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지, 리그 경쟁력 높이는 데 한 몫…챔피언스 우승 후보는 프나틱·젠지”

김지윤 2024. 8. 1.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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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T 퍼시픽 공식 해설가 정인호 인터뷰
정인호 해설. 라이엇 게임즈 제공

20년 차 베테랑 정인호 해설은 유쾌한 입담, 냉철한 분석력으로 국내 발로란트 e스포츠에 활력을 더해주고 있다. 25년 전 ‘스타크래프트’ 프로 선수로 e스포츠에 발을 담근 그는 이후 ‘도타2’ ‘스페셜포스’ ‘카운터스트라이크’ ‘오버워치’ 등 여러 장르의 게임에서 해설자로 활약하며 팬들 사이에서 ‘꾸준함’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30일 서울 송파구에서 정 해설을 만나 22일에 막을 내린 발로란트 챔피언스 투어(VCT) 퍼시픽 리그에 대한 평가와 다가올 국제대회 챔피언스 서울에 대한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마친 퍼시픽 리그에 대해 평가한다면.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에도 한국에서 대회가 진행됐다. 지난해 영상으로 봐왔던 선수들과 한공간에서 함께하는 게 뜻깊었다면, 올해는 한국 팀이 실질적인 성과를 낸 게 기억에 남는다. 젠지의 활약으로 퍼시픽 리그가 1인칭 슈팅(FPS) 강호인 EMEA(유럽·중동·아프리카)나 아메리카스와 우승 경쟁을 할 만큼 경쟁력이 있다는 걸 느꼈던 한해였다.”

-올해 발로란트 e스포츠는 ‘젠지의 해’라고 불릴 만큼 이 팀의 활약이 돋보였다.
“젠지가 킥오프 때만 해도 잘하긴 하지만 경기 내용이 불안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다. 선수단 리빌딩 기간이 다른 팀에 비교해서 되게 짧았다. 합을 맞추는 시간이 필요했고 잘하는 선수들이 모였어도 국제대회에서 경험이 없는 선수들로 꾸려져 불안했었다. 마스터스 마드리드 때도 사실 결승까지 갈 줄 몰랐다. 젠지가 당시 패자조부터 시작해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이기며 결승전에 올라가는 등 대회 경험치가 쌓이니까 선수 개인마다 ‘안 질 것 같다’는 마인드가 생긴 것 같더라. 이 부분이 젠지의 가장 큰 무기가 아니었나 싶다. 올해 젠지 선수단의 개개인 기량이 많이 늘었다. 특히 개인적으로 인게임오더(IGL)를 맡은 ‘먼치킨’ 변상범의 활약을 높게 평가한다. 마드리드에서의 성적을 보고 마스터스 상하이에선 우승할 수 있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젠지 코치진의 전략·전술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강근철 감독은 1세대 선수고, 당시 ‘월드 클래스’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해성 코치 역시 1.5세대 선수인데, 그 시절 제일 잘했다. 개인적으로 김 코치는 군대를 전역하고 선수로 뛰길 바랄 정도였다. 근데 사실 강 감독이나 김 코치 모두 디플러스 기아와 일본의 데토네이션 포커스 미(DFM)에 있었을 때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냈다. 이 때문에 둘이 젠지를 이끈다고 했을 때도 외부 평가가 그리 높지는 않았다. 내가 알기론 (감코진 영입 전) 젠지 내부에서도 평가가 갈렸던 거로 안다. 다만 경기를 거듭하면서 선수 전원이 강 감독과 김 코치를 인정해 간게 경기력 향상에 큰 영향을 준 거 같다. 두 사람도 단기간에 팀을 단단하게 잘 꾸렸다. ‘다른 감독, 코치였다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또 다른 한국 팀인 DRX와 T1에 대해서 평가하자면.
“DRX는 만약 이번 스테이지2 결승진출전에서 페이퍼 렉스(PRX)에게 졌다면 내부적으로 매우 힘들었을 거다. 리빌딩을 했음에도 결과가 계속 안 따라주다 보면, 스스로를 의심하는 시간이 오지 않나. 아마 DRX는 그 직전까지 갔었을 거로 생각한다. 결승전 때도 DRX가 충분히 3대 0까지 바라볼 수 있었을 정도로 잘했다. 이번 결승을 통해 선수 개개인마다 확신을 얻었을 거다. 이 때문에 챔피언스 서울 때도 예상 외로 선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반면 T1은 대대적인 변화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선수로만 팀을 꾸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팀적인 판단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결국 ‘스택스’ 김구택이 IGL를 맡고 그와 감코진의 색깔에 잘 섞일 수 있는 선수를 영입해야 한다고 본다.”

