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대에 거저 올라온 팀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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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기자]
우리집 주말 루틴 중 하나는 '전국노래자랑'이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꼬박꼬박 챙겨보시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던 프로그램. 노래 실력이 가수에 버금가는 출연자는 손에 꼽힐 정도로 드물었고, 나머지 출연자들이 부족한 노래 실력 대신 앞세우는 춤과 개그도 대체로 어설퍼 보였다.
부모님과 함께 보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국노래자랑은 한결같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의 무대라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바로 그 점이 내가 전국노래자랑을 좋아하는 이유다.
전국노래자랑은 매주 전국을 돈다. '전국지역자랑'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 지역에 따라 방송 분위기와 내용이 달라진다. 직전 방송편은 부산진구였다. 부산진구 인구가 36만 명. 내가 사는 진주는 34만 명. 우리 옆 동네 통영은 12만 명, 거창은 6만 명, 의령은 2만 명이다. 행정구역 단위로 쪼개도 웬만한 중소도시보다 인구가 많으니 그만큼 예선 경쟁률도 높았을 테고, 그래선지 대도시 방송에서는 가수 뺨치는 실력자도 꽤 자주 등장한다.
▲ 전남 화순군 편에 출연한 1922년 출생 강예덕 할머니. (KBS화면갈무리) |
ⓒ KBS |
전국노래자랑에는 아이들이 꽤 자주 나온다. 故 송해 선생님은 아이들이 출연할 때마다 등을 떠밀었다. 악단장에게 가서 용돈을 받아오라는 뜻이다. 신재동 악단장은 어린이 출연자들이 나오는 날이면 잔돈을 바꿔 미리 준비했다고 한다.
다른 가요프로그램이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잘 가공된 음식이라면, 전국노래자랑은 자연 그대로의 원물 같다. 평소에는 끼를 숨기고 살던 정육점 사장님, 소방대원, 시골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고무줄 바지를 입고 무대를 휘어잡는다.
명색이 '노래자랑'인데 시상이 꼭 노래실력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그날의 최연소 출연자에게는 가산점이 붙는 걸로 보이고, 특이한 장기에도 어느 정도 가산점이 있는 것 같다.
여러 번 '땡'을 받고 다시 기회를 얻어 부른 도전곡으로 인기상을 꿰차는 경우도 있다. 노래 실력이 순위권인 출연자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도 한데 개의치 않고 함께 웃으며 최우수상 수상자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 노래자랑이지만 노래자랑만은 아니다. 1시간에 15팀. 한 팀당 5분도 채 주어지지 않은 그 짧은 무대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보인다.
작년 군산편에 노란 원피스를 입고 등장해 격렬한 댄스와 넘치는 '끼'로 화제를 몰았던 출연자는 당시 주부로 소개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녀에게는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배우로 활동한 과거가 있었다. 결혼 후 10여 년간 경력이 단절되었다가 용기 내어 무대 위에 다시 오른 그녀를 보면서 나는 마음이 좀 울컥했다.
▲ 전남 화순군 편에 출연한 1922년 출생 강예덕 할머니. '죽기 전에 한번 나왔습니다'하며 웃으신다. (화면갈무리) |
ⓒ kbs |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https://brunch.co.kr/@nos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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