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를 위해 복수한 전과자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 조선 26대 고종의 용포를 입은 모습 |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이러한 이유가 상당 부분 작용해, 이들의 죽음은 항일투쟁의 기폭제가 됐다. 명성황후의 죽음은 1895년 을미의병, 고종의 죽음은 1919년 3·1운동, 순종의 죽음은 1926년 6·10만세운동으로 이어졌다. 한국인들은 이들의 죽음을 일본에 맞서 저항하는 계기로 삼았다.
그런 저항자들 중에서, 명성황후 시해에 대해 의병들과 결이 다른 저항 방식을 보여준 인물이 대한제국 관료 출신인 고영근이다. 그는 명성황후 시해 현장에서 시신을 불태우는 일을 주도한 친일 군인 우범선을 처단했다.
동아시아에 대한 제국주의 침략을 주도한 것은 서양열강이다. 이들의 동양 침략을 표현하는 서세동점이란 단어에서도 확인되듯이 이 시기의 침략은 이들에 의해 주도됐다.
그런데 한국과 대만·오키나와에 대한 침략은 서양이 아닌 일본에 의해 벌어졌다. 서양열강과 협조하고 모방하며 이들의 기운에 올라탄 일본이 오키나와·대만·한국을 차례로 넘어트렸다. 아시아에서 이탈해 구라파 대열에 진입한다는 일본의 탈아입구(脫亞入歐) 정책이 낳은 산물이다.
일본만 서양의 등에 올라탄 것은 아니다. 일본의 등에 올라탄 세력도 있다. 친일을 선택한 구한말의 일부 보수세력이 그들이다. 일본이 서양과 협조하고 모방하며 그 기운에 편승한 것처럼, 이들 친일파들은 일본에 부역하고 흉내하며 한국 침탈을 거들었다.
일본의 행위와 친일파의 행위에 차이점이 있다. 일본은 서양의 등에 올라타서 일본 자신의 일을 한 데 반해, 친일파들은 일본의 등에 올라타서 그 자신들의 일도 했지만 일본을 거드는 데에 중점을 뒀다. 명성황후 시해 당시 우범선이 했던 일도 그런 부류였다. 그래서 일본을 거든 우범선을 처단한 고영근의 행위는 결국은 일본에 맞서는 일이었다.
그런데 고영근은 왕실에 대한 우국충정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는 고종정권의 탄압으로 해체된 독립협회를 재건하고자 쿠데타 음모를 꾸몄다는 혐의를 받은 뒤 일본으로 망명했다. 이처럼 고종정권과 적대했던 그가 그런 거사를 벌였던 것이다.
<비서원일기>에 적힌 상소문
죄인 신분인 고영근이 우범선을 처단했다는 소식은 1903년 연말에 대한제국 조정에 보고됐다. 황제 자문기관인 중추원의 김가진 의장 등은 감격에 찬 문투로 이 일을 보고했다. 황제 비서실의 업무일지인 <비서원일기>의 음력 계묘년 10월 15일 자(양력 1903. 12. 3.) 기록에 적힌 이들의 상소문은 이렇다.
"삼가 아뢰노니, 신하의 의리로는 역적을 베는 것이 크고 국가의 법으로는 공로에 대해 상을 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난신적자는 사람들마다 각각 벨 수 있다고 했으니 반드시 재판관일 필요는 없는 것이고, 또 죄가 의문스러울 때는 가벼운 쪽으로 하고 공이 의문스러울 때는 무거운 쪽으로 한다고 했으니, 이는 영원한 도의입니다. 신들이 지금 삼가 들으니 도망 중인 죄인인 고영근이 역적 괴수인 범선을 손수 죽이고 일본 경서(警署)에 붙들려 있다 합니다."
일본에 있던 고영근이 우범선을 살해한 날은 11월 24일이다. 이 일이 9일 뒤 고종에게 보고됐던 것이다. 그런데 상소문의 서론이 다소 장황하다. 고영근이 우범선을 처단한 일을 언급하기 전에 이런저런 말들을 많이 했다.
신하는 역적을 베야 하고 국가는 이를 포상해야 하며, 불충한 난신적자를 죽이는 일은 재판관이 아니라도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이며, 죄는 가급적 가벼운 쪽으로 정하고 공은 가급적 중한 쪽으로 정해야 한다는 말들을 한 다음에 우범선 처단에 관한 본론으로 들어갔다.
