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건설기술인, 장인 정신과 혁신 기술로 리셋을
조선 시대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계급사회 이데올로기가 지배했지만, 궁궐·사찰 등을 짓는 장인(匠人)의 지위는 상당히 높았다. 그들 중에서도 설계부터 감독과 감리를 맡아 건설 공사를 총지휘한 도편수(都片手)의 지위가 특히 높았다. 세종대왕 재위 30년이던 1448년 숭례문 수리 공사를 담당한 도편수는 정5품, 1479년 개축 공사를 담당한 도편수는 정3품 당하관(堂下官) 직급을 받았다. ‘도편수는 정승 감이어야 한다’는 옛말이 알려주듯 역할과 위상이 아주 높았다. 천 년 후를 내다본 그들의 가슴은 자부심으로 가득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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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만 명 돌파, 직능단체 중 최대
안전문제 등 풀어야 할 숙제 많아
시공 기본 지키고 룰도 준수해야
」
시대가 변하면서 이들의 명칭이 ‘건설기술인’으로 바뀌었을 뿐 역할과 마음가짐은 그대로라 생각한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토 위에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건설기술인들은 꺾이지 않는 의지를 보여줬다. 극한의 밀림과 사막, 동토에까지 활동의 무대를 넓히면서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일궜다.
이런 헌신적 노력이 밑바탕이 돼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 어느 나라보다 편리한 인프라를 갖췄고, 세계 곳곳에 가장 높은 빌딩과 가장 긴 교량을 건설했다. 마침내 글로벌 건설 강국 반열에 올랐다.
한국건설기술인협회 회원이 지난 4월 100만 명을 돌파했다. 국내 건설 관련 단체 중 최대 규모이고, 직능단체 중에서도 최대다. 하지만 건설산업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과 건설기술인들의 처우는 규모와 역할에 비해 아직 부족하다. ‘3D산업’이란 인식에다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 젊은이들은 금융과 정보기술(IT) 등 다른 산업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천 년을 내다보는 건설’이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오늘날 우리 건설기술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미래의 콘텐트 산업을 전망하며 ‘콘고지신(Contents+溫故知新)’이라는 새 키워드를 제시했다. 과거의 콘텐트를 활용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전략이다. 1990년대 인기였던 만화 ‘슬램덩크’가 극장용으로 개봉돼 신드롬을 일으킨 것이 대표적 사례다.
‘철근 누락 순살 아파트’와 ‘짬짜미 감리 담합’ 등 여전히 많은 숙제를 안고 있는 우리 건설에 새로운 ‘콘고지신(Construction+溫故知新)’의 바람을 제안하고 싶다. 그 바람은 옛 선조들의 장인 정신과 지혜, 어렵사리 배운 기술로 조국 근대화에 헌신해온 선배 건설기술인들의 강인한 의지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 위에 스마트 기술 혁신과 기술 중심의 생산 시스템, 젊은 인재들이 일하고 싶은 산업 환경 조성, 국민의 신뢰를 받는 건설문화 등을 결합해 새롭게 재무장해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건설산업의 재무장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스마트 건설기술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건설산업의 생산성을 강화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스마트 건설로 반드시 리셋해야 한다. 그 옛날 선배 기술인들이 주저하지 않고 세계로 나갔던 것처럼 지금의 건설기술인들도 인공지능(AI)·빅데이터·정보통신기술(ICT)이 결합한 디지털 역량을 강화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통합형 엔지니어로 성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일한 만큼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산업, 워라밸이 가능한 산업’이 될 수 있도록 산업환경을 조성해 미래 성장동력인 젊은 인재들이 건설 분야에 관심을 갖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 이를 위해 임금 수준 현실화, 합리적 대가 산정, 적정 근무시간 보장 등 관련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불합리한 관행을 타파하고 수직적인 조직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건설 외길’이라고 할 정도로 45년가량을 건설분야에서 일해온 필자는 건설산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건설산업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우수한 인재 유입을 저해하고, 건설기술인들의 정당한 권익 보장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기본을 충실히 지켜 시공하고, 공정한 룰을 준수해 국민의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제대로 평가받아 우리의 가치와 역할을 다시 인정받길 바란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고, 어느 한 단체가 하기엔 버거운 일이다. 우리 건설산업의 미래를 위해 꼭 가야 할 길이기에 100만 회원은 국민과 함께 ‘콘고지신의 길’을 가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윤영구 한국건설기술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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