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당 해산해달라' '특검 반대한다'…팬덤 싸움판 된 온라인 공론장

공병선 2024. 8. 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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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공론장이 사실상 정치인 팬덤이 모여서 정쟁을 벌이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 반대 청원과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에 대한 해임 요청 청원, 민주당 정당 해산 심판 청구 청원 등은 모두 동의자 수를 5만명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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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카페가 나서서 동의를 촉구
청원 제도 본질 훼손 우려

온라인 공론장이 사실상 정치인 팬덤이 모여서 정쟁을 벌이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강성 지지층 간 대결이 연일 이어지는 동안 민생 관련 청원은 묻히고 있어 온라인 청원 제도의 본질이 훼손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9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는 국민의힘 정당 해산 심판 청구를 촉구하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다. /출처=국회 국민동의청원

지난달 30일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에는 국민의힘 정당 해산 심판 청구를 청원하는 내용의 공지가 올라왔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과정에서 나온 '공소 취소 청탁 의혹'이나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여러 의혹들을 옹호하는 게 헌법 위배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전 대표 팬덤들은 곧바로 청원에 동의했다며 인증하는 내용의 댓글을 게시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따르면 1일 오전 9시 기준 국민의힘 해산 청구 청원의 동의자 수는 약 2만2700명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팬카페 '위드후니'에서는 한 대표 자녀의 논문 대필 의혹 등을 수사하는 이른바 '한동훈 특검법'에 대한 반대에 나섰다. 위드후니에는 한동훈 특검법 반대 청원을 촉구하는 공지가 올라오는 동시에 반대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국회입법예고 사이트에 곧바로 접속하도록 별도의 게시판도 만들었다. 한동훈 특검법에 대한 의견 수는 이날 기준 5280개로 다른 법안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한동훈 특검법에 이어서 의견 수가 많은 법안은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으로 의견 수는 3396개다. 역설적이게도 박 의원이 발의한 법안도 '김호중 방지법'으로 불리면서 가수 김호중씨의 팬덤이 법안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고자 몰려들었다.

정치인 팬카페가 나서서 "청원 동의해달라"…민생 청원은 뒷전으로

국회입법예고 사이트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지지자들은 일명 '한동훈 특검법'에 반대하는 의견을 게재했다. /출처=국회입법예고

22대 국회 들어서 국민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온라인 국민청원은 사실상 팬덤들이 상대를 공격하는 창구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 청원은 지난달 3일 야권 지지자의 주도로 동의자 수 100만명을 넘겼다. 그러자 반대 진영에서도 나섰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 반대 청원과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에 대한 해임 요청 청원, 민주당 정당 해산 심판 청구 청원 등은 모두 동의자 수를 5만명을 넘겼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의 동의자 수가 5만명을 넘기면 해당하는 상임위원회에서 심사할 수 있다.

팬덤들은 정쟁에서 이기기 위해 청원 동의 등을 촉구했다. 이 전 대표의 팬덤들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청원의 동의자 수가 100만명에 도달하는 데 몇 명이 남았는지 계속해서 확인하는 게시글을 올렸다. 실시간으로 청원 동의자 수를 중계하는 사이트도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이견은 허용되지 않는다. 위드후니 운영자는 지난달 28일 "한동훈 팬카페는 '한동훈 특검법'을 단호히 반대한다"며 "'차라리 받는 게 낫지 않냐' 등 어설픈 조언은 사양한다. 그런 게시글을 표현의 자유로 포장하지 마라"고 글을 게시했다.

지난달 4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는 강력범죄 피해자의 처우 개선 법안을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해달라는 청원 글이 올라왔다. 해당 청원은 오는 3일 만료된다. /출처=국회 국민동의청원

온라인 국민청원에서 정쟁이 벌어지는 동안 민생 관련 청원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강력범죄 피해자의 처우 개선 관련 법안을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은 오는 3일 만료되지만, 동의자 수는 약 2900명에 불과하다. 해당 청원의 게시자는 "채상병특검법 등 한 이슈의 피해자를 두고는 다투면서 다른 피해자는 신경 쓰지 않는 모습에 화가 난다"며 "많은 범죄 피해자가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요양원에서 발생하는 노약자·장애인에 대한 학대·성희롱을 강력히 처벌해달라는 청원도 3500명밖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 역시 오는 10일에 만료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청원의 본질은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람들이 사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인데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무기로 전락했다"며 "상대 당을 해산해달라는 청원의 목적은 결국 복수다. 극단으로 몰리는 정치 상황을 해소하는 데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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