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잭 스윙'이 다시 뜨는 이유
뉴진스의 충격적인 데뷔 이후, 그들의 행보에 대해 대중음악 비평 공간 바깥의 사람들까지 한마디 촌평을 남기는 것은 하나의 유행이 된 것 같다. 뉴진스가 특정 세대의 기호를 포착하는 ‘재현의 스펙터클’인지, 아니면 여러 이미지를 기워내 존재하지 않는 관념을 가리킨 뒤, 여기에 공시성의 데자뷔를 느끼게 하는 ‘설득력 있는 착각의 스펙터클’인지를 둘러싸고 쏟아지는 말들이 대표적이다. 뉴진스라는 기획은 이러한 인상의 아지랑이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명확히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기호라는 화두를 지속적으로 던지며, 장르 공간을 넘어선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뉴진스는 일본 데뷔 싱글 〈Supernatural〉로 돌아왔다. 새 싱글을 통해 드러난 기호는 뉴 잭 스윙이다. 노골적인 뉴 잭 스윙 트랙에 더해, 뮤직비디오는 뉴 잭 스윙을 가리키는 힙합 패션과 댄스들을 차용했다. 어떤 이미지를 가리키기는 하지만 그것을 명명하기 애매모호했던 이전까지의 디스코그래피와 비교했을 때, 이번 싱글 속 뉴진스의 이미지는 보다 명확해진 셈이다. 하지만 뉴진스가 청자들을 ‘헷갈리게’ 하는 전략을 완전히 놓은 것은 아니다. 뮤직비디오는 뉴 잭 스윙의 기호들을 활용하지만 동시에 로파이적 감각의 CG를 통해 만들어진 ‘사이버펑크 서울’을 배경으로 깔아둔다. 이는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만 공간을 공유하지는 않는 버블 시기 일본 시티 팝에 대한 페티시즘을 은근히 드러낸다. 지금이 아닌 시기를 가리키지만 그것이 결코 미래를 가리키지는 않는 다양하고 고립된 이미지들은 콜라주된다. 콜라주라는 말 그대로 조각조각 붙여지기 때문에, 완성된 무언가는 과거를 곧이곧대로 가리키는 게 아니라 새롭고 대안 세계적인 과거를 창조해낸다. 이는 근대성을 주로 연구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작 〈레트로토피아〉를 떠올리게 한다. 공상적 이상으로의 도피를 과거회귀적 사유로부터 찾는 것이다. 소위 ‘레트로-페티시즘’에 올라탄 여러 기획은 근 10년간 장르 음악 공간 속에서 여러 성공 사례를 남겼다. 1980년대 신스웨이브를 활용한 두아 리파의 〈Future Nostalgia〉 그리고 여기에 더해 사이키델리아적 접근을 취한 테임 임팔라, 시티 팝의 재유행 따위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올드스쿨 힙합 문화와 연관된 이미지가 ‘레트로’적 기호로 활용된 적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Supernatural〉을 통해 뉴 잭 스윙의 리듬이 다시 흘러나오는 것은 꽤나 특이하다.
뉴 잭 스윙은 장르지만, 동시에 장르보다는 ‘특정 시기의 현상’에 더 가까웠다. 미국을 기준으로 하면 1986년에서 1993년 사이에 MTV를 뚫고 폭발해 나온 유행으로 특정 지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기는 레이건 행정부의 사회보장제도 축소를 통해 빈곤을 매개로 게토화된 아프리카계 미국인 하위문화가 미디어에 재침공을 가했던 때와 얼추 일치한다. 뉴 잭 스윙의 뿌리는 R&B지만 당시 메인스트림의 유행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힙합의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해왔다. 뉴 잭 스윙 프로듀서들은 힙합 뮤지션들의 간택을 받아 컬트적 인기를 끌기 시작한 악기들, 예컨대 TR-808 드럼 머신이나 샘플러 따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뉴 잭 스윙 뮤지션들의 춤, 예컨대 ‘토끼춤’으로 알려진 ‘로저 래빗’이나 ‘셔플 댄스’와 유사한 ‘러닝 맨’은 힙합 신 속 스트리트 댄스의 동작들을 가져온 것이다. 이를 통해 뉴 잭 스윙은 격렬한 리듬을 획득했고, 여태껏 나왔던 R&B 중 가장 ‘팝적인’ R&B 음악이 될 수 있었다. 최초의 뉴 잭 스윙 앨범은 자넷 잭슨의 〈Control〉이다. 