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 소설가' 송기원 별세…마지막 장편 쓴 후 "숙제 마쳤다"
탐미적인 문장과 구도적인 서사로 알려진 소설가 송기원이 별세했다. 77세.
1일 문학계에 따르면 전남 해남에 거주 중이던 송 작가는 지난달 31일 숙환으로 숨을 거뒀다.
1947년 전남 보성 출생인 고인은 1967년 고교 재학 중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며 데뷔했다.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한 뒤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197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경외성서'가 당선돼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고인은 죄책감과 자기 혐오 같은 파괴적 감정을 탐미적인 문장과 구도적인 서사로 승화한 문인으로 평가받는다. 둘째 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미얀마에서 1년간 명상을 했던 실제 경험이 그의 소설 곳곳에 녹아 들어있다.
고인의 마지막 장편 소설 『숨』(2021)은 백혈병으로 딸을 먼저 떠나보낸 작중 화자가 초기 불교 수행법과 명상을 통해 고통을 극복하고 평온함에 이르는 과정을 그렸다. 소설은 명상하는 아버지의 시선과 이승을 떠나 영혼으로 떠도는 딸의 시선이 교차하면서 전개된다. 그는 『숨』을 쓴 후 “비로소 내 삶의 마지막 숙제를 마쳤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구도 정신에는 자전적 색채가 짙게 배어 있다. 그는『숨』에 "자신이 순간마다 변하는 과정이 바로 무상이고, 그런 순간의 변화에 어지러움과 현기증을 느끼는 과정이 고통이며, 그런 순간의 고통 속에서 어디를 둘러보아도 나라는 존재는 보이지 않는 과정이 무아"라고 썼다.
자전 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는 1996년 김영빈 감독의 연출로 박상민, 최민수 등이 출연한 ‘나에게 오라’라는 작품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고인은 군부 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에 저항한 문인 단체 자유실천문인협의회(작가회의 전신)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1974년 윤흥길·황석영·고은 등과 함께 김지하 시인의 석방을 촉구하는 ‘문학인 101인 선언’을 발표했다. 1980년에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휘말려 옥고를 치렀고, 1985년에는 민중교육 필화사건으로 구속됐다. 실천문학사 주간으로 일하며 출판 실무에도 몸담았다.
작품으로는 소설집 『월행』(1979), 『다시 월문리에서』(1984), 『인도로 간 예수』(1995)와 장편 소설『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1994), 『여자에 관한 명상』(1996), 『또 하나의 나』(2000), 『숨』(2021) 등이 있다. 생전에 고인은 제2회 신동엽창작기금과 제24회 동인문학상, 제9회 오영수문학상, 제6회 김동리문학상, 제11회 대산문학상 소설부문을 수상했다.
빈소는 대전 유성구 선병원 장례식장 VIP 3호실, 발인은 3일 오전 8시다. 장지는 세종은하수공원.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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