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의 공포’ 에 아시아 증시 털썩…냉각된 제조업·고용이 불씨
2일 아시아 증시가 일제히 급락한 ‘검은 금요일’을 맞았다. 부진한 미국 제조업 지표가 불씨가 돼 전 세계에 ‘R(Recessionㆍ경기침체)의 공포’가 엄습하면서다.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피벗(Pivotㆍ통화 정책 전환)’ 시점을 놓친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달 제조업 PMI 예상치 하회, 4개월 연속 하락
R의 공포를 키운 건 제조업 경기 위축이다. 1일(현지시간) 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집계한 지난달 구매자관리지수(PMI)는 46.8로 시장 예상치(48.8)는 물론 전달인 6월 집계치(48.5)도 밑돌았다. 지난해 11월(46.7) 이후 8개월 만에 가장 낮다
PMI는 미국 ISM이 매달 400개 이상 기업의 구매ㆍ공급 관련 임원을 대상으로 경기 상황 및 전망을 묻는 설문 조사다. 제조업 PMI가 50 밑이면 제조업 경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절반 이상으로 많다는 의미라 향후 이 분야 업황이 수축할 가능성이 높다. 통상 제조업 PMI가 42.5 밑까지 떨어지면 제조업은 물론 전체 경제까지 수축하는 것으로 본다.
“1년 만 가장 급격한 주문 감소 경험”
이날 발표한 미국 제조업 PMI는 내용도 좋지 않았다. 제조업 PMI를 이루는 5개 하위 PMI(신규주문·생산·고용·공급배송·재고) 중에 전월과 비교해 수치가 올라간 것은 공급 배송(52.6)뿐이었다.
실제 ISM에 따르면 지난달 PMI 설문 조사에서 대부분의 응답자는 예상보다 경기 상황이 더 좋지 않다고 답했다. 음료 및 담배 업종의 한 응답자는 “예상보다 더 매출이 줄었는데 소비자들이 지출을 줄이기 시작한 것 같다”고 답했다. 금속 업종의 응답자는 “1년 만에 가장 급격한 주문 감소를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조업 침체 고용 둔화 이어질까 우려
제조업은 고용 창출에 기여하는 정도가 높다. 이 때문에 제조업이 침체하면 고용 감소→소비 여력 하락→경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실제 이날 발표한 제조업 PMI 중 하위 항목인 고용 PMI는 지난달 43.4를 기록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본격 확산하기 시작했던 2020년 6월(42)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ISM에 따르면 설문 응답자 중에서 직원 감축을 하겠다고 응답한 의견은 채용하겠다는 의견에 거의 두배에 달했다.
이 같은 고용 둔화 우려는 제조업 PMI뿐 아니라 다른 지표에서도 나타난다. 2일(현지시간) 미국 노동통계국은 지난달 미국의 비농업 일자리가 전월 대비 11만4000명 늘었다고 밝혔다. 이는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18만5000명)도 크게 밑돌았을 뿐 아니라, 직전 12개월간 평균 증가폭(21만5명)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이런 비농업 일자리 증가 폭은 코로나19가 확산하던 2021년 1월(-22만7000건) 이후 3년 6개월 만에 가장 작다.
특히, 실업률도 코로나19 수준으로 고개를 들었다. 지난달 실업률(4.3%)이 시장 예상치(4.1%)를 넘어섰다. 6월 실업률(4.1%)과 비교해서도 0.2%포인트 상승했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됐던 2021년 10월(4.6%)이후 2년 9개월 만에 최고치다.
美 국채 10년 4% 깨져, 주식 시장 ‘검은 금요일’
미국 경기 침체 공포가 확산하면서, 시장도 요동쳤다. 1일(현지시간)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전 거래일(4.03%) 대비 0.05%포인트 하락한(채권값 상승) 3.98%를 기록했다. 3%대로 내려앉은 것은 지난 2월 이후 약 6개월 만이다.
글로벌 주식 시장도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검은 금요일’을 맞았다. 이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전장보다 1.37%, 나스닥 종합지수는 전장보다 2.30% 급락했다. 일본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는 전 거래일 대비 5.81%, 대만 자취안 지수는 4.43% 급락했다.
한국 코스피도 종가 기준 전 거래일보다 3.65%(101.49포인트) 떨어지며, 2700선이 무너진 2676.19를 기록했다. 하락률로는 2020년 8월 20일(3.66%) 이후 약 4년 만에, 지수 하락 폭으로는 2020년 3월 19일(133.56포인트) 이후 4년 5개월 만에 가장 컸다. 같은 날 코스닥도 전 거래일 대비 4.2% 내린 779.33에 장을 마쳤다.
“7월에 내렸어야” ‘피벗 실기론’…9월 ‘빅스텝’ 전망도 늘어
R의 공포가 확산되면서 파월 의장이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놓쳤다는 ‘피벗 실기론’도 나온다. 미국 금융 정보업체 바이털놀리지의 아담 크리사풀리 전략가는 “제조업 PMI가 예상치보다 떨어진 것은 경제 성장 여건이 냉각되고 있다는 또 다른 신호”라며 “Fed가 9월까지 기다리지 않고 7월에 금리 인하를 시작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미국 대선을 앞둔 불확실성도 미국 경기를 누르는 요인 중 하나다. 특히 에너지 등 일부 산업은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책 방향이 달라 대선의 향배가 정해져야 신규 투자와 생산에 나설 수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Fed가 오는 9월에 기준금리 인하 속도를 높이는 ‘빅스텝(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을 밟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일(현지시간)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미국 고용보고서 발표 후 9월 빅스텝 확률은 하루 새 22%에서 61.5% 높아졌다.
“일부 지표로 美 경기 침체 우려 과도”
침체 우려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2분기 미국 GDP가 전 분기 대비 2.8%(연율) 상승하고, 3분기에도 비슷한 증가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특히 제조업은 미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1% 정도로 크지 않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실업률이 최근 많이 올라왔다고 해도 아직 Fed의 장기 목표 수준(4.1%)에 부합하는 정도고, 올해 주요 기관들이 예상하는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여전히 높다”이라며 “일부 지표만 가지고 경기 침체를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고 했다.
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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