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vs 영풍, 환경 리스크 또 충돌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4. 8. 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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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동업’ 사실상 종지부 찍나

고려아연과 영풍 간 ‘가문 갈등’이 환경 이슈로 옮겨붙는 등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재계에서는 두 집안 간 사업적 연결고리가 상당 부분 끊어져 실질적으로는 동업 관계가 종료된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공정거래법상 형식적 계열 분리는 난제로 지적되지만, 종국에는 두 그룹이 75년 동업에 종지부를 찍고 사실상 분리 경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재계와 제련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과 영풍은 크게 두 가지 이슈로 송사를 빚고 있다. 두 소송 모두 독립 경영을 원하는 고려아연을 겨냥해 영풍이 낸 것이다.

첫째는 고려아연이 단행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대해 영풍이 제기한 소송이다. 지난해 9월 고려아연은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가 공동 설립한 해외법인 HMG글로벌을 대상으로 527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고려아연은 “신사업 육성 등 경영상 필요에 의한 증자”라는 입장이다. 반면, 영풍은 “우호 지분 확대를 통한 지배권 변경의 목적”이라고 반발한다. 영풍 입장에선 증자에 따른 지분 희석으로 고려아연 지배력이 훼손될 수 있는 상황이 달갑지 않다.

둘째, 양측의 첨예한 대립은 환경 분야로 옮겨 전선을 확장했다. 두 회사는 최근 황산 취급대행 계약을 두고 날 선 갈등을 빚는다. 갈등 과정은 이렇다.

지금까지 영풍은 경북 봉화 석포제련소에서 배출되는 황산을 울산 온산항으로 수송하는 과정에서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황산 탱크와 파이프라인을 유상으로 이용했다. 그러던 중 지난 4월 고려아연이 황산 취급대행 계약을 6월을 기한으로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영풍이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며 소송을 낸 것. 영풍은 고려아연과 이견을 좁히기 어렵다고 보고 지난 6월 고려아연을 상대로 불공정거래행위 예방 청구 소송을 냈다. 지난 7월 2일에는 거래거절 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냈다. 고려아연은 “대주주 영풍의 횡포이자 위험 물질 황산 취급을 고려아연에 강요하는 위험의 외주화”라고 공박한다.

제련 업계에서는 유해 물질 처리를 둘러싸고 두 가문 간 누적된 긴장 관계가 결국 폭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제련 산업 특성상 유해 물질 배출과 처리는 ESG 관점에서 기업 리스크로 비화하기 쉬운 이슈다. 양측 갈등 중심에 선 황산 역시 아연 제련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발생하는 부산물이다. 아연 제련은 주원료 정광을 배소 → 조액 → 전해 → 주조 공정을 거쳐 고순도 아연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때 아연정광을 약 950℃ 배소로에서 연소시키는 배소 공정에서 황산이 발생한다. 아연을 제련하려면 황산 처리 시설을 필수적으로 갖춰 황산 제품을 생산하거나, 따로 환경 처리를 해야 한다.

고려아연 안팎에선 ‘영풍이 대주주 지위를 이용해 위험 물질 취급을 사실상 강요하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제련업을 지속하려면 환경 리스크 관리가 핵심 역량인데, 영풍이 이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불만이 컸다는 것. 한 재계 관계자는 “가문 간 갈등이라는 프레임을 벗겨놓고 보더라도 고려아연 입장에선 유해 물질·폐기물 처리와 관리 부담을 언제까지 떠안고 가야 할지 고심이 컸을 것”이라 봤다.

재계에서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독립 경영을 마음먹은 결정적 계기가 된 것도 환경 리스크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최 회장이 고려아연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2019년을 전후로 유해 물질 처리 등을 두고 영풍과 갈등 빈도가 잦아지고 그 골도 깊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재계 관계자는 “제련업을 기반으로 2차전지 소재와 친환경에너지로 사업 다각화를 원했던 최 회장 입장에선 영풍이 환경오염과 안전사고 등 리스크 관리를

등한시한다는 인식이 짙었고 종국에는 사업적 결별을 마음먹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특히 영풍 석포제련소는 환경오염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다. 석포제련소 카드뮴 방출 논란이 단적인 예다. 환경부 소속 대구지방환경청이 2019년 영풍 석포제련소 제1·2공장 인근 낙동강 수질을 측정했더니, 하천 수질 기준을 최대 4578배 초과하는 카드뮴이 검출됐다. 2021년 11월 환경부는 영풍 석포제련소가 수년간 낙동강 최상류에서 카드뮴 오염수를 불법 배출한 것으로 보고 과징금 281억원을 부과했다. 그러자 영풍은 고려아연에 석포제련소에서 나오는 카드뮴 처리·관리를 요구했다. 그러나 2022년 최윤범 회장이 친환경에 방점을 둔 ESG 경영 기조에 힘을 실으면서 지난해 관련 업무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진다.

