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쪼글쪼글, 속은 단짠단짠... 환호하는 식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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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숙 기자]
▲ 우리 집 여름철 별미 '알감자조림' 알감자조림은 겉이 쪼글쪼글하고 속까지 달콤짭짜름한 간이 배야 맛있다. 어머니가 만든 알감자조림 레시피는 감자에 물과 간장을 붓고 약한 불에서 2시간 정도를 조린 후 양념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가마솥에 24시간 동안 우려낸 사골국물처럼 깊은 맛의 알감자조림이 완성된다. |
ⓒ 변영숙 |
꼭 작은 공깃돌만 하게 생겼다. 한 입에 쏙 들어가기 좋은 크기다. 반찬거리로 쓰기에는 비경제적이다. 채를 썰어 감자볶음이나 감자채 전을 하기엔 너무 작다. 쪄 먹기에도 너무 자잘하다. 우리는 이런 감자를 '알감자'라고 부른다. 알감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정확하지 않지만 크기가 메추리알만 해서 그런 게 아닐까 추정해 본다.
감자를 캐다 보면 이런 알감자가 꽤 나온다. 먹을 게 없다며 버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농사지은 사람 입장에서 작다고 멀쩡한 감자를 버린다는 것이 쉬운가. 썩지 않았으면 엄지손톱이 아니라 새끼손톱만 한 것도 버릴 수가 없다. 알감자는 모두 따로 모은다. 어떤 해는 알감자가 라면 상자로 2박스가 넘게 나올 때도 있다. 알감자는 모두 '엄마' 차지다.
엄마는 알감자를 모아서 '알감자조림'을 만들었다. 어릴 적 여름철 도시락 반찬에 빠지지 않은 것이 알감자조림이었고, 가족들의 계곡 물놀이를 갈 때에도 알감자조림은 빠지지 않았다.
지금도 우리 집 식구들은 엄마의 알감자조림에 환호한다. 어릴 때부터 먹어 왔던 추억의 반찬이기도 하거니와 달콤 짭짜름한 양념 맛과 쫄깃한 감자껍질 그리고 속까지 간이 제대로 밴 포슬포슬한 감자의 식감이 제대로 어우러져 입맛을 돋우기 때문이다.
▲ 씨알이 작은 알감자 |
ⓒ 최은경 |
보통은 감자를 익힌 후 양념을 넣고 10분 정도 더 조려낸다. 그러다 보니 속까지 간이 배지 않는다. 간혹 간이 잘 배라고 감자에 작은 구멍을 내기도 한다는데 그렇게 하면 오히려 간이 다 빠져나간다. 껍질이 쫄깃하라고 물엿에 미리 절여 두거나 감자를 기름에 코팅하듯 볶아주거나 멸치 육수를 넣으면 감칠맛이 좋아진다는데 엄마에게는 다 쓸데없는 얘기다.
엄마의 레시피는 아주 간단하다. 감자에 적당한 비율로 물과 간장을 붓고 2시간 정도 조린 후 물엿, 들기름, 고춧가루, 깨소금, 파, 마늘 등 갖은 양념을 넣고 섞어 주면 끝이다.
사골 국물도 장시간 우린 것이 깊은 맛을 내듯이 알감자조림도 약한 불로 2시간 정도를 조리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야 감자 겉표면은 쪼글쪼글해지고 식감은 쫄깃하면서 탱글탱글해진다. 속까지 간이 배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2시간의 정성이 엄마 알감자조림의 비법인 셈이다.
흉내 내기 어려운 엄마의 손맛
감자를 장시간 동안 조리다 보니 다른 일을 하다가 깜빡 잊고 태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베테랑인 엄마도 종종 솥을 태우는 것을 보면 여간 까다로운 음식이 아니다. 감자가 타기라도 하면 숯검정이 되어버린 냄비를 닦는 일이 또 큰일이다.
몇 해 전에 큰맘 먹고 큰 언니가 알감자조림을 만들어 왔는데 감자에 양념이 배지 않은 어정쩡한 맛 때문에 식구들로부터 외면을 받은 적이 있다. 그 후로는 나를 비롯해 언니들도 알감자조림 만드는 것은 아예 꿈도 꾸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름이면 달콤 짭조름하게 조린 알감자 맛이 자꾸 입안에서 맴돌아 엄마에게 해달라고 조르게 된다.
올해도 다행히 엄마의 알감자조림을 먹게 됐다. 엄마의 알감자조림은 한 입 들어가는 순간 '음 역시 이 맛이야' 하고 미소를 짓게 한다. 씹을수록 기분 좋은 맛이 배어 나온다. 이번 알감자조림은 맨 입으로 먹어도 될 만큼 심심하게 잘 됐다. 한 탕기를 주셨는데 이틀 만에 동이 났다.
옛 어른들은 모두 이렇게 알감자조림을 하셨을 것이다. 문득 옛 어른들의 레시피가 사라질까 봐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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