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아시아의 시대, 한중일은 준비하고 있는가?

2024. 8. 2. 00:3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이 인구감소, 생산성 하락, 저성장이라는 큰 벽에 부닥쳐 있다. 한때 기세등등하던 중국의 고성장은 2020년대 들어 꺾여 2010년대 평균 성장률 7.7%에서 지난 4년간은 4.7%로 떨어졌다. 그 결과 중국의 세계경제 성장기여율도 2010~19년 32%에서 2020~23년 24%로 떨어졌다. 중국의 경제활동인구는 이미 2015년부터 줄기 시작했고 투자율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긴 하나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있다. 이를 보완해주어야 할 생산성은 2010년대 이후 하향 추세를 지속하고 있다. 최근 중국 정부는 다시 재정, 신용 확대를 통한 부양책을 내놓고 있으나 이는 일시적 효과에 그칠 뿐이다.

「 한중일 경제, 생산성 함정 빠져
지식·기술·혁신, 지속성장 기본
대학 발전과 연구의 보상 중요
3국간 지식 교류, 협력 확대해야

30여 년 전 일본이 이미 이런 길로 들어섰다. 무역제재, 플라자 합의 등으로 미국의 견제가 강화되고 고령화가 시작되며 성장세가 꺾이자 재정과 통화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을 시도해왔지만, 거품과 위기만 조장하고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구조조정이 지연되며 생산성이 하락해 2010년까지 지켜오던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지위를 이제 인도에까지 추월당하면서 세계 5위의 경제로 내려앉게 되었다. 손쉬운 재정금융 확대에 의존하다 보니 세계 최고 국가부채 비율을 갖게 되었다.

저성장 기조로 접어든 한국경제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IMF·KDI·한국은행

한국도 지금 비슷한 길로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공급과 투자 증가율이 내려가는 상황에서 성장률 하강을 막기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이 필수적이나 이 또한 지난 몇 해 동안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의하면 1970년대 이후 지난 50여년간 평균적으로 한국경제 성장요인의 약 24%를 생산성 향상이 기여했으나 2010년대 이후 하락하며 지난 3년간은 7.5%로 떨어졌다(조태형, 『한국경제 80년 및 미래성장전략』, 2023). 만약 지금과 같은 추세로 가면 10년 후에는 성장률이 0%대로, 20년 후에는 마이너스로 돌아서게 된다. 그리 먼 앞날의 얘기가 아니다.

근대 산업화 문명의 발원지는 서구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부르는 지금도 그것이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는 그 파도가 밀려올 때 식민지로 전락하기도 했고, 서구 기술과 제도를 배우며 따라왔을 뿐이다. 과학기술과 정치·경제 제도의 발전은 단순히 창의적이고 뛰어난 과학자들, 사상가들, 지도자들이 그 땅에 뚝 떨어져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지식과 정보를 탐구하고 토론과 창의력 발휘를 자극하는 사회적 분위기, 신기술 개발이 보상받는 시장환경과 제도기반, 포용적 사회문화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직 동아시아 3국은 서구를 따라가지 못한다. 한·중·일 세 나라 모두 해외의 기술, 제도를 모방해 제조업이 확대되던 단계에서는 높았던 생산성 향상이 스스로 혁신과 개발을 해 나가야 하는 단계에 이르면서 꺾이게 된 것이다.

중국이 최근 과학 논문 발표 수에서 미국을 추월하기 시작했으나 첨단 기술과 전반적 과학 수준은 미국에 뒤진다. 동양이 서구에 못 미치는 것은 과학기술뿐이 아니다. 사회과학은 더 하다. 영미에서 발전한 현대경제학은 그들의 시장환경과 발전과정에 기초한 것이다. 경기대응책은 있으되 후발산업국 특징인 성장률 급상승, 급강하에 따른 구조조정 대책은 없다. 중국이나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길을 따라가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필요한 경제학을 발전시켜야 한다. 재산 소유방식에 대한 선호도, 산업·금융·고용 구조, 성장 과정과 시장 관행이 다르고 구조적으로 성장률이 급락하는 이 나라들에서 경기대응책만 답습하다 보니 결국 신용거품, 젊은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집값, 자산 양극화, 인구절벽 앞에 서게 되었다.

7월 8일 니어재단이 주최한 '제6차 니어 한중일 서울 프로세스'에서는 동북아시아의 지속 가능한 평화와 번영을 위한 로드맵 제작을 목표로 삼았다. 이번 행사는 경제와 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당면한 과제들의 해결책을 모색했다. 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21세기 중반이 되면 중국,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경제가 세계경제 절반을 넘어서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구미가 세운 세계경제 질서, 국제기구 지배구조(global governance)의 개편이 불가피하게 된다. 한·중·일이 아시아의 리더로서, 나아가 세계 질서 개편에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나라들에서 빠른 지식의 발전과 축적이 일어나야 한다. 한국은 덩치가 작은 나라지만, 지식수준마저 뒤처져선 안 된다.

결국은 기본이 중요한 것이다. 그 기본은 지식과 기술과 혁신능력이다. 그것 없이는 경제성장도, 국가번영도 지속적이기 어렵다. 세계 질서 변화의 주도적 역할은 더더욱 어렵다. 지금 한국은 대학을 발전시키고, 지식과 연구에 대한 사회적 보상을 높여 나가야 한다. 한·미·일 협력도 중요하지만 긴 시계에서 보면 한·중·일 지식 교류와 협력, 상호 자극과 배움 역시 매우 중요하다. 한·미·일 협력이 정치외교의 과제라면, 한·중·일 지식 교류 확대는 미래를 보는 지식사회가 추진해 나가야 할 과제다. 3국이 갈등과 반목의 굴레를 넘어 지식·경험 공유와 협력의 길을 넓혀 나가지 않으면 세계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