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컷 cut] 어차피 다시 더러워진다 해도

2024. 8. 2.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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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세상이 조금 나아가는 듯하다가 되돌아가기 일쑤다. 그럴 땐 다 소용없는 일 아닌가,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그냥 받아들이며 대충 살아가는 게 맞는 것일까.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아쿠쇼 코지)는 ‘대충’이란 부사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인 그는 매일 화장실 변기를 자기 집 가구를 닦듯이 한다. 때가 끼지 않았는지 반사경으로 살펴보고, 청소 도구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비데 물줄기가 적당한지 손가락을 대본다.

“어차피 다시 더러워질 텐데 왜 그렇게까지 합니까?” 젊은 동료는 그런 그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는 남들의 시선에 보일 듯 말듯 엷은 미소로 대응할 뿐이다. 나 역시 궁금하다. 대체 그는 왜 그러는 것인가?

내 생각에, 그것은 일상의 힘이다. 그의 일상은 단조롭지만 단단하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각 눈을 떠서 매일 저녁, 스탠드 밑에서 책을 읽다 잠들기까지 매 순간 정성을 들인다. 먹고 마시는 일까지도. 스스로의 일상이 소중한 만큼 남의 일상(화장실)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어, 차, 피 더러워진다고? 그 세 글자의 허무주의에 빠지면 모든 인생사가 속수무책이다.

‘어차피’의 획일성에 맞서기 위해선 거창하고 강한 것들이 아니라 작고 연약한 것들의 힘에 기대야 한다. 히라야마가 매일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이유다. 그는 알고 있다. 한순간의 깨끗함이 얼마나 귀중하고, 한순간의 일렁임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완성도를 결정하는 것은 주어진 삶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자세다. 때가 타면 다시 닦아내면 되고, 빈 구석이 있으면 ‘나의 의미’로 채우면 된다. 포기하고 꺾이지 않는 한 우린 예전의 우리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의 해상도를 높여갈 때 그 자체로 ‘완벽한 나날’이 된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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