-올해 한국 팀의 국제대회 경쟁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는 평가가 많다. 어떤 부분에서 서양 팀과의 격차가 좁혀졌다고 보나.
“과거 해외 팀들이 (국제대회 단골인) DRX의 전술을 많이 모방했다. 그 정도로 DRX가 전략이나 움직임이 매우 좋았는데 이 때문에 강팀과의 경기에서 매번 간파당했고 그 무렵에 떨어졌다. 이러한 패턴이 계속되다 보니 한국 팀들이 해외 팀보다 교전 능력이 밀린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했던 거 같다. 이 편견을 깨부순 게 젠지다. 전술도 되지만 에임에서도 자신감이 보인다. 이걸 바라보던 DRX도 여러 번의 체질 개선 끝에 격차가 좁혀진 거 같다.”

-정 해설은 2020년부터 발로란트 해설을 맡았다. 지난해 VCT가 개편되기 전과 후 모두를 경험해봤을 때 장단점이 있다면.
“국내 리그였을 땐 경험치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결승에서 만날 거 같은 팀이 매번 정해져 있는 느낌이고, 그들만의 경쟁을 하다 보니 팀들의 성장 속도가 더뎠다. VCT가 출범하고 나서 대회가 커지고, 쉽게 접해보지 못했던 색깔을 가진 팀들을 만나면서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진 게 보인다. 단점은 잘 모르겠다. 단점이 없을 정도로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

-여러 게임의 해설을 경험해본 베테랑이시다. 정 해설이 본 발로란트만의 매력이 있다면.
“사실 나는 선수 시절을 1인칭 슈팅(FPS)이 아닌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RTS) 장르로 시작했다. 해설에선 정말 많은 종목을 맡았다. 스페셜 포스부터 서든어택, 카운터 스트라이크, 오버워치 등 안 해본 종목이 없다. 그중 유독 발로란트는 완성도가 높은 게임이다. 일단 게임이 근거가 있다. 에임과 스킬에만 의존하는 것도 아니고, 맵과 영역이 주는 중요도가 각기 다르므로 알면 알수록 어렵지만 재밌는 게임이다. 게임이 워낙 예민하다 보니 연속 우승팀이 나오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 부분에서 대회 완성도가 상당히 높고, 보는 즐거움이 크다.”

VCT 퍼시픽 해설진. 라이엇 게임즈 제공

-올해 처음으로 발로란트 e스포츠 최고 권위 국제대회인 챔피언스가 한국에서 열린다. 올해 활약이 기대되는 팀을 권역 별로 뽑는다면.
“먼저 EMEA에선 프나틱이다. 멤버가 교체됐는데, 리빌딩이 굉장히 잘됐다. 확실히 최근엔 깨달은 것 같은 움직임과 ‘헤이븐’ 같은 특정 맵에서 쓰는 조합의 완성도, ‘보스터’ 제이크 하울렛의 실력과 감코진의 분석력 등을 고려해본다면 프나틱은 ‘우승후보 0순위’다. 아메리카스는 레비아탄이 경계 대상이다. ‘아스파스’ 에릭 산투스라는 좋은 선수가 있어서다. 사실 센티널즈와 G2 e스포츠도 정말 잘할 거로 예상된다. 퍼시픽 같은 경우엔 젠지, DRX만을 생각하고 있다. PRX는 변수 카드를 준비하지 않는 이상 4강 이상 진출하기 힘들어 보인다. 우승 후보론 프나틱과 젠지를 꼽겠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이 두 팀이 제일 잘한다.”

