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연의 K컬처] 미국 시골에서 서울 아파트를 그리워하다
심지어 춥다. 떨어져 살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몇 년 만에 찾은 미국 북서부의 한 소(小)도시는 감사하게도 한여름에 추위를 맛보게 해 준다. 서울은 폭염과 폭우에 아우성이건만 이 추운 땅은 무더운 이 계절 비로소 그 매력을 발산한다. 폴란드와 아일랜드, 독일에서 이주한 이들의 문화적 전통 덕에 필자가 좋아라하는 맥주와 소시지는 그 가짓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 집 근처 ‘맥주정원’(beer garden)의 너른 잔디 위에 자리를 깔고 앉아 한 손으로 들기는 버거운 1리터짜리 밀맥주를 맛본다. 딸아이가 내게 주는 귀국선물이다. 헉헉대던 서울에서의 시간이 의아하리만치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 역시 시골이 좋다.
행복한 순간은 찰나라고 했던가. 다음 날부터 당장 필자는 익숙하던 소사(小使)의 몸으로 돌아온다. 1934년 지어진 이 작은 콜로니얼(colonial) 스타일의 이층집은 의외로 손볼 곳이 많다. 집이 움직인다고 하면 과장일까. 계절의 변화에 따라 흙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면서 거기에 뿌리를 박고 있는 집이 함께 움직인다. 아주 조금씩이긴 하지만. 건축자재로 목재를 주로 사용하는 미국의 가정집에는 흔히 나타나는 일이다. 그래서 콘크리트로 지어 올린 한국의 집과 달리 미국엔 문틀이나 보가 뒤틀리거나 내려앉아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는 경우가 제법 흔하다. 우리 집 화장실이 그러했고 필자는 이것부터 손을 보아야 했다. 한국에 비해 이곳의 인건비는 매우 비싸기 때문에 웬만한 수리는 집주인이 직접 한다. 걱정할 것은 없다. 그것이 전기든, 자동차든, 정원 가꾸기든, 매뉴얼 대부분은 고마운 유튜브에 다 있다. 한 업자의 동영상을 열심히 시청한 뒤 한 시간여 드릴과 끌로 문고리를 조금 올려 다는 데 성공한다. 내친김에 외부 방범등도 새로 설치한다.
이제는 잔디와 보도블록. 잡초가 더 많아 딱히 잔디라고 부를 수도 없는 이 푸릇한 것들은 매년 왕성히 자라 조금씩 보도블록을 침범해 들어오고 그만큼 사람의 공간은 줄어든다. ‘에져’(edger)라는 끝이 납작하고 예리한 삽으로 잔디 가장자리를 눌러 끊어줘야 하는데 내게는 없다. 한국에는 동네 어디에나 작은 철물점이 있건만, 여기선 나 같은 ‘억지로 수리공’이나 건축업자 모두 거대한 건축자재 전문 체인점 ‘홈디포’(Home Depot)를 찾는다. 15분여 차를 달려야 하기 때문에 가는 김에 집 주위에 비가 스미지 않도록 덮어야 할 흙과 자잘한 농기구들도 함께 챙긴다. 작은 잔디밭이지만 꼬박 이틀이 지나서야 작업이 끝난다. 내 체중을 에져에 온전히 실어도 한 번에 뗏장이 떨어지지 않아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진척이 늦기 때문이다. 그래도 잔디와 보도블록이 깔끔히 분리된 것을 보면 후련함에 청량감까지 느껴진다. 우리 가족의 ‘보도권(步道權)’을 회복했다는 마음에 손에 잡힌 굳은살과 그을린 피부, 그리고 욱신거리는 허리의 통증은 오히려 전리품처럼 느껴진다. 누가 자연 그대로가 좋다고 했던가. 자연은 오직 인간이 다스릴 수 있을 때 아름답다.
집 주위 지피(地被) 식물들(집 주변의 흙이 비에 씻겨 내려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용도)도 너무 무성하다. 낫으로 대충 베어도 되겠지만 아예 뿌리째 뽑는다. 다음 여름엔 아마 내가 여기에 없을 것이므로. 겉으로는 땅에 바짝 붙어 자라는 연약한 옥잠화(‘patriot hosta’를 검색해 보시라)지만 한 곳에서 십 년을 넘게 버텨온 것들이라 뿌리가 사방으로 깊게 뻗어있고, 그 와중에 잔뿌리들은 주변의 흙과 일체가 되어 땅을 깊이 파서 함께 들어내야 솎아낼 수 있다. 의기로운 삽질로 시작하지만 종국에는 집 주변을 기어 다니며 손으로 직접 하나하나 들어낸다. 손목은 붓고 손끝은 아려온다. 이제 삽질로 패인 곳을 어제 사 온 흙으로 다시 메우고 그 위를 멀치(mulch, 토양 표면의 수분유지를 위한 나무 부스러기)로 덮는다. 각각 쌀자루 대여섯 개는 쉬이 넘는 양이니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식물들이 잔디밭으로 옮겨 자라지 못하도록 얇은 플라스틱 판막을 그 경계에 묻고 나니 보람찬 하루 해가 저문다. 내일은 잔디를 깎아야지. 아, 현관 옆 소나무 가지도 쳐야 한다. 잔디에 제초제도 줘야지…. 할 일은 끝이 없다.
