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대 뒤처진 간첩죄 조항…대상 확대 입법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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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요원 자료 유출 간첩죄로 처벌 못 해
간첩죄 대상, 북한에서 외국으로 넓혀야
최근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에서 발생한 첩보요원 신상 유출 사건은 매우 충격적이다. 해외에서 신분을 위장해 활동하는 정보사 ‘블랙 요원’들의 상세한 개인정보와 부대원 현황이 담긴 극비 자료가 군무원 A씨(구속)를 통해 중국인(조선족)에게 넘어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외국에 나갔던 요원들이 활동을 포기하고 급히 귀국했으며, 현지에서 구축한 정보 네트워크도 상당한 타격을 받은 것으로 수사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군에서 극소수밖에 접근이 안 되는 블랙요원 자료가 일개 군무원에게 유출된 것도 황당하지만,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군 검찰이 A씨를 구속하면서 군형법상 간첩 혐의를 적용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A씨가 정보를 넘긴 사람이 중국 국적이어서다. 군형법 13조는 “적을 위하여 간첩 행위를 한 사람은 사형에 처하고, 적의 간첩을 방조한 사람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여기서 ‘적’은 북한을 의미한다. 이번 사건은 아직 북한의 개입 여부가 드러나지 않아 간첩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도식이다. 어쩔 수 없이 군 검찰은 A씨에게 간첩죄 대신 형량이 낮은 군사기밀 누설(10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혐의를 적용했다.
군형법뿐 아니라 형법 98조도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마찬가지로 ‘적국’은 북한이다. 1953년 제정된 이 조항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 북한이 아닌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는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다. 과거에 한국의 안보는 북한만 신경쓰면 되는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G8 가입이 거론될 정도로 국력이 성장했기 때문에 한국의 군사안보, 특히 신기술 기밀을 노리는 국가가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간첩죄 대상을 북한에서 외국 전체로 확대 적용하자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런 방향이 글로벌 표준이기도 하다. 이미 국회에선 2004년부터 간첩죄를 확대하는 내용의 형법·군형법 개정안이 꾸준히 발의됐지만, 번번이 본회의 통과에 실패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그제 페이스북에 “21대 국회에서 간첩법 개정안이 4건(민주당 3건, 국민의힘 1건) 발의됐는데 정작 법안 심의 과정에서 민주당이 제동을 걸어 무산됐다”며 “이번에 꼭 간첩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입장문을 통해 “당시 법무부와 법원행정처 사이의 이견이 조율되지 않아 법안 심사도 진전되지 않은 것”이라며 “한 대표의 발언은 명백한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이제 와서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이 문제는 정치공방으로 끌고 갈 사안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여야 모두 간첩죄 확대 필요성에 공감한다면 서둘러 법 개정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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