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메달 확보' 한국 여자복싱 역사 쓴 임애지

양형석 2024. 8. 3.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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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 올림픽] 준결승 진출하며 동메달 확보, 4일 튀르키예 선수와 준결승

[양형석 기자]

 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노스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복싱 여자 54㎏급 준준결승에서 한국의 임애지가 콜롬비아 예니 마르셀라 아리아스 카스타네다의 안면에 공격을 적중시키고 있다.
ⓒ 연합뉴스
물론 프로 복싱에 비하면 비인기종목에 가깝지만 아마추어 복싱은 지난 109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하고 있을 만큼 역사가 깊은 종목이다. 1948년 런던 올림픽까지는 준결승에서 패한 2명이 동메달 결정전을 치렀지만 1952년 헬싱키 올림픽부터는 준결승에서 패한 2명이 공동으로 동메달을 받는다. 13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는 복싱에서 26명의 동메달리스트가 배출되는 이유다.

아마추어 복싱에서는 부상 방지를 위해 헤드기어를 착용하고 경기를 했는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헤드기어가 오히려 뇌진탕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발표하며 2016년 리우 올림픽부터는 헤드기어를 쓰지 않는다. 다만 여자 선수들은 헤드기어에 대한 충분한 데이터가 쌓이지 않아 파리 올림픽까지도 헤드기어를 착용하고 경기를 치른다. 물론 복싱은 판정시비 등으로 꾸준히 구설에 오르기도 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여자복싱은 파리 올림픽에서도 6개 체급에서 메달의 주인공을 가린다. 지난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본선 무대에 선수를 출전시켰던 한국 여자복싱은 두 번째 도전 만에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여자 -54kg급에서 4강에 진출하며 여자복싱 역대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리게 된 임애지가 그 주인공이다.

최근 두 번의 올림픽에서 연속 노메달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사실 복싱은 한국의 전통적인 강세 종목이었다. 한국전쟁 이전인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플라이급의 고 한수안이 동메달을 따면서 역도의 고 김성집에 이어 한국의 두 번째 올림픽 메달을 안겼고 휴전 전에 열렸던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는 고 강준호가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는 고 송순천이 한국 선수단 첫 올림픽 은메달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1970년대까지 올림픽에서 꾸준히 성과를 올린 복싱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서 -75kg급의 신준섭이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신준섭은 메달 유망주로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세계의 강호들을 차례로 꺾고 결승에 진출해 홈팀 미국의 버질 힐을 상대로 판정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따냈다. 신준섭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추가한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복싱 종목에서 무려 2명의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LA 올림픽 1회전 탈락 후 1986 서울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내며 기량을 끌어올린 김광선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도 플라이급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광선은 1990년 프로로 전향해 1992년 세계복싱평의회(WBC) 플라이급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프로무대에서는 세계 챔피언에 오르지 못하고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1988년 김광선의 금메달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는 서울 올림픽에서 한국의 12번째 금메달을 따낸 박시헌의 판정시비 때문이었다. 당시 박시헌은 미국의 스타 복서 로이 존스 주니어에게 판정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땄는데 이는 편파 판정으로 인한 '부정한 금메달'로 취급 받았다. 결국 박시헌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다소 이른 나이에 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한국 복싱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끝으로 단 하나의 금메달도 추가하지 못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의 이승배와 2012년 런던 올림픽의 한순철이 은메달,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홍성식, 이승배,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조석환, 김정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김정주가 동메달을 따냈을 뿐이다. 특히 남자복싱은 리우 올림픽의 함상명을 끝으로 두 대회 연속 올림픽 본선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메달 확정 후에도 한국 복싱 미래 걱정하는 선수
 
 임애지가 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노스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복싱 여자 54㎏급 준준결승에서 콜롬비아 예니 마르셀라 아리아스 카스타네다에게 승리 후 취재진 앞에서 올림픽 선글라스를 끼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여자복싱은 2012년 런던 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됐지만 2016년 리우 올림픽까지 한 명도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지난 2011년에는 배우 이시영이 아마추어 복싱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자 전 세계 챔피언 홍수환이 "런던 올림픽에 출전시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는 이시영이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는 뜻도 있었지만 그만큼 한국 여자복싱의 선수층이 얇았다는 의미도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취미로 복싱을 시작한 임애지는 지난 2017년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18년에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참가했지만 8강에서 리우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인쥔화(중국)에게 패하며 탈락했다. 임애지는 2020년 도쿄 올림픽 지역예선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본선 진출에 성공했지만 본선에서는 16강에서 일찌감치 탈락했다.

임애지는 작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16강에서 북한의 방철미를 만나 판정으로 패했고 임애지를 꺾은 방철미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렇게 201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주요 국제대회에 출전하고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던 임애지는 이번 올림픽에서도 메달 후보와는 거리가 있었다. 지난 7월 27일 '한국 여자복싱의 간판' 오연지가 1회전에서 탈락하면서 임애지에 대한 기대도 더욱 낮아졌다.

하지만 임애지는 16강에서 브라질의 타티아나 헤지나 데 헤수스 샤가스를 4-1 판정으로 꺾고 8강에 진출해 작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던 콜롬비아의 강자 예니 아리아스를 만났다. 모두가 임애지의 열세를 예상했지만 임애지는 투혼을 발휘하면서 3-2로 판정승을 거뒀다. 준결승에 진출한 임애지는 2012 런던올림픽의 한순철(은메달) 이후 12년 만에 한국 복싱에 올림픽 메달을 안겼다.

임애지는 동메달을 확보한 후 상기된 얼굴로 인터뷰하면서 "(대한민국에) 복싱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전체적인 수준이 함께 올라가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한국 여자복싱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 확정된 순간에도 한국 복싱의 발전을 먼저 생각했던 임애지는 오는 4일(한국시각) 준결승에서 2022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인 튀르키예의 강호 하티제 아크바스와 결승 진출을 놓고 격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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