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차 베테랑 스포츠 캐스터의 불쾌한 농담

이준목 2024. 8. 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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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중계 중 이기호 캐스터 성희롱 발언... KBS N, 사과하고 대기 발령 조치

[이준목 기자]

 8월 2일 KBS N스포츠는 공식 홈페이지에 “시청자 여러분들과 야구팬 여러분들께 사과드립니다”라는 사과문을 올렸다.
ⓒ 케이비에스엔
  프로야구 중계 도중 '성희롱성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이기호 스포츠 캐스터가 결국 회사로부터 대기발령 조치를 받으며 중징계 수순을 밟게 됐다. 8월 2일 KBS N스포츠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시청자 여러분들과 야구팬 여러분들께 사과드립니다"라는 사과문을 올렸다.

여기서 KBS N은 "8월 1일 한화-KT의 야구경기 중계 중에 있었던 캐스터의 문제 발언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당사자에 대해 즉각 대기발령 조치를 취하고 인사위원회 회부 절차에 착수했으며 본인에게 배정된 야구 방송 진행을 중단시켰습니다. 이번 사안에 대해 시청자 여러분들과 야구팬들 여러분들께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라고 공지했다.

KBS N에서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로 활동해 온 이기호 캐스터는, 지난 1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던 도중 부적절한 망언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명백한 성희롱" 비판 쏟아져

한화 팬으로 추정되는 한 여성 야구팬이 '여자라면 최재훈(한화)'이라는 응원 문구가 적힌 스케치북을 펼쳐놓고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자, 이기호 캐스터는 갑자기 중계의 맥락과 무관하게 해당 문구를 인용하며 "저는 여자라면이 먹고 싶네요. 가장 맛있는 라면이 아닐까"라는 돌발 발언을 날렸다. 당황한 해설자는 답을 하지 못하고 멋쩍은 웃음을 터뜨리며 적당히 농담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마침 문제의 발언이 나오던 시점에 KT 타자 황재균의 내야플레이가 나왔고, 관중들의 큰 함성에 묻히면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내뱉은 이기호 캐스터의 발언은 선명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야구 중계를 시청하던 팬들은 찰나의 순간에 지나간 이기호 캐스터의 망언을 놓치지 않았다. 곧바로 실시간 온라인을 중심으로 '명백한 성희롱'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건의 빌미가 된 해당 응원 문구를 작성한 팬도 방송을 확인하고 현장에서 곧바로 중계진을 찾아가 불쾌감을 드러내며 강력하게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팬은 당일 저녁 온라인 한화 이글스 팬카페에 직접 글을 올려 "PD와 캐스터에게 사과를 받았다"라고 밝혔다.

해당 팬은 스케치북과 응원 문구는 본인이 만들었고, 방송 화면에 잡힌 여성 팬은 지인이라고 설명했다. 이 팬은 사과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문제의 해당 장면을 티빙 영상에서 잘라내기, 다음 중계에서 말실수한 내용을 정확히 이야기하고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또한 해당 팬은 응원해 준 누리꾼들에게 "두 가지 조건이 지켜지는지 같이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덧붙였다.

이기호 캐스터는 이날 경기 후반에 해당 발언에 대하여 사과했다. 이 캐스터는 "초반에 부적절하지 못한 언어를 사용했던 것 같다. 그것에 대하여 사과의 말씀 드린다"고 밝혔다. 또한 해당 팬에게도 경기가 끝나고 직접 찾아가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기호 스포츠 캐스터
ⓒ KBS JOY 유튜브
하지만 야구팬들은 이기호 캐스터의 진정성 없어 보이는 사과 태도에 오히려 더욱 분노했다. 이 캐스터의 발언은 맥락상 '적절하지 못한 언어를 사용했다'는 말을 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작 방송에서는 "부적절하지 못한 언어를 사용했다"는 앞뒤 문맥상 전혀 맞지 않는 괴상한 표현이 나오면서 결과적으로 사과조차도 또 다른 실언이 되어 버렸다.

또한 본인이 저지른 실수에 대한 정확한 서술이나 인정 없이 단 두 문장의 짧은 변명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 버린 것도, 성의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양궁 선수에게 "최악이다" 감정 드러내기도

이 캐스터의 발언은 설사 지금보다 성인지 감수성이 훨씬 떨어지던 20~30년 전 옛날이었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더 큰 뭇매를 맞았을 만한 망언이다. 오늘날에는 스포츠 중계도 격식과 품위를 강조하던 과거에 비하면 중계진이 가벼운 농담도 주고받는 자유로운 분위기로 바뀐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있다. 특정 성별을 음식에 비유하는 식의 저급한 표현은, 방송 중계가 아니라 설사 19금 토크쇼였다고 할지라도 용납하기 어려운 '천박하고 불쾌한 농담'이다.

이기호 캐스터가 스포츠 중계를 하면서 부적절한 발언으로 도마 위에 오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캐스터는 2021년 세계양궁선수권 중계 도중 7점을 쏜 선수에게 대놓고 "최악이다, 이게 뭐냐"라며 노골적으로 개인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이 때문에 당시에도 KBS N은 공식 사과와 함께 이기호 캐스터에게 엄중 경고 조치를 내린 바 있다.

2020년에는 배구 경기 중계를 하다가 터치아웃에 대한 비디오 판독이 진행되던 상황에서 당시 '몸에 맞지않았다'고 항의하는 선수에게 "스친 것을 모를 정도라면, 은퇴해야하지 않나. 그만큼 감각이 없다는 이야기니까"라며 선수를 조롱하는 듯한 발언을 해 배구팬들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기호 캐스터는 2000년 SBS 스포츠 캐스터로 입사해 2003년부터 KBS N으로 자리를 옮겨 스포츠 중계를 해 온 24년 차 경력의 베테랑 캐스터다. 야구를 비롯하여 여러 스포츠 종목을 두루 중계했다. 

이번 일로 중징계는 불가피해 보인다. 이미 중계 도중 몇 차례 구설을 일으킨 전력이 있는 데다 이번에는 성희롱성 발언을 노골적으로 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실수와는 차원이 다르다. 스포츠 팬들에게 신뢰를 잃어버린 캐스터의 중계를 야구가 아니라 다른 종목이라도 과연 누가 듣고 싶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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