-홈 경기에 임하는 한국 팀의 성적을 예상해 본다면.
“올해 한국 팀이 챔피언스에서 우승할 적기라고 본다. 관건은 기세를 어떻게 타느냐다. 공개된 게 많이 없는 DRX가 첫판인 크루 e스포츠한테 말리지만 않는다면 예상 외로 잘할 거 같다. 젠지는 많은 관계자들이 우승 후보로 뽑는다. 예전에 라우드, 프나틱 같은 팀의 위상이 됐다. 하지만 불안한 흐름이 있을 수 있다. 너무 많은 대회를 하다 보니 전략이 노출됐고 그룹 스테이지부터 ‘죽음의 조’에 배정됐다. 더구나 젠지 선수단이 챔피언스에서 가장 만나기 싫다고 말한 3개 팀인 펀플러스 피닉스(FPX), 프나틱, 헤레틱스 중 2팀(FPX, 헤레틱스)을 같은 조에서 만났다. 이런 고비들을 넘기면 두 팀 모두 4강은 충분히 진출할 수 있을 거로 보인다.”

-챔피언스 서울에서 관전 포인트가 있다면.
“결국 분석 싸움이다. 팀 마다 갖고 있는 습관 등을 어떻게 파악하고 대처하는지에 따라 경기력이 달라질 것이다. 경기가 시작되고 30초 안에 어떤 플레이를 하는지, 어느 구역에 스킬이 꽂히는 지 등 디테일한 분석과 이를 이용하는 전략이 관건이다. 또 국제대회인 만큼 매번 선수 전원의 컨디션이 좋을 수가 없다. 경기력이 불안할 때 쓸 전략과 멘털 케어가 필요하다. 스케줄이 타이트한 점을 고려한다면 상대 팀을 분석하는 서브 코치들의 능력에 따라 결과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발로란트 국제대회가 한국에서 열리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번 챔피언스를 기점으로 국내 발로란트 e스포츠가 성장할 수 있을 거로 본다. e스포츠의 현장 열기와 발로란트의 스토리를 직접 직관하다보면 팬층이 더 많이 형성될 거고, e스포츠 성장에 큰 동기부여가 될 것으로 본다. 한국에서 대회가 잘 되면 내년, 내후년엔 더 잘하는 선수들이 쏟아져 나올 거다.”

-정 해설은 국내 발로란트 e스포츠의 성장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무엇보다도 중계 퀄리티에 많은 신경을 쓴다. 20년 간 중계를 해봤지만 이번 발로란트 해설자 라인업이 역대급으로 좋은 거 같다. 해설진 모두 성실하고 무엇보다 발로란트에 진심이다. 해설자로서 잘하고자 하는 욕심도 크고, 조언에 대해 수용하려고 하는 자세도 좋다. 호흡적인 부분도 정용검 캐스터가 합류하고 많이 좋아졌다. 나는 e스포츠도 기본적으로 스포츠 중계에 입각한 깔끔한 중계를 추구하는데 정 캐스터가 합류한 뒤 딱 맞는 색깔이 됐다.”

-끝으로 챔피언스 서울을 지켜볼 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수줍어 마시고, 내면에 있는 감정을 챔피언스 서울에 오셔서 다 표출하고 가셨으면 좋겠다. 언제 또 한국에서 열릴지 모르지 않나. 한국 팀 우승도 지켜보셨으면 한다. 나도 중계 열심히 할테니 설레는 마음을 맘껏 펼치시길 바란다.”

김지윤 기자 merr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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