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펜싱 사브르, 3연패 '신화' 쓰다…헝가리 45-39 제압→오상욱 2관왕 '위업' [파리 현장]
(엑스포츠뉴스 파리, 김지수 기자) 대한민국 남자 사브르 펜싱 대표팀이 하계 올림픽 단체전 3연패 위업을 달성했다. 2012년 런던, 2021년 도쿄에 이어 2024년 파리에서 세계 정상에 오르는 역사를 썼다.
태극전사들의 2024 파리 올림픽 6번째 금메달이 빚어졌다.
오상욱(27·대전광역시청), 구본길(35·국민체육진흥공단), 박상원(23·대전광역시청), 도경동(24·국군체육부대)으로 구성된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1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하계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에서 난적 헝가리와 접전 끝에 45-41로 이기고 우승했다.
한국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2012 런던 올림픽 김정환, 오은석, 구본길, 원우영 ▲2020 도쿄 올림픽(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2021년 개최) 구본길, 김정환, 김준호, 오상욱에 이어 하계 올림픽 3회 연속 금메달이라는 금자탑을 쌓게 됐다.
펜싱의 경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까지는 단체전 남여 각각 한 종목이 돌아가면서 열리지 않았고, 하필이면 리우 올림픽 때 빠지는 종목이 남자 사브르였다. 2020 도쿄 대회부터는 단체전도 남여 에페와 플뢰레, 사브르 모두 열리게 되면서 펜싱 종목 금메달이 총 10개에서 12개로 늘었다. 한국은 남자 사브르 단체가 정식 종목으로 부활한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2연패에 성공했고, 이번에 3연패까지 내달렸다.
이날 금메달 획득으로 맏형 구본길은 하계 올림픽 3회 연속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기쁨을 맛봤다. 오상욱은 이번 파리 올림픽 사브르 남자 개인전 왕좌에 이어 단체전까지 메달을 목에 걸고 2관왕을 차지했다. 오상욱 역시 3년 전 도쿄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까지 합치면 올림픽 통산 금메달이 3개가 됐다.
오상욱은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 첫 2관왕이 됐다.
오상욱의 금메달은 한국을 넘어 세계 펜싱사에서도 기념할 만하다. 하계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에서 2관왕이 탄생한 건 지난 1996년 애틀랜타 대회 스타니슬라프 포즈드냐코프(러시아)가 마지막이다. 그 만큼 한 종목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동시에 석권하는 게 어려운 일인데 오상욱이 이를 28년 만에 해냈다. 아시아 선수로는 오상욱이 최초다.
오상욱은 시상식을 마친 뒤 "단체전 금메달이 확정됐을 때 진짜 눈물이 많이 날 것 같았다. 내가 2관왕을 해야 한다는 것보다는 팀원들과 계속 이렇게 함께 이겨내고 서로 도움을 주고 해냈다는 자체가 더 기쁜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 "항상 이렇게 여운이 남는 경기는 메달이 중요하지 않고 맛있는 것 같다"며 "내가 뭔가 배워가고 얻어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나의 '맛있다 없다'는 이게 기준인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펜싱은 에페와 플뢰레의 경우 프랑스가 종주국이지만 상대를 찌르는 것은 물론 베는 것도 점수로 인정하는 사브르는 헝가리가 종주국이다. 헝가리의 아성을 한국 '어펜저스'가 무너트린 셈이다.
한국은 이날 결승전에서 이번 대회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신예 박상원이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었다. 반면 헝가리는 런던 올림픽과 리우 올림픽, 도쿄 올림픽에서 남자 사브르 개인전 3연패를 달성했던 세계적인 선수 아론 실라지를 투입했다. 그런데 박상원이 잘했다. 박상원은 경기 시작과 동시에 먼저 한 점을 뺏기기는 했지만 접전 상황에서 게임을 뒤집고 한국에 5-4 리드를 안겼다.
이어 개인전 챔피언 오상욱도 2라운드에서 크리스천 라브와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4점을 허용했지만 5점을 챙기면서 한국이 10-8로 격차를 벌리고 앞서갔다.
3라운드는 맏형 구본길이 나섰다. 구본길은 프랑스와의 준결승에서 보여준 관록 넘치는 플레이로 언드라시 사트마리를 상대했다. 완급조절을 통해 사트마리의 타이밍을 뺏으면서 5점을 따냈고 3점밖에 주지 않았다. 한국이 15-11로 달아나면서 주도권을 유지했다.
그러나 헝가리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4라운드에서 크리스천이 박상원을 상대로 6점을 얻고 5점만 내주는 선전을 펼쳤다. 한국은 20-17로 점수차가 좁혀진 상태에서 5라운드를 맞이했다.
5라운드에서는 구본길과 실라지, 두 베테랑이 맞붙었다. 5점을 주고받은 끝에 일단 25-22 한국의 3점 차 리드가 유지됐다. 하지만 오상욱이 6라운드에서 사트마리에게 순식간에 4점을 헌납, 25-26으로 게임이 뒤집혔다.
오상욱은 일단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2점을 따내면서 27-26으로 다시 한국의 리드 상황을 만들었다. 사트마리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주고받은 끝에 일단 30-29의 근소한 리드로 6라운드가 끝났다.
한국은 7라운드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구본길 대신 도경동이 교체로 투입됐다. 8강과 준결승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도경동의 이번 대회 첫 출전이었다. 구본길의 경기력이 크게 나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도경동의 출전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다만 구본길이 캐나다와 8강에서 부진하다보니 중간에 선수 교체를 요청한 적은 있었지만 결승전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본 이들은 많지 않았다.
