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과거사에 집착?... 사도광산 소식에 치밀었던 의문들

박정은 2024. 8. 2.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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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어려운 세계문화유산 등재 동의... 정부란 무엇인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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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 기자]

"시간이 약이야."

지인의 지겨운 듯한 어투에 나는 나도 모르게 가슴 아래쯤 늑골 부위를 만졌다. 그 말은 얼마 전 내가 했던 말이었다. 네살배기 남자아이를 안아주다가 늑골을 다쳤다. 염좌 진단을 받았고, 3~4주 정도 지나면 통증이 사라지고 행여 금이 갔을 늑골도 다 붙을 거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그래서 말했다. 염좌는 시간이 약이더라고. 통증 완화를 위해서 약을 먹을 수도 있고, 물리치료를 받을 수도 있지만, 굳이 그런 치료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염좌는 완치될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그런데 사도 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뉴스를 본 지인에게서 그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그것도 아주 한심하다는 투로.

"10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어야 해? 이제는 그만 잊고 앞을 보며 나가야지. 언제까지 과거사에 매달려 있을 거야?"

순간 감정이 울컥하고 치솟았다. '과거를 고집하는 것보다 일본과의 협력의 중요성을 전면에 내걸면서 미래로 향해야 한다'던 지난 삼일절 대통령의 연설이 떠올랐다. 지인의 정치적 성향을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마구 몰려들었다.

국회는 반대했는데 찬성한 정부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회원들이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청사앞에서 일제 강제동원 역사는 제거한 채 일본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에 합의한 윤석열 정부의 대일 굴종외교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 강제 노역이 이뤄졌던 일본 니가타현 사도 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사도섬의 광산은 금, 철, 구리 등을 과거 수공업 방식으로 생산하는 곳이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1500여 명이 강제로 끌려와 혹독하게 시달렸던 곳이었다.

지난 7월 25일, 국회는 사도 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을 철회하는 결의안'을 재석의원 전원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국민의 생각이 반영된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틀 뒤인 27일, 우리 정부는 국회의 결정을 무시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위원국의 하나로서 찬성표를 던졌고, 만장일치라는 결과를 도출해 냈다.

니가타현 주민들의 기뻐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일본 지도자들은 한국과 일본이 함께 일구어낸 동맹 업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떠서 떠들어 댔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한국 정부는 말한다. '조선인의 강제성을 띤 노동'이었음을 드러내는 전시물을 설치할 것이라는 합의 후에 내린 결정이었다고. 하지만 언론보도에 따르면, 실제로 광산에서 2km나 떨어진 박물관 구석에 전시된 조선인 노동자의 생활상에는 어느 곳에도 '강제성'이라는 표현은 없다고 한다.

2015년 군함도 때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군함도 등재 때도 유네스코에서 '조선인 강제노동'을 드러내는 내용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번에 우리 정부는 지켜지지도 않을 약속을 근거로 사도 광산의 유네스코 등재에 동의해 버린 것이다.

착취를 당하다 수많은 조선인이 목숨을 잃었다. 돌아온 이들의 마음에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낭자하다. 내 자식이 누구에게 맞고 왔는데, 그 상처에 소금을 뿌릴 부모가 있겠는가? 그런데 현 정부는 그런 부모와도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자녀를 돌볼 생각이 없는 부모의 선택 덕분에 끔찍한 노동 착취와 인권 유린이 가득했던 현장은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동의였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강제로 혹독한 노동에 고통당했던 피해자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호소는 어디를 향한 것인가? 국회를 통해 의사를 표현한 국민의 소리는 왜 무시되었는가? 세계문화로 등재되고 기뻐하는 일본인들을 바라보며 왜 우리는 씁쓸한, 아니 고통스러운 침을 삼키고 있어야 하는가? 우리의 역사적 고통과 자존심은 대체 어떠한 유익을 위해 짓밟혀야 하는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닌데,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일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이미 오랜 세월 지났으니 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해도 괜찮을까? 과거는 과거로 덮고, 앞을 보며 나아가자고 하면 정말로 괜찮은 미래가 보장되는 게 맞는 걸까? 시간이 약이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다 의미가 있으니 그냥 수긍하면 되는 걸까? 

방관해서는 안 된다
 
 한국과 일본이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되었다. 사진은 일본 사도광산 내 터널. (서경덕 교수 제공)
ⓒ 연합뉴스
늑골염좌로 인한 통증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여전해서 아이를 안을 때마다 내 몸이 알아서 조심한다. 몸통은 뒤로 빼고 두 팔을 먼저 벌려 아이를 안아준다. 같은 아픔을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본능과도 같은 움직임이다. 행여 시간이 많이 흘러 그때의 일을 완전히 잊는다면 나는 똑같이 다칠지도 모른다. 그럴 때 나는 어김없이 후회할 것이다. '바보처럼 그때를 잊고 방심했구나' 하면서.

시간이 지나서 아픈 기억을 다 잊는 게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역사의 아픔은 특히 그러하다. 기억해야 똑같은 아픔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고 후세에 전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지 않은가.

또한 마음의 상처는 단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상처를 준 이의 진심 어린 사과와 고통에 대한 진정 어린 공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이 겪은 아픔을 그저 시간이 약이겠거니 하면서 방관해서는 안 된다.

사회가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상처를 준 이가 잘못을 뉘우치고 진심 어린 사과의 자리에 설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야 한다. 적극적인 치유의 과정이 있어야 그나마 상처에는 딱지가 앉을 것이고, 딱지가 떨어질 때쯤에는 웃으며 하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한국 정부의 사도 광산 유네스코 등재 동의는 못내 아쉽다. 헤아리고 대변해야 할 국민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겨준 정부가 과연 누구의 정부인지 묻고 싶다. 현 정부는 대한민국의 정부로서 어떠한 모습을 갖춰야 하는지 정체성을 확립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일본의 정부인가?"라는 질문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닐 테니 말이다. 대한민국의 국민과 민족의 아픔을 돌아볼 의지가 없는 정부라면, 당최 존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지인과 논쟁하기 싫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그저 삼켰다. 같은 일을 바라보며 다른 생각을 품는다는 것. 착잡하면서도 씁쓸하다. 그 마음을 글로나마 뱉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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