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대표된 뒤 尹과 첫 '깊은 대화'…與선 "큰불 이어 잔불도 잡았다"

박태인, 손국희 2024. 8. 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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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대통령실 파인그라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신임지도부 만찬에 앞서 한동훈 국민의힘 신임 대표와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큰불에 이어 잔불까지 잡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90분 회동했다는 소식이 31일 전해지자 여권에선 이렇게 안도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7·23 전당대회에서 한 대표가 선출된 다음날인 24일 두 사람이 만나긴 했지만 전·현직 여당 지도부와 낙선자까지 포함한 27명의 대규모 만찬 행사였던 탓에 온전한 대화의 시간을 갖기는 힘들었다는 평가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배석했지만, 오붓한 대화가 가능했다는 점에서 전당대회 이후 사실상의 제대로 된 첫 만남이었다.

모양뿐 아니라 내용도 나쁘지 않았다는 게 여권의 평가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31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예상보다 면담 시간이 길어져 두 분 모두 각자의 점심 약속을 미루며 진행됐다”며 “당정 화합을 위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회동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한 대표에게 애정 어린 조언을 했다. ‘정치는 결국 자기 사람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 사람 저 사람 폭넓게 포용해서 한 대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당직 개편과 관련해선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왔고, ‘당내 인선은 당 대표가 알아서 잘해달라. 인선이 마무리되면 관저에서 만찬을 하자’는 초청 의사도 전했다”고 밝혔다. 이에 한 대표는 “걱정 없이 잘 해내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검사 시절 함께 겪은 회고담을 나눴는데,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날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며 “윤 대통령은 한 대표의 성공을 바라며 진심 어린 덕담을 전했고, 대화의 밀도도 높았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나오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전당대회를 치르는 과정에서 여권은 공멸의 위기감이 적지 않았다. 총선 직후 한 대표가 윤 대통령의 오찬 초청을 거절하는 등 총선 과정에서 불거졌던 ‘윤·한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채 당권 경쟁이 벌어져서다. 실제로 경선 도중에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읽고 무시)’, 댓글팀 논란 등이 또 등장해 ‘윤·한 갈등’이 더욱 악화됐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한 대표가 당권을 잡은 뒤 단체 회동에 이어 3인 회동까지 곧바로 이어지자 “20년 지기 관계, 그게 윤·한 관계의 본래 모습”(대통령실 핵심 관계자)이란 말이 나왔다.

이번 회동에서 특히 눈길을 끈 건 시점이다. 김 여사에 대한 검찰 조사를 두고 특혜 논란이 제기되자 한 대표가 당선 직후 “국민 눈높이를 고려했어야 한다”고 발언을 내놓는 등 양측의 인식차가 크다는 얘기가 나오던 차였지만, 회동 당일 대통령실이 김 여사 보좌를 담당하는 제2부속실 설치를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그간 제2부속실에 미온적이던 대통령실이 회동 전 전격적으로 방향을 틀어 한 대표의 부담을 덜어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친한계에선 제2부속실 설치를 “대통령실에서 보여주는 (변화의) 사인”(박정하 당대표 비서실장)이란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요청했다’는 만남의 계기도 정무적 배경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양측의 말을 종합하면 정진석 실장이 회동을 물밑에서 조율했고, 최종 성사 뒤에 한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한 형식으로 정리됐다고 한다.

내밀한 조율이 필요했던 만큼 두 사람이 실제 만나 대화하기까지는 극소수만 회동 사실을 인지했다고 한다. 한 대표는 회동 전날인 지난달 29일 최측근에게만 “저 내일(7월 30일) 오전에 용산 들어갑니다”라고 알렸다고 한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 정점식 정책위의장이 지난달 30일 오전 '방송 4법' 마지막 법안인 한국교육방송공사법(EBS법) 개정안 표결이 시작되자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나와 로텐더홀 계단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다만 실제 검찰 시절 한몸처럼 일하던 두 사람이 화학적 재결합을 할지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도 상당하다. 실제 회동 이튿날인 31일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정점식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의 거취와 관련해 친한계 서범수 사무총장이 “대표가 임면권을 가진 당직자는 일괄 사퇴했으면 한다”며 공개 압박했다. 윤 대통령이 한 대표에게 전한 “당내 인선은 당 대표가 알아서 잘 해달라”는 당부와 “폭넓게 포용하라”는 조언을 두고 당내 해석도 미묘하게 엇갈린다.

박정하 당대표 비서실장은 윤 대통령의 발언을 “당의 일은 대표가 책임지고 잘하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날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책임지고'라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애정이 어린 조언을 한 것으로, 그 외엔 해석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한 친윤계 의원도 “포용하라는 말엔 정 의장도 포함해 품고 가라는 뜻 아니겠냐”고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앞서 김재원 최고위원은 “(정책위의장은) 임기 1년 규정이 있어 상임 전국위원회에 당헌 해석을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대표는 윤 대통령과 회동한 당일 저녁 정 비서실장, 홍철호 정무수석, 추경호 원내대표와 별도의 만남을 갖고 정책위의장 교체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고 한다.

지난달 12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75주년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서 내리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권에선 향후 김 여사 문제를 둘러싸고 윤·한 갈등의 재현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한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민심과 당심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한 대표에게 지지자들이 기대하는 건 통합과 포용보다는 선명한 변화의 메시지”라며 “두 사람은 잠시 휴전을 택한 상황에 가깝다”고 말했다.

박태인·손국희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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