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출전 임산부 선수 또 있다…"선수이자 엄마로서 모든 순간 사랑"[파리올림픽]
英 양궁 조디 그린햄도 임신 28주에 출전
운동과 개인의 삶 모두 쟁취 노력 ↑
금지현도 만삭에 국내 경기 출전하기도
2024 파리올림픽에서 펜싱 여자 사브르 국가대표 전하영을 16강에서 상대했던 이집트 검객 나다 하페즈가 임신 7개월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임산부의 올림픽 출전이 주목받고 있다. 임신·출산은 곧 선수 생활 종료라는 과거 인식에서 벗어나, 운동과 개인의 삶을 동시에 쟁취해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는 '예비 엄마' 국가대표 선수들의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하페즈 선수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펜싱 사브르 경기를 마친 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임신 7개월의 올림픽 선수'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경기장에 2명의 선수가 올라간 듯 보이지만, 사실 3명"이라면서 "나와 상대 선수(전하영), 그리고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나의 작은 아기가 함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집트 여성의 강인함과 인내심을 알리기 위해 임신 사실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썼다.
하페즈는 경기 당일 전하영에 15대 7로 패배해 탈락했다. 그는 "올림픽에 세 차례나 출전했지만, 이번 무대는 달랐다"면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든 과정을 겪었지만, 올림픽은 그런 상황을 겪고도 출전할 가치가 있는 무대"라고 강조했다.
이달 28일부터 진행되는 2024 파리패럴림픽에 출전하는 영국 컴파운드 양궁 국가대표 조디 그린햄도 예비 엄마로 경기에 나선다. 경기가 치러질 이달 말이면 그는 28주 임산부가 돼 있을 예정이다.
그린햄은 BBC방송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내 커리어의 모든 순간을, 엄마로서 모든 순간을 사랑한다"며 "모든 사람이 가능하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이 종목에서 시합을 계속할 수 있어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산부가 출전해선 안 된다'라고 말하지 않고 이를 지원해주는 누군가가 있을 수 있다는 건 국가적 차원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왔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임산부가 올림픽에 출전하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임신 중인 선수가 올림픽에 출전한 사례가 드물게 있었다. 독일 양궁선수 코넬리아 프폴은 임신 초기에 2000 시드니올림픽에 출전해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2004 아테네올림픽에 둘째를 임신한 상태로 참가했다.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승마선수 얀키 반 그룬스벤은 임신 5개월 차에 2004 아테네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국내 선수가 임산부로 국제 대회에 출전해 성과를 거두는 일도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 10m 공기소총 혼성경기 은메달을 거머쥔 금지현은 지난해 딸을 출산했다. 2022년 이집트 카이로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임신 사실을 알아 임신 초기 국제무대에 출전, 파리올림픽 쿼터(출전권)를 따냈다. 지난해에는 만삭의 몸으로 국내 사격대회에 출전한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임산부 운동선수를 향한 따가운 시선도 있었지만, 일과 가정을 함께 꾸리겠다는 목표로 당당하게 버텼다고 한다.
인식 바뀐 임산부 선수의 올림픽 출전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 운동선수의 임신은 곧 선수 생활을 끝내는 문제로 인식돼 경기 출전을 위해 낙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1968년 구소련이 올림픽을 앞두고 여성 체조선수들을 낙태시킨 일이 폭로돼 논란을 빚었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1600m 계주 금메달을 딴 미국 육상 선수 산야 리처드 로스도 당시 올림픽을 2주 앞두고 낙태 수술을 받았다고 2017년 폭탄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수년 새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출산 후 올림픽 경기장에 복귀한 '워킹맘'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활약할 뿐만 아니라 여성 선수가 운동을 위해 임신·출산 등 개인의 삶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IOC 선수위원회 위원장인 핀란드 하키 선수 출신 엠마 테르호는 "임신이 선수 경력의 마침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외쳤고, IOC 선수 위원으로 현역 시절 올림픽 금메달을 7개나 딴 미국 단거리 육상 선수 출신 앨리슨 펠릭스도 한 방송 인터뷰에서 "여성이 엄마가 되어도 최고가 될 수 있고, 한순간도 놓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다.
IOC 선수 위원에 도전하는 '한국 골프 여제' 박인비도 둘째를 임신한 엄마로 파리올림픽에서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 2014년 프로 골퍼 남기협 코치와 결혼한 박 프로는 2022년 임신 소식을 알린 뒤 지난해 4월 첫째 딸을 낳았다. 2022년 8월 AIG 여자오픈 이후로 대회에는 출전하고 있지 않으나, 선수 위원 유세를 위해 올림픽 현장 곳곳을 직접 걸으며 선수들을 만나고 있다. 그는 워킹맘이자 국가대표 선수라는 점을 어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올림픽에도 영국 사격 국가대표 앰버 러터는 출산 3개월 만에 출전했다. 그는 최근 스카이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분명 어려움이 있다. 모든 엄마는 공감하겠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잠을 잘 못 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대회는 완전히 다르다. 시합하는 이유가 달라졌다"며 "이제는 나 자신만이 아니라 아들을 위해서 시합을 뛰며 그것이 곧 다른 종목 여자 선수들에게 둘 다 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산부 올림픽 출전 안전한가일각에서 임산부의 올림픽 출전을 두고 산모와 태아의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별도로 여자 선수의 임신 시 경기 출전과 관련한 규정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 올림픽 출전 선수 가운데 여자 선수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는 데다 여권 신장이 이뤄진 상황에서 출전 선수의 연령대가 평균 가임기와 겹치는 만큼 이와 관련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앞서 IOC는 2016년 스위스 로잔에서 16명의 의료·과학 전문가들을 모아 IOC 전문가 집단 회의를 열고 사흘간 엘리트 운동선수의 임신·출산과 운동에 대한 연관성을 논의한 바 있다. 당시 이들은 여성 엘리트 운동선수의 임신·출산과 운동 효과, 산모와 태아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과 관련한 근거 데이터가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놨다.
임신·출산이 여자 운동선수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인식에 뚜렷한 근거가 없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임신 중 또는 출산 후 운동을 비롯한 활동적인 신체 활동을 유지하라고 권장하는 상황에서 하루 4시간 이상 고강도 운동이 기존에 운동을 해왔던 임산부들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파악할 데이터와 연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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