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예술] ‘음악 도시 빈’의 아주 특별한 여름
뜨거운 햇살이 눈 부신 계절, 한여름의 열기 속에서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얼음 가득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끌리지만, 경쾌한 선율로 활력을 주는 음악도 우리에게 시원함을 선사하지 않을까. 음악으로 여름을 즐기는 도시가 있다면 오스트리아의 빈이 바로 그곳이다.
이 도시는 음악사에서 각별하다.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으로 대표되는 제1 빈 악파가 18세기 음악사의 중심을 형성했다면, 슈베르트와 말러, J 슈트라우스 등 걸출한 작곡가들을 배출했고 현대음악의 장을 연 쇤베르크·베르크·베베른이 제2 빈 악파를 형성하며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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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채로운 음악 공연에 뜨거운 빈
황금홀의 모차르트, 광장의 록
지금도 살아있는 ‘음악문화유산’
」
이러한 명성에 걸맞게 올여름 빈은 다채로운 음악 이벤트로 꽉 차 있었다. 이 도시를 방문하면 가장 먼저 들르게 되는 성 슈테판 성당에서는 7월과 8월 주말마다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성당 앞에는 티켓 판매원들이 목청을 높이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프로그램은 JS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과 비발디의 ‘사계’였다.
이 성당에서 멀지 않은 말테저 교회(Malteserkirche)에서는 매주 바로크 오르간에 맞춰 트럼펫 주자 슈타우디글(R Staudigl)이 모차르트와 바흐, 헨델과 하이든의 작품을 연주하고 있었다. 합스부르크 왕국의 아름다운 벨베데레 궁정(Schloss Belvedere)의 야외무대에서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가 7월 매주 공연되고, 음악가 동상으로 가득 찬 시립공원의 음악회장과 모차르트 하우스 등 크고 작은 공연장에서도 여름 내내 거의 매일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주목되는 음악회는 ‘황금홀’이라 불리는 무지크페어라인(Musikverein)의 공연이다. 1812년 설립된 음악협회가 1870년 건축한 이 음악회장은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일 뿐 아니라 지금도 매년 빈 필하모니의 신년 음악회가 열려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 6월 13일에는 국립오페라단이 이영조의 오페라 ‘처용’을 성황리에 공연한 곳이라 더욱 관심이 갔다. 7월에는 빈 모차르트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계속됐다. 안드라스 데악(A Deak)의 지휘, 소프라노 슈타징어(E Starzinger), 바리톤 니코프(R Nikoff)가 협연하며 오페라 ‘돈 조반니’, ‘코지판 투테’의 아리아, ‘바이올린 협주곡 5번 A장조’의 2악장과 3악장 등 친근한 모차르트 곡을 연주했다.
특히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뮤지크’와 ‘터키 행진곡’의 오케스트라 버전이 연주되자 청중은 뜨겁게 환호했고, 지휘자는 박수를 유도하며 유쾌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모차르트 당대의 의상을 입은 연주자들, 청중석의 조명도 끄지 않는 환한 공간, 자유롭게 손뼉 치며 열광하는 청중이 함께한 이 공연은 엄숙하고 긴장감 있는 음악회장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반면 빈 시청 앞 광장에서는 색다른 음악을 경험할 수 있다. 넓은 광장에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매일 ‘영화 페스티벌’이 열렸다. 빈 시립 오페라단의 ‘나비부인’, ‘오셀로’ 공연 영상과 함께 영국의 록밴드 퀸과 롤링스톤, 미국의 록그룹 이매진 드레곤스 같은 팝스타의 영상을 볼 수 있었다.
바로 그 옆에는 맛있는 비엔나소시지와 맥주로 가득 찬 노천 가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강렬한 사운드와 화려한 영상이 펼쳐지는 야외에서 마시는 맥주 한잔은 생생한 여름의 청량감을 한껏 선사해 줬다.
그뿐만 아니라 빈 시내에 자리 잡은 쇤베르크 센터에서는 쇤베르크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와 세미나가 열리고 있었다. ‘쇤베르크와 사랑 듣기’(Mit Schonberg Liebe horen)란 주제로 올 하반기에 음악회 132회와 세미나가 진행 중이었다. 7월에는 쇤베르크의 실내악을 감상할 수 있었다. 빈 시 정부가 후원하는 이번 행사는 딱딱하고 건조한 현대음악이라는 선입관에서 벗어나 쇤베르크 음악의 감성적 아름다움을 느낄 기회를 제공했다.
음악으로 가득 찬 빈의 여름을 경험하면서 음악이라는 인류의 문화유산이 역사적인 건축물과 어우러져 지금까지 생동감 있게 살아 숨 쉬는 생생한 현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도시라는 공간이 음악이라는 예술을 만나 뿜어내는 시너지 효과가 부럽기도 했다.
‘모든 아름다운 것, 감정적인 것, 열정적인 것, 부드러운 것, 그리고 마술적인 것을 창조하는 것은 감정으로만 할 수 없다’. 쇤베르크 센터에 게시된 쇤베르크의 글이다. 예술에서 감정과 함께 이성이 중요하다는 쇤베르크의 말을 곱씹어 보면서 음악이 함께 하는 신나는 여름을 느껴본다.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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