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학 목사의 우보천리] 법적 책임과 도의적 책임

2024. 8. 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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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어로 ‘귀족은 의무를 진다’는 원뜻을 갖고 있다. 부와 권력은 그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수반한다는 뜻인데, 사회 지도층이나 상류층은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모범을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 말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사람을 상류층과 하류층, 귀족과 서민으로 이분법적으로 갈라놓아 마치 상류층이나 권력층을 특별한 엘리트나 되는 것처럼 인식하게 만드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 사회공동체를 움직이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나 계층은 그에 걸맞은 책임도 동시에 져야 한다는 사회계약론적 상식으로 본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맞는 말이 아닐까. 모든 리더십과 권한에는 그에 걸맞은 책임도 수반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책임은 법적 책임뿐만 아니라 도덕적 양심적 책임도 포함한다. 비록 법적으로는 아무 범법행위를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도덕적으로 부조리한 행동을 하거나, 더 나아가 양심에 따라 합당하지 않은 언행을 한 것이 드러나면 그는 자신에게 여태까지 권한과 리더십을 주었던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에 걸맞은 행동을 하게 된다. 또 법적으로는 책임질 일이 아니지만, 자신의 리더십 안에서 섬겼던 공동체가 자신의 부족한 리더십 때문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거나 사고를 만났을 때, 그에 대한 수습의 일환으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은 지극히 온당한 처사이다.

한국 역사에는 이런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이미 전통으로 형성돼 왔다. 조선 사회에서 선비의 낙향(落鄕)이 그것이다. 낙향은 말 그대로는 서울에서 살던 사람이 고향이나 시골로 이사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선비 사회에서는 이보다 더 깊은 뜻이 있었다. 선비가 조정에 벼슬을 얻어 정치사상을 갖고 뜻을 펴다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오면 벼슬을 던지고 초야에 묻혀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첫걸음을 일컬을 때 ‘낙향’한다고 말했다. 오늘날로 보면, 정치적 패배자요 실패자라 할 것이다.

하지만 선비의 낙향은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선비의 많은 낙향은 왕이 자기 뜻을 받아주지 않기에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거나, 정치세력 간의 노선싸움에서 패배했을 때 패자의 도리를 따라 승자에게 자리를 비워주기 위해 낙향하는 예도 많았다. 당연히 자신의 권한으로 했던 일에 문제가 생겨 법·정치적 책임은 없으나 선비로서 도의적 책임을 지고 권력을 내려놓고 낙향하는 일은 더욱 비일비재했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새로운 세대가 앞 세대의 문제를 평가하고 새 일을 시도할 길을 열어주었다. 그렇게 해서 공동체는 유지되고 사회는 앞으로 나갈 길을 만들게 된다.

성경 안에도 이런 정신을 보여주는 일면이 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광야에서 백성을 이끌다가 실수를 하게 된다. 광야의 백성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반석에게 명하라고 했는데, 모세는 백성에게 화를 내면서 자신의 지팡이로 반석을 치게 된다.(민 20:1~12) 이 한 번의 실수로 모세는 뼈에 저리게 그리워했던 약속의 땅 가나안을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지도자 중의 지도자요 하나님의 지도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에 걸맞은 신앙적 삶을 요청하신 것이다. 신앙적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 사회 안에는 이런 조선 선비의 낙향 정신이나 서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커녕, 지도자라면 마땅히 져야 할 기본적 도의적 책임까지도 외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정치인은 이미 얼굴에 철판을 깐 지 오래됐고, 심지어는 기독교 지도자까지 자신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법적 책임이 없으니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태도를 보여, 이를 보는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한다. 생존이 곧 도덕이요, 윤리인 세상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도의적 책임이 사라진 시대를 사는 씁쓸함이 입가를 맴돈다. 공동체를 위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털고 나오는 선비의 낙향 정신이 그리워지는 때다.

이상학 새문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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