같은 날짜의 <고종실록>에 실린 동일한 상소문은 우범선 처단에 관한 내용부터 소개돼 있다. 장황한 서론이 실록에는 생략돼 있다. <비서원일기>의 사관은 장황한 서론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고, <고종실록>의 사관은 그런 서론이 불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장황한 서문이 들어간 것은 고영근에 대한 고종의 불편한 감정을 감안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고영근은 고종이 해체한 독립협회를 복원하고자 조정 대신들을 제거하는 작전을 주도했다는 혐의를 받고 일본으로 망명했다.
고종이 독립협회를 박해한 이유 중 하나는 이 단체가 대통령제를 시도하려 한다는 판단에 있다. 왕조 운영자의 입장에서는 군주를 시해하고 새로운 군주를 옹호하는 인물보다 군주제를 아예 없애버리려는 인물이 더 위험했다. 전자는 군주제를 인정하는 인물인 반면, 후자는 부정하는 인물이다.
고종이 볼 때, 고영근은 후자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런 고영근이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일본으로 달아났다. 고종은 그에게 교수형을 선고했다. 그에 대한 고종의 감정은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위 상소문이 본론으로 직행하지 못한 것은 고종의 감정을 무시한 채 고영근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 1922년 12월 13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고영근 사진 |
ⓒ 동아일보 |
이종각 주오대학 강사가 2009년 9월호 <신동아>에 기고한 '자객 고영근의 명성황후 복수기'는 "1854년 생인 고영근은 상민 출신으로 민비가(家)의 실력자였던 민영익가의 청지기 즉 시중꾼으로 궁중을 출입하면서 명성황후의 총애를 받아 종2품직인 경상좌도병마절도사까지 올랐다"고 기술한다.
그 뒤 고영근은 당시 개념의 좌우 진영을 자유로이 넘나들었다. 독립협회를 훼방하는 맞불단체인 황국협회의 부회장을 1898년에 지냈다. 얼마 안 가 황국협회의 폭력성에 실망해 독립협회로 넘어갔다. 그해 연말에 그는 독립협회 회장이 됐다.
민영익 가문과 조정에서도 그렇고 황국협회와 독립협회에서도 그렇고, 그는 어디를 가나 감투를 잘 쎴다. 동학혁명과 청일전쟁 이후로 한반도 정세가 소용돌이치는 일대 위기 속에서도 이쪽저쪽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지도자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살아남는 데는 실패했다. 그의 독립협회는 고종의 두려움을 키워 결국 해산을 당했고, 그는 독립협회 재건을 추진하다가 발각됐다. 그런 이유로 1899년에 바다를 건넌 그가 망명 중인 우범선에게 접근해 1903년에 복수극을 벌였던 것이다.
양력으로 1903년 12월 9일 자 <고종실록>은 고영근에게 심리적 영향을 준 독립협회 출신 망명객 윤효정이 우범선을 접촉한 과정을 알려준다. 이에 따르면, 윤효정이 거짓으로 친한 척하며 지속적으로 접근하자, 우범선은 명성황후 시해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자신이 시해를 주관했다고 떠벌렸다고 한다. 일본이 시켜서 한 일을 자기가 주관한 듯이 자랑했던 것이다.
이에 격분한 윤효정이 고영근에게 영향을 줬고, 고영근은 집을 구해달라며 우범선에게 접근했다. 우범선이 집을 구해주자 고영근은 답례로 술을 내겠다며 자리를 만들었다. 그 기회에 거사를 벌였던 것이다. 이로 인해 일본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대한제국의 '자국민 보호'에 힘입어 1909년 국내로 송환되고 사면을 받았다. 1919년에 고종이 사망하자, 홍릉 참봉이 되어 무덤을 지켰다.
고종 사망으로 3·1운동이 발발한 뒤였기 때문에, 이런 모습은 고종에 대한 충성심 차원을 떠나 일본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될 여지가 컸다. 1923년에 향년 70세로 세상을 떠난 뒤에는 홍릉 인근에 묻혔다.
1894년에 동학혁명 진압을 빌미로 조선에 들어온 일본군은 내정간섭 군대로 돌변해 경복궁을 점령하고 고종을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이에 대한 반발로 고종이 러시아를 끌어들이려 하자, 일본은 친일파들과 합세해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고종에게 겁을 주었다. 고영근의 거사는 이런 침략행위에 대한 복수였다. 국가보훈부가 인정하는 독립유공자는 아니지만, 그의 행위는 항일투쟁의 성격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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