도경동의 투입은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됐다. 그는 7라운드를 지배했다. 라브를 상대로 한 점도 주지 않고 5점을 챙기면서 스코어는 35-29로 벌어졌다. 금메달이 점점 한국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한국은 도경동이 가져 온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박상원이 서트마리를 상대로 5점을 빼내면서 40점을 선점했다. 40-33에서 개인전 챔피언 오상욱이 금메달을 확정하기 위해 9라운드에 나섰다.
오상욱은 실라지를 상대로 금메달에 필요했던 마지막 5점을 책임졌다. 44-41에서 헝가리에 작별 인사를 건네는 45점째를 완성하고 한국의 단체전 우승과 자신의 이번 대회 2관왕을 완성했다.
한국은 헝가리와 결승은 물론 8강전과 준결승에서도 세계랭킹 1위이자 파리 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 강력한 우승후보에 걸맞는 경기력을 뽐냈다.
한국은 캐나다와 8강전을 45-33 압승으로 장식하고 여유 있게 준결승 무대에 안착했다.
이어 개최국 프랑스과 격돌했다. 프랑스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 속에 피스트에 올라선 한국은 당당하게 상대를 제압해 나갔다. 1라운드 박상원이 파트리크 세바스티앙에게 2-5로 밀리며 불안하게 출발했지만 이번 대회 개인전 금메달 리스트 오상욱이 등장하면서 전세를 뒤집었다.
오상욱은 2라운드에서 막시메 피앙페티를 상대로 8점을 따내면서 2점만 내주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뽐냈다. 전세가 10-7로 뒤집어지면서 한국이 결승을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한국은 3라운드에서 남자 사브르 단체전 3번째 금메달에 도전하는 맏형 구본길도 힘을 냈다. 프랑스의 볼라데 아피디를 무득점으로 꽁꽁 묶으면서 5점을 연달아 따내 전체 스코어를 15-7까지 벌려놨다. 한국은 8점 차의 넉넉한 리드를 바탕으로 쉽게 게임을 풀어갈 수 있었다.
4라운드도 싱거웠다. 박상원이 1라운드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피앙페티를 5-2로 제압했다. 같은 상대에게 두 번은 당하지 않았다. 한국 검사들은 피앙페티 운영 스타일을 파악한 뒤 공세를 퍼부어 전체 스코어를 20-9로 만들었다.
홈 팀의 열광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프랑스도 쉽게 물러서지는 않았다. 5라운드에서 세바스티앙이 구본길에게 초반 2득점하면서 리드를 잡고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구본길도 빠르게 2점을 만회했고 그대로 내달려 30점 고지를 점령했다.
어느 덧 스코어가 30-14, 한국이 두 배 이상 앞선 상황이 됐다. 프랑스의 추격 의지를 완전히 꺾어놨다. 8라운드에서 박상원이 피앙페티에 10점이나 내주면서 40-30으로 다소 쫓기고 9라운드에서도 오상욱이 벼랑 끝에 몰린 파트리스의 '막가파' 공격에 다소 흔들렸으나 승패가 뒤집어지진 않았다. 프랑스의 저항을 6점 차로 돌려세웠다.
한국의 결승전 상대인 헝가리까지 삼켜냈다. 헝가리는 이번 파리 올림픽 사브르 남자 단체전 결승에서 맞붙을 것으로 어느 정도 예상했던 팀이다.
헝가리는 준결승에서 아시아 복병 이란과의 경기에서 크게 고전했으나 실라지가 이란 에이스 알리 파크다만을 제압하면서 8라운드까지 39-40으로 뒤졌던 전세를 45-43 역전승으로 바꿨다.
헝가리는 한국과 세계선수권 결승에서 곧잘 만났던 상대팀이다. 한국은 2017년 독일 라이프치히 대회에서 헝가리를 누르고 우승했던 좋은 기억이 있었다. 201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대회에서도 개최국 헝가리와 결승에서 2년 만에 리턴 매치에서 또 이겼다. 2022년 이집트 카이로 대회 결승에서도 한국이 헝가리를 이겼다. 다만 지난해 이탈리아 밀라노 대회에선 헝가리가 한국을 결승에서 이기고 우승했다.
태극검사들에게 결승에서 헝가리에게 2번 연속 패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올림픽 3연패의 위업을 달성하고 파리 하늘 아래 또 한 번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2010년 그랑 팔레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자 사브르 개인전 우승을 거두고, 2012 런던 올림픽 단체전에서 우승 감격을 맛 본 원우영 대표팀 코치는 경기 뒤 남다른 감회를 전했다.
그는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니 마음이 또 남다르다. 제가 선수로 금메달을 땄던 런던부터 이어진 것이라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면서 "단체전 금메달로 모든 선수가 주목받게 된 것도 기쁘다"며 미소 지었다.
그는 30-29 박빙으로 앞서고 있던 7라운드에 도경동을 깜짝 투입한 것이 승부수였음을 전했다. 도경동은 라브에 한 점도 빼앗기지 않고 5점을 따내 승부를 35-29, 넉넉하게 끌고 갔다. 원 코치는 "저도 소름이 돋았다. 미치는 줄 알았다"며 교체 선택에 대한 '자찬' 섞인 놀라움을 표현했다.
이어 "경동이가 나가면서 손가락질을 딱 하며 본인을 믿으라고 하더라. 그때 저는 '오케이, 됐어'라고 느꼈다"며 "한국이 남자 사브르 팀 세계랭킹 1위를 지키는 데 큰 힘을 보태왔고 능력이 있는 선수라 믿고 있었다. 그래도 5-0까지는 바라지 않았는데 정말 완벽하게 해줬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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