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완 논설위원이 간다] 농촌학교 탁구 꿈나무도 응원…지방소멸을 막는 기부

주정완 2024. 8. 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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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시행 2년째 고향사랑 기부제


주정완 논설위원
지난달 9일 오후 충남 청양군 정산면의 정산고 체육관. 무더운 날씨에도 중·고등부 탁구 선수 20여 명이 쉴 새 없이 탁구공을 몰아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고령화가 심각한 청양군에선 올해 들어 인구가 3만 명 선 아래로 내려갔지만 학생 탁구부는 오히려 선수가 늘고 있다. 청소년 탁구 명문으로 전국적인 소문이 나면서 충남 인근 지역은 물론 서울 등 수도권에서도 탁구 유망주들이 찾아오고 있어서다.

「 탁구 유망주 몰리는 충남 청양군
전국대회 단체전 우승 등 맹활약

학생 증가 반갑지만 예산이 고민
고향사랑 기부제로 해결책 찾아

1인 10만원까지 전액 세액공제
기부액의 30% 이내 선물도 받아

충남 청양군 여중부 탁구 선수들이 지난달 9일 정산고 체육관에서 전국대회 우승 깃발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청양군은 고향사랑 기부금으로 대회 참가비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주정완 기자

청양군 학생 탁구부 선수들은 각종 전국대회에서 눈에 띄는 성적을 내고 있다. 지난 6월 전국 남녀 중·고학생 탁구대회에서 청양군은 여자 중등부 단체전에서 우승했다. 지난 3월 전국 종별대회 우승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전국대회 정상에 올랐다. 정산초 김주혁·유선웅 선수는 지난 5월 전국소년체전에서 초등부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정산중 김민서 선수는 같은 대회 여중부 개인전 은메달을 따냈다. 그는 올해 초 같은 학교 금강은 선수와 함께 탁구 청소년대표 상비군으로 선발되기도 했다.

정산고 체육관에서 만난 김민서 선수는 “올해 초 충남 논산에서 정산중으로 전학했다. 이곳에선 탁구만 생각하면 되기 때문에 훈련 환경이 확실히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전에는 훈련량이 하루 2~3시간이었는데 이곳에선 하루 6시간씩 훈련할 수 있는 게 가장 마음에 든다. 언젠가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가는 게 꿈”이라고 덧붙였다.

“지원 없으면 대회 참가비 감당 못 해”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인 청양군에서 어린 학생이 많아지는 건 반가운 소식이지만 한편으로 고민거리도 생겼다. 결국 돈이 관건이었다. 농촌 학교의 한정된 예산으로는 갈수록 늘어나는 대회 참가비와 탁구 용품비 등을 감당할 수 없었다.

김민서양(맨 왼쪽) 등 청양군 학생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다. 주정완 기자

김돈곤 청양군수는 ‘고향사랑 기부제’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국민 누구나 자신이 사는 곳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 기부금을 내면 지방자치단체는 이 돈을 모아 주민 복리에 쓰는 제도다. 김 군수는 지난 6월 기부금 모집을 시작하면서 “정산초·중·고 탁구 꿈나무들이 국가대표의 꿈을 키울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재정 자립도가 10% 미만으로 열악한 청양군으로선 전국에서 뜻있는 사람들의 기부금을 받을 수 있는 ‘묘수’였다. 정산중·고 탁구부의 유창재 코치는 “만일 고향사랑 기부제가 아니었으면 일부 대회는 예산 부족으로 출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1년에 열 번 정도 있는 대회에 학생들을 데리고 가려면 식비·교통비 등으로 상당한 돈이 들어간다. 선수들이 쓰는 탁구 라켓의 고무 부분을 주기적으로 갈아줘야 하는데 그것도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설명했다.

기부자가 원하는 사업 선택 가능

고향사랑 기부제는 명칭에 ‘고향’이란 말이 있지만 실제로 개인적 고향이거나 특별한 연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1인당 10만원까지는 연말정산에서 전액 세액공제로 돌려받고 기부액의 30% 범위에서 지역 특산물 등 선물도 고를 수 있다. 예컨대 세액공제 한도인 10만원을 기부한다면 전액 환급도 받고 3만원어치 선물도 챙기는 셈이다. 납세자 입장에선 ‘꿩(세액공제) 먹고 알(선물) 먹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10만원 넘는 금액을 기부할 수도 있다. 이 경우 10만원까지는 전액, 10만원 초과액은 16.5%를 세액공제로 돌려받는다.

지난해 처음 시행한 이 제도는 올해 들어 한 단계 진화했다. 지난해 고향사랑 기부금으로 들어온 돈을 어디에 쓸지는 전적으로 지자체 재량이었다. 올해는 지자체가 제시한 각종 사업 중에서 기부자가 마음에 드는 사업을 골라 기부하는 제도(지정 기부)를 도입했다. 기부자로선 자신이 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확실히 알 수 있어서 좋고, 지자체 입장에선 지역 현안 사업을 내세워 기부금을 모으기에 유리한 방법이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기부금 사용을 지자체 재량에 맡기는 방식(일반 기부)도 가능하다.

