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슬의 숫자읽기] 미국 절도 급증의 이면

2024. 8. 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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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슬 약사·작가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에서 중도에 하차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며,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가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로 올라섰다. 만약 당선된다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최초의 아프리카계-인도계 대통령이 된다. 역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일일 수는 있으나, 선거 기간에는 그런 소수자성이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여성이라는 성별은 물론이고 다시금 유색 인종, 특히나 흑인에 대한 비난이 공화당 지지층에서 터져 나오고 있어서다.

물론 표면적인 자료만 보면 흑인의 범죄율 수치는 문제가 있는 게 맞다. 미국의 주요 인종 중 흑인의 인구 비례 수감률은 백인의 약 4배 수준이고, 주와 연방 교도소에 수감된 인원 중 32% 정도가 흑인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흑인이라는 인종의 특성으로 돌릴 순 없다. 실제 범인은 국내에서 종종 모범적 사례로 여겨지곤 하는 미국식 엄벌주의다. 최대 수백 년의 형량을 선고하는 화끈한 미국식 판결 뒤에는 실패한 미국의 현실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박경민 기자

2021년 미국 법무부에서 발간한 보고서를 살펴보자. 2012년에 출소한 41만 명 가량의 전과자들을 5년 동안 추적 관찰해, 출소 이후 체포된 이력이 있는지를 파악했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추적 관찰한 41만 명 중 5년 이내에 재범(再犯)한 누적 비율이 70.8%라서다. 살인이나 강간, 강도 같은 폭력범죄의 5년 내 누적 재범률은 65.2%였고, 마약과 같은 약물과 관련된 범죄는 69.7%, 초범(初犯)으로 대상자를 좁혀도 재범률이 68.6%니 그야말로 재난적인 교화(敎化) 실패다.

이런 형사정책 실패 상황에서 국민의 분노를 달랠 방법이 뭘까. 범죄 수사와 치안 인력을 늘리고, 엄벌주의를 동원해 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착각을 주는 게 현재 미국이 선택한 방법이다. 실질적으로는 정작 그렇게 잡아들인 범죄자들이 교도소에서 새로운 범죄 지식을 습득하고, 사회로 나와 재범을 저지르는 일이 반복될 뿐인데도 말이다. 이런 방치 상황의 가장 큰 피해자가 흑인들이지, 흑인이라 타고난 범죄성향이 있다는 식의 주장은 전형적인 오류다.

그럴 거면 범죄자를 풀어주지 않고 가둬두면 되지 않겠냐 여길 수 있으나, 교정시설이라고 무한하지는 않다. 가령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범죄자 수가 교정시설의 수용 한도를 압도하니, 절도죄가 성립하는 금액을 400달러에서 950달러로 올려버렸다. 대낮에 대로변 상점이 약탈 당하게 된 원인이다. 우리는 어떨까.

우리나라는 2022년 기준 3년 내 재범률이 23.8%로 미국보다 훨씬 낮다. 그렇지만 형량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에다, 죗값을 치르고 출소한 이들에게 사적 제재를 가하는 범죄까지 생겼다. 의분(義憤)은 이해해도, 이미 실패한 미국을 애써 닮아갈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

박한슬 약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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