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브로커일까, 구원자일까…연극 '당연한 바깥'이 던지는 질문

홍지유 2024. 8. 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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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런 일을 했기 때문에 받아줄 수 없단 말입니까?"

영국의 난민수용소에서 난민 신청 결과를 받아든 북한 청년은 이렇게 소리친다. 그가 받아든 통보서에 적힌 단어는 '거부'. 심사 담당자는 그에게 북한에서 국경 경비대로 일하지 않았었냐며, "당신은 북한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을 막는 일을 했다"고 상기시킨다. 그랬던 그가 난민 신청을 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라는 것.

연극 '당연한 바깥' 공연 사진. 청년은 북한에서 국경을 경비하는 군인이었으나 탈북 후 영국으로 향한다. 사진 박태양


청년은 탈북을 시도하는 주민들을 잡아들이는 군인이었으나 동시에 돈을 받고 사람들을 중국으로 넘기는 브로커이기도 했다. 그는 국군포로인 할아버지를 고향인 남한으로 보내주고 싶어하는 손자이며, 하나뿐인 여동생의 탈북을 도운 오빠이기도 하다. 그는 군인이지만 난민이다. 북한 사람이지만 남한 군인의 손자다. 그가 서 있는 곳은 안일까, 바깥일까.

연극 '당연한 바깥'(연출 송정안)은 탈북 브로커의 여정을 통해 소수자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연극이 시작되면 안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바깥이 되고, 바깥은 안이 된다. 이야기는 한 탈북 여성이 주중 스페인대사관에 잠입하면서 시작된다. 여자는 간발의 차이로 대사관 대문 앞에서 딸을 공안에게 빼앗겼다며 울부짖는다. 하지만 이내 그가 아이의 생모가 아닌, 탈북 브로커이자 밀수꾼임이 드러난다.

연극 '당연한 바깥' 공연 사진. '여자' 브로커는 남과 북을 오가며 활동하는 경계인이다. 사진 박태양


브로커는 "아버지의 임종을 봐야겠다"며 다시 월북하게 도와 달라고 간청하는 탈북자에게 "돈은 선불"이라고 답할 만큼 철저히 이익에 의해 움직이지만, 막상 '미션'이 시작되면 목숨을 걸고 이들을 돕는다. 그 역시 탈북자로 남한과 북한 어느 곳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경계인이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에게 길을 내주는 일은 그에게는 "갈라진 바위틈처럼 좁은 길로 오가는" 일이며, "긁히지 않고서는 지나갈 수 없는" 길이다.

작품에는 여자 브로커와 난민이 된 북한 군인 청년 외에도 수많은 경계인이 등장한다. 청년의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으로 참전했다 포로로 붙잡힌 후 정전 후 송환되지 못하고 북에 남았다. '적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북한의 최하층민으로 살았지만, 그곳에 정착해 아이를 낳았다. 조국은 정전 후에도 그를 찾지 않았다. 그가 속한 곳은 남일까, 북일까. 국정원 직원 종우는 북한에 사는 중국인이었지만 북을 떠나 남한으로 귀화했다. 끝없이 '안'을 찾아 헤맸지만, 북한도, 중국도, 남한도 그에게는 끝없는 '바깥'일 뿐이었다.

연극 '당연한 바깥' 공연 사진. 탈북 브로커(왼쪽)은 의사(오른쪽)에게 도움을 받지만 극 후반부에는 의사가 역으로 브로커에게 도움을 받는 처지가 된다. 사진 박태양

작품은 국경을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삶을 통해 '경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관객은 어디가 바깥이고, 어디가 안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극장 역시 무대를 사이에 두고 객석이 마주 보도록 했다. 배우들은 객석과 무대를 자유롭게 오간다. 안과 밖의, 앞과 뒤의 구분은 없다. 마치 "당신도 경계에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2023년 제59회 백상예술대상 백상연극상, 제31회 대산문학상을 받은 이양구 작가의 신작이다. 자유자재로 북한 혜산 사투리를 쓰는 배우들이 양파처럼 겹겹이 싸인 내면을 드러내 보이며 인간은 모순적이라는 명제를 상기시킨다.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은 강지은이 주인공 탈북 브로커 '여자'를 연기한다. 중국인이었지만 한국으로 귀화해 국정원 직원이 된 종우 역에 배우 우범진, 북한 군인 청년에 장석환이 발탁됐다.

공연은 4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볼 수 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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