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게 웃기는 인생] 우리 부부는 전세병이 있는 걸까

2024. 8. 3.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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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성준 작가


복잡한 이사였다. 서울에서 살던 한옥 ‘성북동 소행성’은 젊은 부부에게 전세로 내주고 우리는 보령으로 이사를 가기로 했는데 아내와 나 둘 다 성북동을 좋아하고 주말엔 서울로 올라와 연극도 봐야 하므로(연극을 좋아한 지 3년쯤 됐다) 대학로 가까운 곳에 머물 집이 하나 있어야 했다. 아내와 나는 보령에 낡은 연립주택을 전월세로 하나 얻고 성북동 언덕에도 서류상 반지하라지만 사실은 지하가 아닌 집을 역시 전월세로 얻었다. 여기엔 주로 주말에 머물 생각이므로 집 이름도 금월당이라 지었다.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사는 집’이란 뜻이다.

전세 계약금의 일부로 보령 이사를 하고 열흘 후 잔금을 받아 금월당으로 이사하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들이닥친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얼마 남지 않은 짐을 꾸려 아내와 함께 금월당으로 올라갔고 나는 홀로 남아 집 청소를 한 뒤 전세 들어오는 사람들을 맞기로 했다. 이사 가는 집은 청소를 하지 않는 풍습이 있다지만 나는 그게 다 스스로 편하자고 만든 말이란 것을 알았다. 집이 깨끗하면 들어오는 사람도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바닥을 쓸고 걸레질을 했다.

아내가 내게 마지막으로 요구한 건 주방 정수기의 호스를 잘라서 새집으로 가져오라는 것뿐이었다. 드디어 새 주인이 도착했고 나는 이삿짐센터 사장님한테 선을 끊어 달라 부탁했다. 사장님이 커터칼을 꺼내 호스를 자르자 수돗물이 주방 바닥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밸브를 잠근 지점과 정수기 사이를 잘라야 하는데 잠근 곳과 수도관 사이를 자른 것이었다. 얼른 수도계량기로 가서 수도관을 잠갔다. 물은 더 이상 쏟아지지 않았지만 이사 첫날부터 수도를 못 쓰게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잘못된 판단이 부른 엄청난 참사였다.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도 자살하려고 다리 난간에 서 있다가 눈을 감고 떨어졌는데 방향을 착각해 다리 안쪽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죽지 못했다는 어이없는 젊은이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의 실수와 거의 비슷했다. 하지만 일을 벌여놓고 나쓰메 소세키 생각을 계속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노발대발한 아내가 내려와 한옥 수리를 맡았던 목수님에게 전화해서 뒷일을 부탁했고 나는 시킨 일이 딱 한 가지인데 그걸 못하냐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불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공영주차장에 세워 놓았던 차를 집 근처로 잠깐 가져왔는데 정차하다가 외제차를 들이받았다. 연락을 하니 10초 만에 차주가 나타나서 “아, 정말 신경질 나네”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나는 명함을 건네고 수리한 뒤 나중에 연락을 달라 했고 차주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닌 건 알지만, 그래도 화나네. 한두 번도 아니고”라고 반말을 하며 계속 씩씩거렸다. 차 근처에 있는 카페 주인 같았다. ‘한두 번이 아니긴요. 저는 처음인데’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나왔으나 참았다. 집에 가서 짐을 들고 차로 돌아오니 두 여성 단속원이 내 차에 주차위반 딱지를 붙이고는 나를 보자 도망치듯 사라졌다. 분노와 짜증을 유발하는 상황을 계속 주고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실험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참여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왜 한곳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이사를 다니는 걸까. 아내는 자기가 ‘전세병’에 걸린 게 아닐까 의심했다. 전세는 2년마다 전셋값이 오르거나 주인에게 사정이 생겨 세입자가 집을 내놔야 하는 경우가 많다. 아내는 전셋집에 살지 않아도 3년 정도 지나면 슬슬 지겨워지면서 다른 곳에서의 삶을 꿈꾸게 된다는 것이다.

이사는 대단히 심란하고 돈이 많이 드는 행사다. 오죽하면 미국에는 이사가 인생에서 두 번째로 큰 스트레스라는 말이 있을까. 첫 번째는 부부의 사별이란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는 대공황 시기 이주민의 고단한 삶이 나온다. 이사라는 행위는 단순히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삶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과정임을 잘 보여준다. ‘오빠가 돌아왔다’에 실린 김영하의 단편 ‘이사’에서도 주인공 진수는 새로 깐 장판을 세 군데나 찢어 놓은 이삿짐센터 직원을 보며 살의를 느낀다. 그러면서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 속에서 오직 분명한 한 가지는 그가 전날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잠들게 된다는 것뿐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이사라 한다”라고 자조한다. 하지만 이사에는 보다 나은 삶을 꿈꾸는 사람들의 마음이 들어 있다. 더 좋은 날을 만드는 것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생각하면서 외제차 수리비 150만원을 보험 처리하고 나니 주차위반 벌금 고지서가 날아왔다. 3만2000원. 생각보다 싸서 웃음이 나왔다.

편성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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