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티메프, 전금법의 기억
티몬ㆍ위메프(이하 티메프)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여느 대형사고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정부 책임론이 빠지지 않는다. 금융당국은 티메프의 부실한 재무구조를 알면서도 입법 미비 등을 이유로 사실상 방치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큐텐의 무리한 인수합병을 승인하고, 미정산 문제 발생 초기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게 책임론의 골자다.
이런 책임론에 기시감이 드는 건 ‘환불 대란’이 벌어졌던 머지포인트의 기억 때문이다. 2021년 8월 머지포인트가 소비자에게 1000억원 대 피해를 입혔을 때도 금융당국의 방관과 관련 입법의 미비가 원인으로 꼽혔다.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걸 정부도 모르진 않았다. 머지포인트 같이 고객이 낸 선불충전금 외부 예치를 의무화해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안이 이미 국회에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비자 보호라는 대의에도 해당 법안 처리가 밀렸던 건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 간의 샅바싸움 때문이었다. 2021년 초에는 법 개정안을 놓고 “빅브라더법”(이주열 당시 한은 총재)과 “(한은에) 화가 난다”(은성수 당시 금융위원장)가 서로 맞붙는 일까지 벌어졌다. 빅테크 내부거래에 대한 외부청산 의무화 등 쟁점도 많았지만, 한은과 금융위 간 ‘밥그릇 싸움’이 갈등의 핵심이었다. “금융결제원장 자리가 이 밥그릇 싸움의 요체라는 시각이 있다”(윤희숙 당시 국민의힘 의원)는 지적도 있었다. 양측의 갈등이 조율된 후 전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건 2023년 8월이었다. 이마저도 머지포인트 사태로 인해 법 개정에 속도를 낸 결과였다.
이미 다 지나간 기억을 다시 꺼내는 건 티메프 사태 이후 각종 입법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정산 주기를 의무화하고 정산대금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등의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회 역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법안 통과까지는 지난한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규제만 대폭 늘렸다 전자상거래 분야의 혁신이 발목 잡힐 수 있다는 우려부터 조율해야 할 문제가 많다. 다만 이번에는 부처 간 밥그릇 싸움 등에 시간을 보내다 법 전체가 발목이 잡혀 실기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당장 필요한 내용부터 우선 처리하는 ‘핀포인트’ 개정도 고민했으면 좋겠다.
금융감독원 이세훈 수석부원장은 “온라인 부분이 최근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다 보니 전체적으로 감독 규율 체계가 업계 성장 속도를 못 따라가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언제나 한발 늦을 수밖에 없고 빈틈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게 감독이고 규율이라지만, 문제를 알고서도 늦게 고치는 건 정말 문제 아닌가.
안효성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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