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에 또 '일본도 살인사건'…국회가 싸우느라 못 막았다
서울 은평구에서 벌어진 ‘일본도 살인 사건’ 이후 무기 규제가 느슨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국회에서 규제 강화에 여야가 합의하고도 상임위가 안 열려 관련 법안이 폐기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29일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에서 30대 남성 백모씨가 같은 단지 주민인 A씨를 살해했을 때 사용한 도구는 길이 105㎝의 일본도였다. 백씨는 지난 1월 이를 구입했고, 경찰로부터 도검 소지 승인을 받은 상태였다.
국내에서 일정 크기 이상의 도검을 보유하려면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총포 등 다른 무기와 비교하면 절차가 간단한 편이다. 경찰서에 소지 허가 신청서를 내면서 운전면허증을 보여주고 수수료 3000원만 내면 되기 때문이다. 총포는 정신질환 등을 확인한 신체검사서와 정신과 전문의 소견이 필요하다.
또 총포의 경우는 3년마다 주기적으로 소지 허가를 갱신해야 하지만, 도검 소지는 갱신 의무가 없다. 일단 허가를 받으면 사실상 영구 소지가 가능한 셈이다.
정치권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지난해 6월 경기 광주시 한 빌라 주차장에서 70대 남성이 주차 문제로 다투던 주민을 길이 101㎝ 일본도를 휘둘러 숨지게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 두 달 뒤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이 도검 규제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에는 총포 외에 ▶도검 ▶분사기 ▶전자충격기 ▶석궁 등에 대해 주기적으로 소지 허가를 갱신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김 의원은 법안을 발의하며 “소지자들의 정신질환, 범죄 여부 등을 주기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법안 검토보고서에도 “부적격자가 무기를 소지하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박규찬 행안위 전문위원은 “도검 등의 무기도 총포와 마찬가지로 살상력을 갖춘 위험한 물건”이라며“도검과 같은 방식으로 취급되는 석궁·전자충격기 등을 합하면 약 60만건이나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23일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여야 이견 없이 이 법안을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하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발목이 잡혀 자동 폐기됐다. 지난 연말부터 채상병 특검법 등으로 여야가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면서, 법사위 간사 간 회의 개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사위는 각종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 체계·자구 심사를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22대 국회가 개원한 후 여야는 “신속하게 법을 정비하겠다”며 뒤늦게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달 31일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과 모경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사한 규제 법안을 다시 제출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국회 개원 2개월 동안 여야 합의로 처리된 법안이 사실상 0건이다”며 “정쟁은 잠시 접어놓고 시급한 법부터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재 기자 kim.jeong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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