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언즈'에만 의존한 '슈퍼배드 4', 셀프 패러디됐다

최해린 2024. 8. 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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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슈퍼배드 4>

[최해린 기자]

(*이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은 독특한 영화 제작사다. 말하는 동물들이 노래를 부르는 <씽> 시리즈나 닌텐도의 게임을 기반으로 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등 특이한 소재를 기반으로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든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일루미네이션만의 개성은 바로 '아티스트 존중'이라는 브랜드 철학이다.

이를 잘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는 '생성형 AI'에 대한 일루미네이션의 태도에서 드러난다. 생성형 AI라는 신기술은 등장하자마자 다양한 스튜디오 운영자들을 매료시켰는데, 디즈니의 드라마 <시크릿 인베이젼>은 오프닝 크레딧 자체를 AI가 만든 영상으로 대체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결정은 영상매체 제작을 가속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는 한편, 아티스트들의 저작권을 무시함과 동시에 그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부작용도 불러왔다.

일루미네이션은 이러한 최근의 경향을 비꼬기라도 하듯, 개봉작 <슈퍼배드 4>의 홍보 자료에서 생성형 AI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작중의 마스코트 '미니언즈'가 비웃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세계 각지의 애니메이터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을 우려하는 상황 속에서, 자사의 아티스트들을 보호하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내비친 것이다.
 
 영화 <슈퍼배드 4> 홍보자료
ⓒ 일루미네이션
 

이러한 일루미네이션의 최근작 <슈퍼배드 4>가 개봉했다. 시리즈 내에서 악당의 길을 저버리고 선행의 길을 걷기로 한 주인공 '그루'가 납치당한 자기 아들을 되찾기 위해 학창 시절의 숙적 '맥심 르말'과 맞서 싸운다는 내용이다.

수많은 플롯 가능성, '선택과 집중'은 어디로

<슈퍼배드 4>의 줄거리는 사뭇 단순해 보이지만, 막상 영화 본편을 뜯어보면 수많은 '서브플롯'이 있다. 큰 이야기의 줄기 속에서 주인공 캐릭터들은 서로 다른 위치로 찢어져, 각자의 여정을 떠나게 되는데, 이들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악당을 피해 새로운 동네로 이사 간 그루 가족의 적응기
2) '악당퇴치본부'에 남은 '미니언'들이 초능력을 얻는 이야기
3) 그루와 친아들 '그루 주니어'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유대감을 쌓는 이야기
4) 그루가 이웃의 아이 '파피'가 악당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야기

이렇듯 많은 이야기가 한꺼번에 전개되다 보니 장면 전환은 지나치게 빠르고, 한 이야기에 집중할라치면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게 된다. 귀여운 미니언들의 슬랩스틱 코미디도 이러한 정신없는 전개를 성공적으로 봉합해 주지는 못한다. 그러다 보니 교훈은 애매해졌고, 장르적 쾌감 역시 여러 장면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버렸다. 스토리의 '선택과 집중'을 놓쳤기에 발생한 결과다.

산만한 <슈퍼배드 4>를 구원할 소재는 사실 작품 내에 존재한다. 입양한 세 딸을 거둔 그루 가족에 친아들 '그루 주니어'가 등장했다는 설정이 바로 그것이다. 애당초 <슈퍼배드> 시리즈를 성공으로 거둔 것은, 최고의 악당을 꿈꾸는 음침한 주인공이 입양한 아이들을 통해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아버지로서 각성해 자아실현에 성공한다는 설정이었다. 시리즈의 마스코트가 된 미니언들은 어디까지나 '비정상 가족'인 그루 가족 이야기의 감초일 뿐이었다.
 
 영화 <슈퍼배드> 1편 스틸컷
ⓒ 일루미네이션
<슈퍼배드 4> 역시 1편의 성공 요인을 잊지 말고 더욱 가족 이야기에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입양아들과 생물학적 자식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이라는, 뻔하지만 먹혀들 수 있는 소재가 있었음에도 이를 제대로 탐구해 보지 않은 것은 분명 아쉬운 지점이다.

경쟁사 풍자도 좋지만, 우선 자사 작품부터

<슈퍼배드 4>에서 또 눈에 띄는 요소는 바로 경쟁사인 디즈니에 대한 패러디다. 이는 미니언들이 생체 실험을 통해 초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개별 플롯에서 드러나는데, 미니언들은 이 새로운 능력을 통해 시민들을 구하려고 애쓰지만 결국 도시를 박살 내고야 만다. 이 과정에서 맨몸으로 기차를 막는 <스파이더맨 2>의 장면 등 온갖 히어로 영화 속 명장면을 우스꽝스럽게 되풀이하는 것은 덤이다.
 
 영화 <슈퍼배드 4> 스틸컷
ⓒ 일루미네이션
  

"슈퍼히어로들 정말 지긋지긋해!"

미니언들이 도시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자 한 시민이 외친 말이다. 오로지 속편만을 위해 존재하는, 작품성을 상실한 슈퍼히어로 영화에 대한 적극적인 풍자를 완성하는 한마디다. 하지만 이러한 타사 작품에 대한 지적은 <슈퍼배드 4> 자체의 미묘한 완성도 때문에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이처럼 '상대방에 대한 풍자'가 '본편의 가치'를 넘어서 독이 된 경우는 단연 <슈퍼배드 4>만의 것이 아니다. 아마존 프라임의 드라마 <더 보이즈>는 마찬가지로 슈퍼히어로 영화의 클리셰와 정치 현안에 대한 풍자를 잘 녹여 왔지만, 최근 공개된 시즌 4는 그 풍자가 본편의 플롯을 압도해 버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더 보이즈>는 작품 밖 요소에 대한 코멘터리에 집중한 나머지, 작중 캐릭터들은 오로지 관객을 충격에 빠뜨리기 위한 쇼크 밸류(shock value)로 소비해 버렸다. <슈퍼배드 4> 역시 미니언즈를 통해 슈퍼히어로 장르에 대한 신랄한 지적을 이어가지만, 정작 늘어난 미니언즈의 분량은 의미 있는 결말에 닿지 못하고 코미디적 순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꼴이 되었다. 본편 역시 자신이 그동안 지적해 온 요소를 그대로 답습한, 속편을 위한 속편이자 '셀프 패러디'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처럼 <슈퍼배드 4>는 일루미네이션의 확고한 경영 철학과 독특한 마케팅을 두고 기세 좋게 출발했지만, 결국 영화 자체로는 미묘한 성과를 거두게 됐다. 하지만 이러한 아쉬운 점과 별개로, 적재적소에 사용된 배경음악과 쉴 새 없는 코미디는 <슈퍼배드 4>를 그럭저럭 극장에서 볼만한, 흥미로운 여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다. 일루미네이션의 다음 작품은 본편의 안일함을 극복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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