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눈물' 신유빈, '20년 만에' 한국 탁구 단식 4강…"이겼다는 안도감에 울어" [2024 파리]
(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이긴 신유빈도 울었고, 진 히라노 미우도 울었다. 그 만큼 격전이고 혈투였다.
여자 탁구의 에이스 신유빈(8위·대한항공)이 한국 선수로는 20년 만에 올림픽 탁구 단식 4강 무대에 올렸다.
신유빈은 1일(한국시간) 프랑스의 사우스 파리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탁구 여자 단식 8강전에서 세계랭킹 13위 일본의 히라노 미우와 1시간30분에 가까운 접전 끝체 게임 스코어 4-3(11-4 11-7 11-5 7-11 8-11 9-11 13-11)으로 이겼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였다. 히라노는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단체전 준결승에서 신유빈에게 패배를 안긴 선수다. 신유빈은 당시 일본전에서 1단식과 4단식을 모두 패했는데 특히 4단식에서 히라노에 무릎을 꿇어 결승 진출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의 아쉬움을 이번에 갚았다.
앞서 지난 31일 끝난 이번 대회 혼합복식에서 임종훈(한국거래소)과 동메달을 합작한 신유빈은 여자 단식에서 1승만 더 올리면 생애 두 번째 올림픽 메달을 추가한다.
한국 탁구가 올림픽 단식 메달을 수확한 건 2004년 아테네 대회 유승민(대한탁구협회 회장)의 남자 단식 금메달과 같은 대회 김경아의 여자 단식 동메달이 마지막이다. 이를 끝으로 한국 선수들은 남자부나 여자부 모두 올림픽 단식에서 4강에 오른 적이 없다.
신유빈과 결승행을 다툴 상대는 세계랭킹 4위 중국의 천멍이다. 중국 탁구는 쑨잉사와 왕만위, 왕이디, 천멍이 각각 여자 단식 세계 1위, 2위, 3위, 4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5위 하야타 히나(일본)을 건너 6위가 천싱퉁이다. 그 만큼 세계 톱랭커가 즐비한 가운데 이번 대회 여자 단식엔 쑨잉사와 천멍이 출전했다.
천멍은 8강에서 세계 23위인 오스트리아 소피아 폴카노바를 4-0(11-5 11-3 11-0 11-8)으로 완파하고 신유빈과 격돌하게 됐다. 지금은 세계 4위지만 3년 전 도쿄 올림픽에서 여자 단식과 여자 단체전을 모두 우승해 2관왕이 됐으며 2010년대 중후반까지 세계 최강으로 군림했던 중국 여자 탁구의 간판 선수 중 한 명이다.
신유빈은 천멍과 지난 3월 월드테이블테니스(WTT) 싱가포르 스매시 8강에서 한 차례 맞붙어 1-4로 진 바 있다. 신유빈이 중국 선수들에게 약하기 때문에 힘든 승부가 예상되지만 이번 대회 상승세를 감안하면 못 할 것도 없는 한판이 예상된다. 신유빈은 임종훈과 짝을 이룬 혼합복식 준결승에서도 왕추친-쑨잉사 조와 붙여 두 세트를 빼앗는 등 분전 끝에 2-4로 졌다.
사실 이날 경기는 신유빈이 낙승하는 분위기였다.
적극적인 공격으로 히라노를 꼼짝 못하게 만들며 1~3게임을 연달아 따냈기 때문이다. 히라노는 1~3게임에서 가장 많은 점수를 따낸 게 2세트 7점이었다.
그런데 히라노가 옷을 갈아입고 반격에 나선 4게임부터 양상이 뒤집혔다. 신유빈의 범실이 늘어나면서 히라노가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신유빈 이길 때의 공격이 살아난 것이다.
결국 히라노가 4, 5, 6게임을 연달아 챙기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7게임은 이날 경기의 클라이맥스 답게 엄청난 격전이었다. 신유빈이 초반 5-1로 앞서나갔으나 히라노가 끈질기게 따라붙었고, 결국 10-10까지 균형이 맞춰졌다. 여기서 한 점씩 주고받아 11-11이 됐다.
하지만 여기서 행운의 여신이 신유빈에 미소를 지었다. 히라노의 두 차례 공격이 모두 네트에 걸린 것이다.
실점에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다한 둘 모두 울었다. 히라노는 패배가 확정된 뒤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쏟았고, 신유빈은 힘든 경기 속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신유빈은 경기 직후 엑스포츠뉴스 등 현지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히라노 선수가 옷을 갈아입고 다시 와서 게임을 하는데 내 리시브를 많이 막았다. 나는 무조건 뚫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경기를 펼쳤던 것 같다"며 "(혼합복식에서) 동메달을 땄을 때도 눈물이 안 났는데 오늘은 마지막에 '끝났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약간 안도의 눈물이었다"며 "이어지는 준결승도 늘 해왔던 것처럼 잘 먹고 잘 쉬고 상대 분석을 잘해서 더 좋은 경기력을 펼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어 "(20년 만의 4강 진출인 줄은) 나도 몰랐는데, 그냥 한 경기, 한 경기 하다 보니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었다"면서 "아직 끝난 게 아니다"며 4강전을 바라봤다.
파리에 온 어머니가 싸주신 바나나, 주먹밥 등을 먹는 모습이 화제가 되는 것을 두고는 "간식을 안 먹었다면 7게임에서 못 이겼을 것 같다. 체력이 너무 많이 소진돼서 중간중간 힘도 풀리더라"면서 "엄마가 만들어준 주먹밥이랑 바나나를 잘 먹고 들어간 게 이길 수 있었던 요인이지 않나 싶다"며 웃었다.
신유빈은 남은 두 경기 중에서 한 경기만 이겨도 여자 단식 메달을 거머쥐게 된다. 반대쪽 대진은 세계 1위 쑨잉사와 일본 에이스 하야타의 매치업이 유력하다. 다만 이번 대회 탁구 종목에서 이변을 일으키고 있는 북한 탁구를 대표해 출전한 변송경이 하야타와 만만치 않은 승부를 펼칠 수도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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