지 터져서 화장실에선 오물이 줄줄 샙니다"
3일 오후 1시경 찾은 인천 서구 청라동의 한 아파트는 이틀 전 발생한 전기차 폭발 사고의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불길은 완전히 잡혔지만 전기와 수도가 모두 끊겨 480여 세대는 하루아침에 피난민 신세가 됐다. 지하주차장에는 불길에 녹아내린 차량 40여 대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사고가 발생한지 이틀이 지났지만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갓길 양옆에는 지하주차장에서 겨우 빠져나온 차량 150여 대가 주차돼 있었다.
입구에는 16톤짜리 대형 급수차가 있었다. 체감온도가 35도까지 오른 무더위에 입주민들은 김치통, 생수통을 어깨에 이고 물을 받아 갔다. 1살·5살 자녀를 둔 김아무개(43)씨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20L짜리 생수통을 옮기고 있었다. 김씨는 "동네 주민이 애들이랑 같이 쓰라고 생수통을 빌려줬어요. 한 번 받아놓으면 하루 정도 버티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날 주민들의 식수를 위해 16톤짜리와 8톤짜리 급수차가 각각 2대씩 동원됐지만 턱없이 부족한 모습이었다. 급수차를 몰고 온 운전자는 "오전 8시부터 와있었는데 5시간 동안 벌써 10톤이나 빠져나갔다"고 설명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하주차장을 직접 들어가 보니 당시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주차된 차량의 범퍼는 터졌고 유리창은 전부 깨져서 내부가 훤히 보였다. 타이어도 폭발해 뼈대만 남은 상태였다. 형체가 전부 일그러져 잔해물만 남은 차량도 있었다. 차량을 찾으러 온 주민들은 "다 탔네" "어떡해" "우리 차 어디 있지"라며 탄식했다.
KF94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매캐한 냄새가 코를 뚫고 들어왔다. 들어온 지 10분 지나자 기침이 났고, 30분이 넘어가면서 어지럼증을 느꼈다. 기자에게 얼음물을 건넨 입주민 차아무개(29)씨는 "이런 거(KF94) 끼고 오시면 위험해요. 주민들도 방진 마스크를 꼭 끼고 와요"라고 강조했다.
지하주차장에서 전기 복구 작업을 하던 서아무개(66) 팀장의 마스크도 새카맣게 그을려 있었다. 서 팀장이 말했다. "작업자들도 유독가스가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요. 마스크 하나에 의존하는 거예요. 하루 종일 작업하면 어지럽고 매스꺼워서 너무 힘들어요. 더 있다간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얼른 나가세요."
화마의 흔적은 집안 곳곳에 남아있는 듯했다. 배아무개(51)씨는 까맣게 그을린 복도 사진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배씨는 "짐을 챙기러 집안에 들어갔더니 발이 새카맣게 변했어요. 숨 쉬는 것도 힘들어서 급한 짐만 빨리 챙겨 나왔어요"라고 토로했다. 서아무개(70)씨도 "1년 동안 먹을 마늘을 다 빻아놨는데 전부 버렸어요. 냉장고에 있던 음식값만 해도 다 얼만데…. 아이고 아까워서 어떡하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민들은 중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임시 대피소 등으로 피신했다. 체육관에는 '재난 구조 쉘터'라고 적힌 텐트들이 빼곡히 차있었다. 이곳에서 대한적십자사가 식사와 간식 등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모든 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접수를 받아 40여 세대만이 이용하고 있었다. 남은 주민들은 대피소 앞에 주차된 고속버스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손아무개(15)군도 대피소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했다. 손군은 "찜질방에서 먹고 자는데 시간이 다 끝나서 잠시 쉬러 왔어요. 오늘은 또 어디서 자려는지 모르겠어요. 그나마 방학이라 다행이에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입주민들은 이 같은 사고가 전국 어디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며 경고했다. 서씨가 말했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몰라요. 우리 아파트에는 전기차 사고가 안 난다는 보장이 어디 있나요? 시한폭탄이라고 생각해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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