잭슨 가문의 막내인 자넷 잭슨은 아버지 조 잭슨의 엄격한 통제와 기획 속에서 평범한 두 장의 앨범을 냈다. 하지만 열아홉이 된 자넷 잭슨은 아버지를 해고하고 미니애폴리스로 날아갔다. 거기엔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미니애폴리스 사운드’라는 이름으로 그려가던 천재 뮤지션 프린스가 있었다. 자넷 잭슨은 프린스 밑에서 일했던 지미 잼과 테리 루이스를 프로듀서로 고용했다. 잼과 루이스는 TR-808 드럼 머신과 디지털 신시사이저를 활용해, 엄청나게 빠르다고는 할 수 없는 BPM에서도 박자를 적절히 밀고 당기며 ‘춤을 춰야만 할 것 같은’ 격정적인 트랙들을 찍어냈다. 스윙 재즈를 연상케 하는 엇박에 16분음표 3연음을 활용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러한 작업법은 뉴 잭 스윙이라는 용어의 기원이 된 프로듀서 테디 라일리를 통해 장르의 공식이 됐다. 자넷 잭슨은 이 위에서 “열일곱의 나는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만 했어 – 아빠를 따랐고, 엄마한테 휘둘렸어 – 하지만 이제 내가 모든 걸 쥐고 있어”라는 선언적인 노랫말을 뱉는다. 첫 트랙 ‘Control’에서 다음 트랙 ‘Nasty’로 넘어가는 순간 “Drop the beat!”라고 외치는 자넷 잭슨의 카리스마는 압도적이었다. 뉴 잭 스윙의 탄생은 아프리카계 여성 슈퍼스타의 등장과 함께 이뤄진 셈이다.
이후 뉴 잭 스윙의 인기는 기라성 같은 프로듀서와 아티스트들의 등장과 함께 기하급수적으로 커져갔다.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의 속편이 1989년 개봉할 때, 베이비페이스와 테디 라일리가 프로듀싱한 바비 브라운의 ‘On Our Own’이 사운드트랙으로 실리며 장르의 인기에 불을 지폈다. 장르의 열풍 속에 테디 라일리는 마침내 팝의 제왕 마이클 잭슨과 손을 잡았고, 그렇게 만들어진 마이클 잭슨의 뉴 잭 스윙 앨범 〈Dangerous〉는 전 세계적으로 3200만 장이 팔려 나갔다. 1990년대 초반의 라디오는 곧 뉴 잭 스윙의 경연장이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으로도 수입된다. 뉴 잭 스윙은 1990년대 대중음악 문법으로 금방 자리를 잡았다. 현진영이 처음으로 뉴 잭 스윙 음악과 춤을 우리나라 방송가에 소개했고, 이후 듀스의 ‘나를 돌아봐’가 공전의 흥행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뉴 잭 스윙의 유행은 대중음악의 헤게모니가 밴드 악기를 중심으로 한 소위 ‘그룹사운드’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사건을 통해 랩 음악으로 넘어오던 때와 유사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 이는 대중문화를 견인하는 동력이, 제5공화국 위에 펼쳐진 전선 속에 있던 소위 ‘386세대’로부터 소비문화로 가득 찬 시민사회로 뛰쳐나온 X세대에게 이어지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이러한 맥락 위에서, 뉴진스가 레트로-페티시즘을 지시하는 기호로 뉴 잭 스윙을 들고 온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과거회귀를 통해 ‘그리운 이상향’을 찾아가는 여행에서, 목적지는 이제 베이비 붐 세대들의 텍스트가 아니라 X세대의 텍스트로 바뀐 것이다. 하나의 거대 담론 위에서 문화를 구성했던 선배들과 비교할 때, X세대는 파편화된 취향과 기호를 갖고 이에 소비적 주체로 접근한 첫 세대였다. 영화 잡지 〈키노〉를 읽으며 입맛에 맞는 온갖 예술영화 장르를 탐색하고, 음악 잡지 〈핫뮤직〉을 읽으며 마찬가지로 입맛에 맞는 온갖 장르 음악들을 탐색하기 시작한 시대. 취향이 가지를 뻗어 나가고 처음으로 조각나기 시작한 이 시기의 예술이 ‘레트로토피아’를 구성하는 기호로 자리 잡아가는 것은, 앞으로 우리의 ‘노스탤지어’가 어떻게 만들어질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Writer 김로자(장르 음악 비평가, 대중음악 웹진 〈온음〉 필진)
Copyright © 코스모폴리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