행안부가 운영하는 모금 전용 사이트인 ‘고향사랑e음’(ilovego hyang.go.kr)에 따르면 31일 기준으로 10개 지자체가 15개 사업에서 지정 기부금을 모집 중이다. 모금 목표액은 최저 2000만원(소아암 환자 의료용 가발 지원, 서울 은평구)부터 최고 11억5000만원(발달 장애 청소년 야구단 지원, 광주광역시 동구)까지 다양하다.

아동·청소년 분야에선 초·중·고 탁구부 지원(청양군, 목표액 5000만원)과 함께 ▶청소년 관악합주단 후원(경남 산청군, 3000만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구인(전남 곡성군, 2억5000만원) 등이 기부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 외에 ▶노인 돌봄을 위한 마을 빨래방 프로젝트(전남 곡성군, 1억8660만원) ▶화재 피해를 본 전통시장 재건축(충남 서천군, 5억원) ▶취약계층 목욕쿠폰 지원 사업(경남 하동군, 4000만원) 등도 있다. 기부를 원하는 사람은 전용 사이트에서 기부할 사업을 고르고 금액을 입력한 뒤 계좌 이체나 신용카드 결제로 처리할 수 있다.

진도율 1위 청양군, 2위 은평구
지정 기부 대상 15개 가운데 모금 진도율이 가장 빠른 건 청양군의 초·중·고 탁구부 지원 사업이다. 31일 오후 4시 기준으로 목표액의 75%를 달성했다. 지난 8주일 동안 기부자 127명이 참여해 3740만원을 모았다. 한재선 청양군 고향사랑팀장은 “고향사랑 기부제로 원하는 사람이 소액이라도 쉽게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는 게 일반 예산으로 지원하는 것보다 훨씬 뜻깊은 일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진도율 2위는 은평구의 소아암 환자 의료용 가발 지원 사업이다. 97명에게서 목표액의 34%(683만원)를 모금했다. 3위는 전남 영암군의 공공산후조리원 의료기기 구매 사업으로 목표액의 18%(885만원)를 달성했다.

청양군은 초·중·고 탁구팀을 일회성으로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국내 청소년 탁구의 중심으로 육성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탁구 유학을 위해 찾아오는 학생과 학부모가 많아질수록 지역사회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계산이다. 한 팀장은 “최근 5년간 40명가량이 탁구를 배우기 위해 청양군으로 전학을 왔다. 내년 말을 목표로 탁구 실업팀 창단을 추진하고 탁구 전용구장 건립도 계획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청양군은 학생 선수들이 안정적으로 숙식을 해결할 수 있게 옛 보건지소 건물을 전용 숙소로 리모델링하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유 코치는 “남녀 학생 모두 초·중·고 과정을 연계해 12년간 탁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전국에서 청양군이 유일하다. 그동안 주택 등 기반시설이 부족한 게 고민이었는데 전용 숙소가 생기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일본 ‘고향납세’ 본뜬 제도, 세액공제 확대가 관건

「 한국의 고향사랑 기부제는 일본의 ‘후루사토(고향) 납세’를 본뜬 제도다. 세부 내용은 차이가 있지만 기부자에 대한 세액공제와 선물(답례품) 제공 등 기본 구조는 비슷하다. 일본은 2008년 제도 도입 이후 올해로 시행 17년째를 맞았다. 한국은 시행 2년째로 아직 초기 단계다.

제도의 활성화를 보여주는 모금 실적에선 일본과 한국이 현저한 격차를 보인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2022회계연도(2022년 4월~2023년 3월) 기준 모금액은 9654억엔(약 8조7000억원), 기부 건수는 5184만 건이다. 한국 행정안전부가 집계한 지난해 모금액은 650억원, 기부 건수는 52만 건에 그쳤다. 일본이 한국보다 금액으로는 130배, 건수로는 100배가량 많았다. 두 나라의 경제 규모나 인구수를 고려하더라도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지자체 한 곳당 평균 모금액은 2억6700만원이었다. 아예 없는 것보단 낫겠지만 실질적으로 지자체 재정에 도움을 주기엔 부족한 금액이다.

농협경제연구소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은 고향사랑 기부제를 활성화하려면 세액공제 한도를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해 국내 모금 실적을 보면 10만원짜리 기부가 전체의 83%를 차지했다. 세액공제 한도에 맞춰 기부액을 결정하는 ‘문턱 효과’가 컸다는 의미다. 일본도 제도 시행 초기에는 실적이 부진했지만 2015년 세액공제 한도를 대폭 확대한 이후 모금액이 급증한 상황이다.

최영운 농협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고향사랑 기부제 성과와 개선과제’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일본 고향납세의 경우 본인부담액 2000엔(약 1만8000원)을 제외한 전액이 일정 상한까지 세액공제가 가능하다”며 “(한국은) 10만원을 초과해 기부할 경우 개인 부담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단기적인 대안으로는 농어촌 군 지역에 한해 세액공제 한도를 두 배 이상으로 높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최 연구위원은 “농어촌 지역 기부 시 세제 혜택을 높인다면 소멸위기에 처한 농어촌 지역을 살리는데 고향사랑 기부금이 더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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