석포제련소는 윤석열정부 환경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입길에 올랐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후보자 시절 지난 7월 2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환경오염을 반복해서 일으키고 근로자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상태를 유지한다면 환경부 장관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처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외 석포제련소에서 배출되는 각종 폐기물 처리를 두고도 최 회장 분노가 컸다는 후문이다.

수세 몰린 영풍

손익변동성 확대

두 가문 간 경영 전략과 지향점이 뚜렷이 대조를 이루면서 시기의 문제일 뿐 결별은 기정사실이라는 인식이 재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자기자본을 기반으로 안정적 사업을 이어온 경영 기조를 유지하면서 배당금 등 현금 유입을 바라는 장 씨 집안과 사업 다각화를 원하는 최 회장 일가가 더는 한배를 탈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고려아연은 본업인 제련 사업에서 벌어들이는 풍부한 현금흐름을 신재생에너지, 2차전지 소재, 자원순환을 비롯한 신사업에 투자한다. 2033년까지 신재생에너지와 수소에 8조3000억원, 2차전지 소재에 2조1000억원, 자원순환에 1조5000억원을 넣는 설비투자(CAPEX)를 단행한다. 장 씨 집안 측에서는 최 회장이 신사업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차입을 활용한 투자가 늘고 있다는 점을 마뜩잖게 바라보는 것으로 알려진다.

고려아연과 영풍 간 사업적 접점도 거의 사라졌다는 평가다. 고려아연은 영풍과 공유했던 CI(기업 이미지통합) 대신 독자 CI를 쓰기로 했고 원료 구매 공동 업무도 종료했다. 영풍 핵심 계열사 서린상사 경영권을 두고 갈등을 빚었고 고려아연이 경영권을 쥐며 잠정 승리했다. 영풍 석포제련소 황산 취급대행 계약을 끊고 7월 이후 서울 강남 영풍빌딩을 떠나 종로로 본사도 옮긴다.

다급한 쪽은 영풍이다. 고려아연은 영풍 관계사로 지분율에 비례해 고려아연 실적이 영풍 실적에 반영된다. 영풍은 본업에서 큰 이익을 못 내지만 이자수익과 외환차익, 지분법손익 등으로 흑자를 보는 구조다. 본업 부진을 만회하는 핵심 요인 중 하나가 고려아연 배당금이다. 고려아연 계열 분리 땐 영풍 입장에서는 현금 배당을 포함해 최소 수천억원을 포기해야 한다. 영풍과 고려아연 간 손익계산서를 비교하면 계열 분리 현실화 땐 영풍 측이 잃을 게 훨씬 많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반면 고려아연은 영풍과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얻는 이익이 거의 없다. 정리하면, 고려아연 입장에서는 사업적 시너지가 별로 없는 데다 신사업에도 제동을 걸어 공동 경영 체제로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다만, 공정거래법상 영풍 장 씨와 고려아연 최 씨 집안 간 계열 분리는 난제 중 난제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계열 분리를 하려면 특수관계인 주식 보유 비중을 상호 3% 미만(상장사 기준)으로 줄여야 한다. 최근 고려아연 시총은 10조원대다. 장 씨 집안 지분을 되사려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단순 계산으로 최소 3조원 이상 현금이 필요하다.

이 탓에 일각에서는 두 집안 간 합의를 통한 주식 교환으로 결국 갈라서기를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최 회장 일가가 보유한 영풍 등의 지분을 장 고문 일가에 넘기고, 그 대가로 장 고문 일가로부터 고려아연 지분을 받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대형 로펌의 한 기업 전문 변호사는 “가족회의를 열고 지분 정리 계획을 합의한 뒤 계열 분리를 신청하는 것이 통상적인 절차”라며 “이게 아니라면 집안끼리 끝없는 지분 경쟁을 벌여야 하는데 고려아연 규모 회사라면 최소 조 단위 자금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후유증도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0호 (2024.07.31~2024.08.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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