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록의 은퇴와 투자] 최고의 상속자산은 넉넉하게 준비된 노후

2024. 8. 1.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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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노후 관련 강의를 가면 은퇴할 때 몇억원의 자산이 필요하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곤혹스러운 질문이다. 이를 계산할 때 물가상승률, 수명, 자산 수익률 등을 사용한다. 그런데 40년 동안 물가상승률이 어떨지, 내 수명은 어떨지, 자산 수익률이 어떨지 알기 어렵다. 그런데 불확실한 이 세 가지 변수만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중대 질병에 걸릴지 금융사기를 당할지 누가 알겠는가? 더 무서운 건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일을 당하는 경우다.

「 삶의 결정적 리스크 예측 불가
노년엔 보유재산이 자신의 가치
일찍 물려주지 말고 보유해야
돈·일·관계·건강 함께 준비 필요

김지윤 기자

1987년 10월 19일 미국의 주식가격이 하루에 25% 빠졌다. 주식수익률이 정규분포를 이룬다고 하면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0.00000…14로 0이 106개가 있다. 이건 ‘0’이라 해도 된다. 그런데 투자시장에서는 이런 일이 가끔 일어난다. 개인의 삶도 다르지 않다. 평생을 교직에서 봉사하고 은퇴했는데 연금과 집도 다 날리고 절에 가서 살 방 한 칸만 내달라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이처럼 삶의 가장 큰 리스크는 내 머릿속에 있지도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예상하지 못하니까 무엇을 얼마 준비해야 할지도 막연하다.

세상의 인구가 많아지고 세상의 규모가 커지면서 희박한 확률도 이제는 자주 일어나게 되었다. 글로벌 경제가 80억명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충격적인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코로나19도 이런 예에 속한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하지 않는가. 예상치도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특히 충격을 받으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노후에는?

수학자이자 철학자 파스칼은 있는지 없는지 오리무중인 신을 믿을 것인지에 대해 다음의 해법을 내놓았다. 이를 ‘파스칼의 내기(Pascal’s Wager)’라 부른다. 파스칼은 신을 믿을지 안 믿을지 둘 중 하나를 택하고, 죽고 나서 실제로 신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의 보상을 비교해 보라고 한다. 네 가지 경우가 나온다. ①신을 믿었는데 실제 신이 있어 천국이 있는 경우 ②신을 믿었는데 죽고 보니 신이 없는 경우, 그리고 ③신을 믿지 않았는데 죽고 보니 신이 있는 경우 ④신을 믿지 않았는데 신이 없는 경우다. 첫 번째는 ’천국 대박‘이고 세 번째는 ‘지옥 쪽박’이다. 나머지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 이렇게 보면 답은 뻔하다. 파스칼은 천국과 지옥이 있을지 없을지 고민해봐야 알 수 없다고 보았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삶의 예측하지 못할 사건에 대해 그냥 ‘넉넉하게 준비’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노후 준비도 그러하다. 내 삶의 결정적인 리스크는 예측이 어렵다. 계산해서 준비해 놓아도 하나의 사건이 준비한 삶 모두를 허물어버릴 수 있다. 일본의 노후파산자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하나같이 자신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한다. 성실하게 살고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노후 준비는 적정하다고 생각되는 것 이상으로 넉넉하게 준비해 두어야 한다.

60대까지만 돈이 필요하고 그 이후에는 쓸 일이 없다고 해도 넉넉하게 준비하자. 미래에는 노후의 돈이 당신의 관절을 새롭게 만들어줄지 모른다. 이만하면 충분하겠지 생각하고 일찍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줄 생각도 말자. 노년에는 보유 재산이 자신의 가치이므로 이를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 축적해 둔 재산을 양도하면 자신의 가치도 사라지고 자신의 가치가 없으면 주체성을 잃고 의존적이 되니 유의해야 할 일이다.

재산의 양도에 대한 우려는 최근의 ‘2024년 세법 개정안’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자녀 공제를 1인 5천만원에서 5억원으로 확대했다. 개정안대로 국회를 통과한다면 자녀가 2명이고 여기에 기본공제와 배우자 공제까지 더하면 상속재산액수가 17억원이 넘지 않으면 상속세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배우자 공제가 커지면 면세점은 더 높아질 수 있다. 이제 상속세 절세하겠다고 자녀에게 미리 재산을 증여할 필요 없다. 죽을 때까지 보유하면서 본인의 노후 준비에 집중하는 게 좋다.

또 하나. 넉넉하다는 것은 돈의 넉넉함에 한정되지 않는다. 돈만 잘 준비된 노후는 넉넉하게 준비된 노후가 아니다. 괴테는 ‘천국에 혼자 살게 하는 것보다 더 큰 형벌은 없다’고 했다. 일, 관계, 건강 등이 같이 준비되어야 한다. 다양하게 넉넉함이 갖추어져야 예기치 않은 변화에 삶이 흔들리지 않는다.

백세 시대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자녀 세대는 부모 세대의 30~40년에 걸친 긴 노후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직장인들은 결혼 상대자에게 부모님 노후 준비가 잘 되어 있는지 물어본다고 한다. 상속재산도 중요하지만 ‘부모의 잘 준비된 노후’가 자녀에게 물려줄 최고의 자산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백세 시대는 넉넉하게 준비된 노후가 최고의 상속자산이다.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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