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北∙러, 불법 외화벌이도 밀월…中서 노동자 내쫓자 러 보낸다
중국이 최근 사증(비자)이 만료된 자국 내 북한 노동자는 귀국하라는 입장을 정한 가운데 북한이 중국에서 해킹 등을 통해 외화를 벌어온 정보기술(IT) 분야 종사 노동자 상당수를 러시아에 다시 파견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이 대북 제재가 금지한 북한 노동자 파견을 더 이상 눈감아주지 않겠다고 나오자, 북한은 러시아에 새로운 활로를 뚫어 외화벌이를 이어가겠다고 응수한 셈이다. 지난 6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북·러 간 밀월이 이어지고, 북·중 간에는 이상기류가 계속되는 분위기다.
해당 사안에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지난달 31일 중앙일보에 "최근 중국 당국이 자국 내 북한 노동자의 귀북을 요구했다"며 "이에 북한은 중국에서 철수 예정인 노동자 중에서 특히 IT 관련 노동자들을 러시아로 재파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2397호(2017년 채택)는 회원국의 북한 노동자 고용을 원천 금지한다. 하지만 중국은 그간 노동 비자가 아닌 학생 비자 등으로 '세탁'해 체류를 허가하며 각종 업체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는 걸 묵인해왔다.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는 지난 3월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해외 노동자 파견을 통해 유엔 제재 이전보다 오히려 최대 3배 가까이 늘어난 연간 7억5000만~11억 달러(약 1조 382억~1조5227억원)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대북제재로 막히기 전까지 북한 당국은 중국에 약 5만 명의 노동자를 파견했는데, 이 중에서 IT 관련 노동자는 수백명 규모로 추정된다. 수익 증가로 미뤄 지금은 노동자 규모도 더 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코로나19가 확산하는 동안 북한이 국경 봉쇄에 나서며 북한 노동자들도 귀국이 불가능했고, 새로운 노동자의 파견도 이뤄질 수 없었다. 이에 일부 공장에서 폭동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코로나19가 잦아들고 국경이 열리자 중국이 비자가 만료된 북한 노동자들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김정은으로서는 달러 확보에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러시아로 눈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 중에서도 IT 분야 노동자들을 러시아로 재배치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IT는 김정은 정권의 통치자금과 불법적인 핵·미사일 개발 비용을 벌어들이는 새로운 '캐시카우'로 떠오른 분야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실물 경제가 위축된 반면 빅테크와 암호화폐 기업이 승승장구하는 상황을 노려 IT 분야 노동자를 적극 활용해왔다. 암호화폐 해킹 등이 대표적 돈벌이 수단이다. 이들은 도박이나 성매매 알선 등 불법 사이트 개설 등을 통해 수익을 올리거나 신분을 위장해 버젓이 미국 등 해외 IT 업체에 취업해 외화를 벌어들이기도 한다.
이런 재중 IT 분야 노동자들을 다시 러시아로 보낸다는 건 '앙꼬'만 빼서 옮기겠다는 뜻인데, 북한은 건설이나 가공업 등 중국에서 일하는 다른 분야 노동자들도 순차적으로 귀국시키는 한편 러시아에 새로운 인력을 보낼 준비 중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달 중순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에선 평양으로 귀국하는 북한 노동자의 모습이 다수 포착되기도 했다.
러시아 역시 비자 세탁 등을 통해 북한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하는 식으로 제재 회피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의 노동자 송출은 안정적인 외화벌인 수단이 필요한 북한과 극동 지역 개발을 위해 양질의 노동력이 필요한 러시아 양측 모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지점이 있다. 이에 정보당국도 이미 지난해 9월 북·러 정상회담 직후부터 이런 움직임을 예견하고 동향을 주시 중이다.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북한이 러시아와 더 밀착하려는 일종의 '풍선효과'는 사실상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는 분위기다. 스포츠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7월 초 예정됐던 중국 동남부 지역 소재 농구팀의 방북 친선 경기를 일방적으로 취소했다고 들었다"며 "반면 러시아와는 지난달 12일과 15일에 양국 여자축구 대표팀 간 친선경기를 모스크바에서 열고 스포츠 교류를 강화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북한이 중·러 사이에서 이런 식의 행태로 최대한 이득을 취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한다. 북한과 러시아는 지난달 정상회담을 제외하고도 올해 들어 20차례가 넘는 인적 교류를 공개적으로 진행하면서 협력을 전방위로 확대하고 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1960년대 중·소 분쟁 시기에도 등거리 외교를 추진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한 경험이 있다"며 "당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만들어진 틈새를 최대한 활용해 러시아와의 밀착을 강화하겠지만, 혈맹이라 불리는 중국과의 관계를 언제든 회복시킬 수 있다는 생각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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