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석준희 고려대 반도체공학과장 "의대에 인재 안 뺏기려면 '세계1위' 믿음줘야"
메모리·비메모리 설계·공정·소자·시황 골고루 교육
'투타겸업' 야구선수처럼 기본기 강한 인재 키운다
"내년 초 고려대학교 반도체공학과 졸업생들이 SK하이닉스의 정규직으로 입사합니다. 졸업생들이 SK하이닉스에 입사한 후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학부 시절의 꿈을 실현하는 사례가 늘어나면, 의대 대신 반도체 학과를 선택하는 신입생도 증가할 것입니다."
석준희 고려대 반도체공학과 학과장은 지난달 29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창의관에서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석 학과장은 공학이 적성에 맞지만, 높은 직업 안정성을 이유로 입학 후 의대로 전공을 바꾸는 신입생들이 종종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우리 과에는 의대보다 반도체 기업을 더 선호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이들 역시 진로를 바꿀 수 있다"며 "의사가 아닌 반도체 엔지니어로서 꿈을 키우게 하기 위해서는 계약학과 졸업 후 SK하이닉스 정규직으로 입사하면 구글이나 테슬라의 엔지니어처럼 자기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 학과장은 대한민국 반도체 계약학과의 원년을 2021년으로 봤다. 이는 2021년 고려대(SK하이닉스)와 연세대(삼성전자)에서 계약학과가 출범한 것을 비롯해, 4년 동안 9개 대학에서 학과가 신설된 데 따른 것이다. 내년 초부터 고려대와 연세대 졸업생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정규직으로 입사할 예정이다.
그는 반도체 계약학과 제도가 오랫동안 유지될 것으로 확신했다. 기업들이 인재 선점과 전문성 증대 측면에서 반도체 계약학과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통상 채용 연계형 계약학과 졸업생들은 해당 기업에 의무적으로 입사해야 하며, 계약을 어길 경우 기업이 제공한 지원금을 반납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로 인해 계약학과 졸업생이 다른 회사로 입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반도체 계약학과의 또 다른 장점은, 비(非)계약학과 공대생들과 달리 반도체와 관련 없는 공학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어 수업의 효율이 높다는 점이다. 석 학과장은 "반도체 계약학과에서는 반도체 관련 과목만 수강하면 된다"며 "비계약학과 학생들이 다른 과목을 듣는 동안, 우리 학생들은 비메모리 반도체 소자 및 설계 같은 반도체 특화 과목을 공부하고, 대학원생이나 교수의 연구 실습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된다"고 설명했다.
고려대 반도체 계약학과에서는 메모리 반도체뿐만 아니라 비메모리 반도체 수업도 진행한다. SK하이닉스에서 개설한 '메모리기술이해'(4학년 1학기) 과정에서는 SK하이닉스의 현직 엔지니어 5~6명이 공정 관련 수업을 진행한다. '기초반도체 세미나'(3학년 2학기) 과정에서는 SK하이닉스의 전·현직 임직원이 반도체 시황, 역사, 기술 로드맵, 지정학적 이슈 등을 가르친다.
고려대의 목표는 학부생들이 4년 동안 '반도체 8대 공정' 전부를 경험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고도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올해 연말 준공 예정인 고려대 정운오 IT 교양관(지상 2층, 지하 10층)에 200평 규모의 클린룸을 신설해 학부생들에게 실습 기회를 늘릴 계획이다. 또 4학년 1·2학기에는 학생들이 원하는 분야에서 지도교수와 대학원생의 연구에 참여하는 '학부연구인턴십' 과정을 운영할 예정이다.
석 학과장의 교육 철학은 기술에만 매몰되지 않고, 글로벌 산업과 해외 시장 동향에도 밝은 인재를 육성하는 데 있다. 고려대 반도체공학과는 지난 3~6월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데이비스캠퍼스(UC 데이비스)로 학부생 23명을 파견해 학기 교육 과정을 제공했다. 석 학과장은 "고등학교 시절 타격과 투구를 모두 잘 익힌 야구 선수가 프로에 입단해 야수나 투수 중 하나를 선택해 활약하듯, 메모리·비메모리 반도체 기술과 글로벌 동향 등 반도체 전 영역에서 기본기를 다진 인력을 육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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