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 단체전 3연패 뉴펜저스 "뭉치면 더 강해져…질 자신 없었다"
모이면 강해지는 어벤저스처럼 '뉴펜저스'도 힘을 합쳐 이겼다. 남자 사브르 대표팀이 올림픽 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구본길(35·국민체육진흥공단), 오상욱(27·대전광역시청), 박상원(23·대전광역시청), 도경동(24·국군체육부대)으로 구성된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1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단체전 결승에서 헝가리를 45-41로 꺾었다.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유서 깊은 경기장에서 태극기를 들어올린 선수들은 원우영 코치를 헹가래치며 기뻐했다.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2012 런던 대회(원우영·김정환·구본길·오은석)에서 처음 정상에 올랐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선 종목 로테이션 규정에 따라 단체전이 열리지 않았고, 2020 도쿄 대회에서 2연패를 이뤘다. 당시 멤버인 김정환, 구본길, 김준호, 오상욱은 훤칠한 외모에 실력까지 뛰어나 '어펜저스(펜싱+어벤저스)'란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3년 뒤 종주국 파리에서 새 얼굴 박상원과 도경동이 합류해 3연패의 금자탑을 쌓았다.
에이스 오상욱은 새로운 역사를 썼다. 아시아 펜싱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2관왕이다. 남자 사브르 2관왕은 1996 애틀랜타 대회 스타니슬라프 포즈냐코프(러시아) 이후 28년 만이다.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검객으로 우뚝 섰지만, 오상욱은 겸손했다. 개인전 금메달로 그랜드슬램을 이룬 그는 "단체전 메달이 개인전 메달보다 더 기쁘다"고 했다. 전세계 팬들이 이번 올림픽을 통해 오상욱에게 빠졌다. 그의 소셜 미디어에 댓글을 달고, 뜨겁게 반응했다. 오상욱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다는 건) 몰랐다"고 말했다. 후배 도경동의 "지금은 오상욱의 시대"라는 말에 "나의 시대라기보다는 '어펜저스'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게 더 맞다"고 했다.
남자 사브르 사상 최다 연속 우승 기록은 헝가리의 7연패(1928 암스테르담~1960 로마)다. 오상욱은 "7연패까지는 모르겠지만 4년 후 LA 올림픽에서 4연패는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구본길은 올림픽 무대와의 작별을 고했다. 그는 "일단 국가대표 생활을 1년 쉬겠다. 2026 일본 나고야 아시안게임에는 도전해보겠다"고 말했다. 3연패에 모두 기여한 그는 "경기력과 실력은 지금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때마침 이날은 구본길의 둘째 아이 출산예정일이었다. 그는 "집에 가서 육아를 해야 한다. 아니면 쫓겨난다"고 웃었다. 다행히 아내 박은주씨가 코로나19에 걸려 출산일을 귀국일(8월 5일)로 미루면서 출산을 볼 수 있게 됐다.
박상원은 결승전에서도 침착했다. 세 번의 바우트에서 15득점을 올리면서 한번도 리드를 허용하지 않았다. 특히 첫 주자로 나와 올림픽 개인전 3연패를 이룬 헝가리의 영웅 실라지 아론에게 5-4로 앞섰다. 박상원은 "상욱이 형의 금메달이 내게 자극이 됐다. 상욱이 형에게 메달을 보여달라고 하자 없는 척하다 '뻥이야'라며 만지게 해줬다. 그러면서 '너도 딸 건데'라고 얘기해줬다"는 일화를 전했다.
런던올림픽 금메달을 보며 성장한 박상원은 이제 선배들의 자리를 채웠다. 그는 "선배들이 너무 잘해서 중압감도 크고,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뒤돌아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걸로 끝나지 않고, 더 열심히 잘 해서 다음 대회들도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8강과 준결승에서 출전하지 않았던 도경동은 사트마리 안드라스를 상대로 5연속 득점을 올려 35-29을 만들었다. 당초 박상원 대신 들어가려다 구본길 대신 7바우트에 투입됐다. 계획에 없던, 즉흥적인 교체였지만 완벽하게 통했다. 도경동은 "연습 때 (해설로 온 김)정환이 형을 만났는데, '네가 어떤 놈인지 보여주라'고 하셨다. 질 자신이 없었다. 형들에게 이기고 나오겠다고 말했다"고 털어놨다.
도경동은 "내일 눈을 떴을 때 이게 현실이었으면 좋겠다. 내 개인의 승리보다는 펜싱 역사를 쓴 것에 만족한다"고 했다. 국군체육부대(상무) 소속인 도경동은 시상식에서 거수경례를 했다. 지난해 3월 입대한 도경동은 올해 10월 전역 예정이었으나 메달 덕분에 2개월 정도 앞당길 수 있게 됐다. '마지막 충성'이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다"고 대답하며 웃었다.
파리=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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