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일본이 진정으로 ‘반잔의 물컵’을 채우려면
조선인 기숙사 터를 찾아 헤맨 지 한 시간. 마을 구석진 곳에 세워진 표지판엔 구치소도 취사장 터도 잘 표시돼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사도(佐渡) 광산에서 일한 조선인을 위한 기숙사가 있었다는 표시는 보이지 않았다.
지난달 26일 찾아간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의 다이쿠(大工)마치. 무릎까지 자란 잡초가 무성한 폐허 앞에서 81세 어르신 나가하마 씨가 다가와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가 취사장이야. 조선인들이 먹을 밥을 여기서 해서 날랐다고 하더라고.”
“전쟁이 끝나고 돌아가지 않은 조선인들이 있었는데, 같은 반에도 조선 출신 친구들이 7~8명은 있었어.” 취사장 터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구치소 터로 가봤다. 자물쇠로 잠긴 구치소 앞을 뱅뱅 돌고 있는데 한 주민이 열쇠를 들고 다가왔다.
평소엔 찾아오는 관람객이 없어서 주민이 자율적으로 유적을 관리한다고 했다. 구치소 안뜰로 들어가니 우리 외교부 자료에 실린 조선인 기숙사 터 사진 속 그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비치된 자료엔 1954~1972년에 구치소로 사용된 기록이 있었지만, 그보다 앞서 이곳에 조선인 기숙사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 기숙사의 존재가 드러난 것은 1991년. 도미타(富田) 담뱃가게 주인이 남긴 ‘연초 배급 장부’가 있다는 사실을 일본 시민단체들이 알게 되면서다. 아이카와 제1, 3, 4 기숙사에 수용됐던 조선인들이 언제 입소하고 담배를 배급받기 시작했는지, 이름·출신지·생년월일까지 자세히 적혀있었다.
시민단체들은 그때부터 강제동원 조선인들의 흔적을 추적해 1519명의 신상을 파악했다. ‘순직 산업인 명부’에서 갱내 작업 중에 사망한 조선인들의 이름·나이를 발굴했고, 사도광업소가 남긴 자료에서 조선인들이 어떤 업무를 했으며 어떤 차별을 받았는지 찾아냈다. 혹독한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조선인을 딱하게 여긴 사도섬의 어부 몇 명이 조선인의 탈출을 도운 이야기도 이렇게 해서 세상에 드러났다.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다음 날인 지난 7월 28일. 일본 정부는 그동안 모르쇠로 부인해온 조선인들의 존재를 그제야 인정했다. 연초 배급 장부가 드러난 지 30여년 만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전체 역사를 알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조선인들이 강제로 끌려와 일했다는 문구는 유적 어디에도 볼 수 없다.
이르면 9월 사도섬에서 일본 정부가 약속한 조선인 추도식이 열린다. 일본 측의 약속이 허무한 수사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있는 그대로 과거를 기억하도록 해야 한다. 그게 ‘반 잔의 물컵’을 채우는 진심어린 행동의 시작이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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