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용리단길 첩보전

김지방 2024. 8. 2.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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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방 디지털뉴스센터장

대통령실 이전 뒤 용산 일대에
해외 스파이 급증했다는 소문

하지만 외국과 달리 간첩죄
적용 범위 좁아 방첩에 한계

국정원의 ‘코드 인사’도 문제
전문성 위주 인사 원칙 세워야

서울 지하철 삼각지역 15번 출구에서 대통령실 입구까지 거리는 160m. 그 사이 한강 쪽으로 골목이 있다. 신용산역 앞까지 이어지는 이 길에 식당과 카페가 즐비하다. 용리단길이라 불리는 곳이다. 국방부와 미군기지 같은 군사시설이 가깝다. 철길도 있다. 주변 집들은 오랫동안 손대지 못해 낡았다. 군인들이 즐겨 찾는 소박한 곳들이 많아 대구탕 골목으로 불렸다.

2022년 대통령실이 이전해 왔다. 공무원이나 정치권 인사는 물론이고 기업, 기자, 외교관들까지 이 동네에 들락거리게 됐다. 식당이 고급스러워지고 카페까지 들어서면서 옛 동네의 정취와 세련된 감각이 어우러졌다.

이 동네를 가끔 드나들던 한 방위산업체 관계자는 최근 보안 담당자에게 이런 권고를 받았다. “삼각지 근처 식당에서는 중요한 모임을 하지 마세요.” 용리단길 식당에서 전 세계 각국의 정보 염탐이 이뤄지고 있다는 경고였다. 이 동네 식당 분위기가 허름하고 한국말도 잘 못하는 듯 보이는 외국인 종업원들도 많아 방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실은 도청과 감청, 심지어 식당 종업원을 통한 정보 수집도 늘 이뤄진다는 게 보안 당국의 판단이다. 이 이야기를 전해준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용산 근처 식당마다 간첩이 바글바글하답니다. 아마 전 세계 간첩이 다 있을 겁니다.”

얼마 전 정부 산하 한 연구기관에서 있었던 일은 더 현실적이다. 오랜만에 저녁 회식을 위해 사무실 근처 중국식당에 모였는데, 주문한 지 1시간이 넘도록 음식이 들어오지 않았다. 1시간 동안 아무 의심 없이 별별 얘기를 다 나누던 직원들은 갑자기 긴장했다. 결국 이 일로 보안 감사까지 이뤄졌다. 이 중국식당의 주인이 누구인지, 도청 장치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도 은밀하게 조사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아무런 증거도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 식당은 이용을 자제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이쯤 되면 2022년의 잠실 동방명주 사건이 떠오른다. 동방명주라는 중식당이 한국 내 중국인과 반중국 세력을 감시하기 위한 중국 경찰의 아지트라는 폭로가 나왔고, 당사자들은 부인했다. 검찰은 올해 2월 식당 관계자들을 간첩죄 대신 식품위생법과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한국의 위상이 커지면서 첩보전도 치열해졌다. 식당에서 밥 먹을 때도 주변을 살펴야 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국군정보사령부의 군사기밀 유출 사건은 충격이다. 정보사는 물론이고 국가정보원이나 경찰은 뭘 했는지 묻고 싶다. 경찰에 이관된 대공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안보는 국경의 구분이 없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도 사라졌다. 국정원과 경찰이 업무 영역을 구분한 지금의 시스템이 과연 효율적인지 살펴봐야 한다.

법 문제도 있다. 논란이 되는 간첩죄의 경우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영주·홍익표·이상헌 의원과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이 적용 범위를 넓히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고치지 못했다. 국민의힘 최재형 의원도 외국 대리인 등록법안을 발의했으나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외국 대리인 등록 제도는 이달 초 미국 검찰이 한국계 외교 전문가 수미 테리 박사를 기소한 근거였다. 미국은 외국 정부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은 로비스트로 등록해 공개적으로 활동하도록 하고 어기면 엄격하게 처벌한다. 이 법을 근거로 미국 연방 상원 외교위원장까지 지낸 현직 상원의원 로버트 메넨데즈가 이집트 정부를 위해 일했다며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인사도 중요하다. 우리 정보기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몸살을 앓는다. 김대중정부부터 윤석열정부까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난 정권에서 승진하거나 요직을 맡은 인물은 밀어내는 게 관례가 됐다. 수십년 근무한 직원도 출신 지역과 사상 검증으로 편을 가른다. 업무 역량과 전문성은 제쳐두니 5년마다 대선을 치르는 나라에서 어느 정보원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일하겠는가.

조태용 국정원장이 대규모 인사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치색을 떠나 전문성 있는 인사를 배치할 방침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조 원장은 아웅산 참사 때 희생된 이범석 외무부 장관의 사위다. 노무현정부 때 청와대에서 근무하고 북핵기획단장을 맡았다. 박근혜·이명박정부에서도 전문성을 인정받아 중요한 역할을 맡아 왔다. 그가 인사 원칙을 새롭게 세워주길 바란다.

김지방 디지털뉴스센터장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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