독자가 막연히 그리고 있을 여유와 낭만이 있는 전원에서의 삶과는 큰 차이가 있을 듯하다. 물론 단기간에 아내와 아이들에게 존재감을 보여야 하는 필자의 특수한 상황도 있겠으나, 이는 분명 한국으로 이적하기 전 필자가 살던 미국에서의 일상이다. 초임 때는 내가 소사교수(小使敎授)인지 교수소사(敎授小使)인지 자문하며 힘없이 웃던 날도 많았다. 수업이 없는 날이나 주말에는 주로 집 여기저기를 수리하거나 풀과 씨름해야 했다. 물론 업자를 불러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외벌이로 두 아이를 길러야 했던 우리 부부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아니었다. 십여 년의 생활 끝에 필자는 어설프게나마 농사꾼이 다 되었다. 일면 보람이지만 다른 한편 후회로 남는다. 집 뒷마당 한편에서 그릴에 고기를 구우며 푸른 잔디 위를 뛰노는 아이들을 보며 행복하던 때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많지 않다. 오히려 나의 시간과 땀, 고민과 걱정을 할애하게 한 데 대한 미움과 자신에 대한 무력감이 이 이층집에 더 강하게 얽혀있는 감정이다.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의 삶을 도시에서 시작했더라면 어땠을까.
한국에서 ‘삼시세끼’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한때 큰 인기를 끌었다. 빡빡한 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 한적한 시골에서의 삶을 동경하는 한국인의 정서를 잘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출연자들이 정말 하루 세끼를 해결하는 것 이외에 다른 일을 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여하히 아침을 해결하고 조금 쉴라치면 바로 점심, 곧이어 저녁을 준비해야 하는 식이다. 나름의 분업이 있기는 하지만 모두 채집이나 요리에 관련된 것들이며 그 외에 다른 능력이나 취미를 개발할 수 있는 여유는 없다. ‘집중’과 ‘전문성’을 꿈꿀 수 없는 사회. 시골. 지난 미국에서의 삶에서 필자는 이 두 가지를 더 철저히 추구하지 못했고 그래서 후회가 남는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은 왜 하지 못했느냐 추궁할 수도 있겠지만 시골생활을 해 본 이들은 알 것이다. 주경야주(酒) 이외에 노동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위한 마땅한 치료제가 아직 개발되지 않고 있다.
한국인의 애증이 담긴 아파트와 도시에서는 집중과 전문성이 폭발한다. ‘그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았다면’ 그것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이다. 매달 소액의 관리비를 내기만 하면 집에 대한 보수유지는 전문업체에서 알아서 해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같은 관심사나 목적을 가진 이들과의 의미 있는 만남 역시 회사를 통해 더 쉽게 이루어진다. 자신의 잠재력이 성장하는 속도와 밀도는 그만큼 빠르고 깊어진다. 작은 성취를 반복하며 그대는 마치 양파껍질이 하나씩 벗겨지는 것처럼 그때마다 현재의 자신을 초월한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며 진정한 행복감을 경험한다. 이것이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개인주의(individualism)의 진면목이며, 개인과 사회 발전의 모순 없는 원동력이다. 공공연히 지방소멸을 우려하던 한 학자를 티브이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가 서울탈출을 굳이 퇴임 이후로 미루고 있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지 않을까.
서울 생활을 시작하며 알게 된, 나름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는 지인들은 회사에서 ‘쥐어 짜이는 것 같다’거나 ‘탈탈 털리는 것 같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며, 도시에서의 삶에 대한 회의적인 감정을 감추지 않는다. 필자도 국내 대학으로 전적하면서 유사한 감정을 경험할 때가 많다. 하지만 거기에 그대의 재능과 잠재력만 있다면, 그 과정에서 의미 있는 발전을 이루었으리라. 시골의 이층집에 ‘쥐어 짜인’ 필자가 결국 적성에도 없는 ‘억지로 농사꾼’이 된 것에 비하면 훨씬 낫지 않은가. 서울에서 여전히 월세를 전전하는 필자가 잠시 미국에서 고된 시골의 일상에 지쳐 서울의 아파트를 동경해서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크다.
김상연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겸 한국문화데이터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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