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237억 사기범'도 잠적…불구속 피의자 영장 지난해 1만건
지난 10일 오전 대구지법 형사10단독 법정. 방청석에 앉은 피해자 6명이 피고인도, 변호사도 없는 휑뎅그렁한 피고인석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날은 수십 배 수익을 미끼로 237억 원대 투자금을 받은 혐의(유사수신 등)로 3년 전 불구속 기소된 서모(51)씨의 선고기일이었다. 이날 재판은 지난해 6월 추가기소된 17억원대 사기 혐의만 따진 것으로 서씨가 지난해 7월부터 도주해 궐석으로 진행됐다.
재판을 맡은 허정인 부장판사는 서씨에게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다. 검사는 당초 서씨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지만, 1년 6개월의 ‘괘씸죄’를 추가한 것이다. 허 판사는 “피고인은 관련 사건으로 재판을 받다가 선고기일로 지정된 2023년 7월 21일부터 출석하지 않았고, 이 사건 재판에도 한 차례도 출석하지 않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서씨는 2013년부터 2016년 무렵까지 “검증된 기술을 보유한 아이카이스트에 투자하면 원금을 보장하고 연 30%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고 투자자 104명으로부터 237억1772원 가량의 투자금을 모았다. 아이카이스트는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관련 의혹을 제기한 김성진씨가 대표로 있던 기업이다. 서씨는 그러나 투자금을 개인 주식투자, 생활비 등으로 유용했을 뿐 투자 수익금을 지급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서씨는 사기·폭행·음주운전 등 전과 13범이었다.
검찰은 서씨를 특경가법상 사기, 유사수신 등 혐의로 2021년 6월 불구속 기소했다. 구속영장은 청구하지 않았다. 그러다 징역 9년형을 구형받자 서씨는 선고기일인 지난해 7월 21일 잠적해버렸다. 이후 이 재판 선고는 7번이나 연기됐다. 피해자 문모(44)씨는 “서씨가 제주도 인근에서 자산가 행세를 하면서 또 사기를 치고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수사기관이 검거에 손을 놓고 있는 것 같아 속이 탄다”고 했다.
법조계에서 서씨 사례는 낯설지 않다. 지난해 10월 대구지법 서부지원 형사1단독(부장 정승호)은 2022년 5월 경북 고령군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033% 상태로 승용차를 운전해 사람을 치어 다치게 한 뒤 도주한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동종 범죄로 집행유예 기간 중 또 범행을 저지른 A씨는 선고기일에 불출석하고 도주했다.
문제는 피고인이 도주한 순간부터 검거는 하세월이라는 점이다. 부장판사 출신 윤지상 변호사는 “불출석 피고인의 검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서 재판 단계로 넘어오면 수사기관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불출석 피고인 검거는 보통 판사가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검찰 지휘 아래 경찰이 집행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불출석 피고인 구속영장 발부건수는 1만611건(중복 발부 포함)에 이른다. 하지만 검거 인원은 지난해 기준 1242명에 불과하다.
이 같은 지적을 의식해 검찰은 직접 피고인 검거 활동에 나섰다. 지난 2022년 12월 전국 검찰청마다 불출석 피고인 검거 업무 담당부서 및 담당자를 지정했다. 서울중앙지검은 불출석 피고인 전담 검거팀을 만들고 2022년 8월~10월까지 총 30명을 검거하기도 했다. 대검 관계자는 “사법정의를 신속히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관련 인력이 한정적이라 검거율이 다소 낮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부장검사 출신 조주태 변호사는 “불구속 재판 원칙이 자리 잡은 뒤 불출석 피고인 문제가 커졌다”며 “명백한 증거로 수사 단계부터 중죄가 예상되는 경우라면 구속영장을 적극적으로 청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지상 변호사는 “불출석 피고인 검거 실적에 가점을 주는 등 인센티브가 있어야 수사 기관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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