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억 들어도 뽑아라" 미사경정공원 조명탑…대법서 제동, 왜
호수를 따라 난 자전거길로도 유명한 경기도 하남시 경정공원이 난데없이 대법원 판결의 무대가 됐다. 인공호수 옆에 우뚝 선 조명탑 1개 때문이다. 이 조명탑을 뽑아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두고 3년간 법정 다툼이 벌어졌다.
경정공원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조정·카누경기를 위해 조성됐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이곳을 새로 단장해 경정 경기장으로 만들기로 하고, 하남시로부터 ‘개발제한구역 내 행위허가’를 받은 뒤 2002년 호수 주변에 전광판 1대과 조명탑 11개를 세웠다.
그런데 약 20년이 흐른 2021년 3월, 하남시가 공단 측에 원상복구를 요구하고 나섰다. 조명탑과 전광판이 개발제한구역에 세워진 불법시설물이라는 것이다. 공단 측은 “허가를 받은 후 설치한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하남시는 이에 더해 공작물 축조 허가를 받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공단은 “하남시의 시정명령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을 받으면서 쟁점은 허가받은 부지 경계 밖에 세워진 1개의 조명탑으로 좁혀졌다. 법원은 이 조명탑을 제외한 나머지 10개는 아무 문제 없이 세워졌다고 봤다. 공단 측은 나머지 1개에 대해서도 적법하게 일괄 허가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또 설령 허가가 없었다고 해도 이제 와서 원상복구를 명령하는 건 신뢰보호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고심 끝에 문제의 해당 조명탑을 철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부지 경계선 밖에 조명탑이 세워진 이상 적법한 허가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하남시가 20년 동안 특별한 시정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달리 볼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허가받은 내용대로 조명탑을 세우지 않은 건 공단 측 잘못이므로, 공단에서 원상복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2심 판단 역시 같았다. 재판부는 “철거 및 재설치 비용에 9억 3000만원이 소요되고, 공사기간 동안 경정장 운영에도 어느 정도의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행정의 적법절차원칙을 관철할 공익상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하남시가 그동안 이 조명탑에 위법성이 있다는 걸 모르고 있다가 민원 처리 과정에서 이를 인지하게 된 점도 고려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같은 판결을 뒤집고 공단 측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2심 법원으로 되돌려보냈다고 1일 밝혔다.
대법원 역시 문제의 조명탑이 허가 없이 세워졌다는 점 자체는 인정했다. 그러나 이 조명탑을 철거했다가 다시 세우게 해서 얻는 이익에 비해 공단 측이 받는 불이익이 지나치게 크다고 봤다. 대법원은 이 조명탑이 야간 경기 때 반환점을 비춘다는 점을 언급하며 “철거할 경우 안전 사고가 우려될 뿐만 아니라 심판의 판정과 관객의 관람에도 상당한 지장이 초래돼 사실상 야간 경기 전체가 제한된다”고 했다.
아울러 이 조명탑이 높이 약 34m, 무게 약 18.5t(톤)으로 상당한 규모라는 점을 짚으며 “조명탑을 철거하더라도 공단으로서는 다시 하남시 허가를 받아 같은 위치나 인근에 같은 역할을 하는 조명탑을 다시 설치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적·경제적 비용이 소요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같은 상황을 보면 조명탑 철거 시 공익법인인 공단이 받는 불이익이 너무 크다”며 “개발제한구역 지정의 공익상 필요가 공단이 입을 불이익을 정당화할 만큼 강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최서인 기자 choi.seo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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