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보세요, 이 직업은 곧 없어집니다
[김종성 기자]
"나는 사라져가는 직업들의 비망록을 남겨보려고 한다."(10p)
당신의 직업은 시대의 변화 앞에 안전한가. 기술이 발달하고 사회가 혁신되면 어떤 직업들은 사라진다. 산업혁명은 인류의 생산력을 높였지만, 방직 기계는 수많은 노동자를 거리로 내몰았다. 버스안내원, 우산수리공 등도 없어진 직업 중 하나이다. 어떤 직업은 대체된다. 마차 운전수는 장기적으로 택시 기사로 전환되었다. 앞으로 도래할 AI 시대는 더 급격한 변화를 예고한다.
'어떤 동사의 멸종'은 일종의 직업 체험기이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동사(動詞)'는 직업이다. '체험기'라는 표현에 대한 오해가 없도록 미리 설명하자면, 저자인 한승태는 단순히 개인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나 집필을 위힌 인사이트나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라져가는 직업들의 비망록을 남기겠다"는 목적의식을 갖고 이 직업들에 '접근'했다. 한승태의 체험은 진지하다.
"콜센터 상담사가 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쉽게 노비가 되는 법이다."(70p)
'어떤 동사의 멸종'의 미덕은 역시 생동감이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경험하며 겪은 노동의 실상을 '삶의 체험 현장' 그 이상의 밀도로 펼쳐보여준다. "노동의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고통과 욕망을, 그것들의 색깔, 냄새, 맛까지 전부 기록하고 싶다"는 담대한 포부를 실현한다. '어떤 동사의 멸종'을 일종의 르포(reportage)라 평가할 수 있는 건 그 때문이다.
▲ 책 <어떤 동사의 멸종> |
ⓒ 시대의창 |
콜센터는 고객들의 문의나 불만을 전화로 상대해야 하는 극심한 감정노동을 견뎌야 하는 곳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 "지금 전화를 받는 상담원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라는 ARS 멘트이다. 그만큼 상담원들이 언어폭력, 성희롱 등에 상시적으로 노출되어 있다는 뜻이다. 저자는 콜센터에서 일하는 동안 "매일 밤 그만둘 핑계를 궁리하며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까대기는 직설적이다. (...) 너는 도구다. 회사가 필요한 결과를 만드는 데 필요한 망치나 드라이버 같은 거다." (p. 160)
진입장벽이 낮아서 문자로 나이, 이름, 경력 유무만 보내면 채용되는 물류센터는 또 어떤가. 소위 '까대기'라 부르는 상하차 일을 경험한 저자는 "까대기는 몸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하루에 25톤 무게의 화물을 옮겨야 하고, 이를 위해 몸을 굽혔다 일어서는 동작을 1500번 가량 해야 하는 작업은 "남은 수명을 팔아서 돈을 버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저자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뷔페식당 주방에서의 희로애락, 60대 이상이 주로 근무하는 빌딩 청소에 대해서도 실감나는 경험담을 차례대로 들려준다. 유쾌하고 익살스러운 문체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는데, 한편으로 지독하게 열악한 근무 환경을 고발하는 저자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분노하게 됐다. 차라리 저런 직업들은 빨리 대체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고되고 고된 노동 현장에도 빛나는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저자에 따르면, 야간 '까대기'가 끝나고 물류센터 밖으로 나왔을 때 하늘에 떠 있는 '노오오오란 해'는 살아있음을 느끼게 만들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식당 손님들과 교감을 이루었다는 충만감을 경험한다. 극히 드물지만 콜센터에서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줬다는 효능감을 느끼기도 한다.
지금도 어떤 직업은 사라지는 중이다. 시대의 변화를 거스를 수 없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 소멸에 무관심하다. 하지만 "직업이 사라진다는 것은 생계수단이 사라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 노동을 통해 성정하고 완성되어 가던 특정한 종류의 인간 역시 사라지는 것을 뜻"한다. 저자가 기필코 사라져가는 직업들의 비망록을 남기려고 한 까닭은 그 때문이리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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