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500통 폭주"…뮤직비디오에 애꿎은 시민 '전화 지옥' 왜
지난달 29일 A씨(50대)는 밤새 울리는 휴대전화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자정이 되자마자 시작된 전화는 이후 30시간 동안 500통 넘게 이어졌다. 영문을 몰랐던 A씨는 잠시 뒤 전화가 폭주한 이유를 알게 됐다. 한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의 뮤직비디오 영상에 A씨의 번호와 유사한 번호가 나왔기 때문이다. 가수의 팬들이 영상에 나온 번호의 앞자리만 바꿔 A씨에게 전화한 탓이었다.
항만에서 트레일러 운전기사로 일하는 A씨는 업무 중에도 심한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차량 배차를 위해 통화도 해야 하고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도 봐야 하는데 온종일 전화가 오니 업무를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A씨는 어린 학생이 건 전화를 받고 부모를 바꿔 달라고 해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일부 팬은 잘못 걸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며 사과하거나 ‘죄송하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A씨는 지난달 29일 소속사에 피해 내용을 정리해 e메일로 보냈고, 이튿날 수정된 영상이 온라인에 게재됐다.
과거에도 방송 매체 등을 통해 번호가 노출돼 일반 시민이 피해를 본 경우가 있었다. 지난 2021년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휴대전화 번호가 나와 실제 그 번호를 사용하던 시민이 불편을 겪었다. 넷플릭스 측은 해당 장면을 삭제하고 컴퓨터그래픽(CG)으로 존재하지 않는 번호를 넣었다.
지난 2022년 4월 최연숙 국민의힘(당시 국민의당) 의원은 방송 등에 가상 전화번호만을 사용하도록 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지난 5월 제21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선 지난 2011년부터 ‘스크린 노출용 전화번호 제공 서비스’를 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측에서 장기 대여한 전화번호를 영화에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극장에서 개봉되는 영화에 한해서만 가능하고 드라마·OTT 등은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전문가들은 전화번호가 특정인을 식별할 수 있는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방송매체 노출 등에 있어 보다 엄격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일반인 피해를 막기 위해 가상전화번호 제공을 영화뿐만 아닌 다른 콘텐트에도 적용해야 한다”며 “여러 콘텐트에 일관성 있게 적용될 수 있도록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종서 기자 park.jongsu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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