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폭탄 땐 ‘트럼플레이션’ 쓰나미
대미 흑자 車·배터리 격랑 속으로
‘트럼프노믹스 2.0’에 대한 관심이 높다. 최근 공화당 전당대회 대선 후보 수락 연설과 언론 인터뷰 등에서 그는 보편적 관세 부과와 감세 등을 뼈대로 한 기본 구상을 밝혔다. 우리 산업계는 긴장감이 높아졌다. 반도체·전기차 등 우리 주력 산업을 콕 집어 비판했을 뿐 아니라 인플레이션감축법(IRA)·반도체 칩스법과 관련해서 축소·폐지 가능성도 언급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이 현실화할 경우 미국 중심 대외·산업·통상 정책 등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세계 경제는 또 한 번 격랑 속으로 빠져들 전망이다. 트럼프 경제 정책은 그 효과가 서로 상충되는 면이 적지 않아 정책 불확실성을 확대할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정책 효과 충돌 우려도
트럼프 경제 정책은 크게 4개 분야로 압축된다. 재정·조세 정책으로는 법인세·소득세 감세를 추진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내년 말 만료되는 ‘트럼프 감세(개인소득세 감면)’ 연장을 넘어 추가로 확대하겠다는 계획뿐 아니라 팁에 대한 면세 추진도 재확인했다. 낮아진 세수는 관세 부과나 보조금 축소로 상쇄할 계획이다.
통화 정책 관련해 금리 인하·물가 안정을 천명했지만 대선 후보 수락 연설 등에서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는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실적으로 재정지출 여력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 부양을 위해서는 금리 인하가 그나마 가능한 옵션”이라며 “금리 인하를 하려면 물가를 안정시켜야 하고 특히 에너지 가격 안정을 원할 것”이라 봤다.
무역 정책은 가장 논쟁이 뜨거운 이슈다. 트럼프는 보편적 관세로 모든 수입품에 관세 10%를 부과하고 중국에 관세 60%를 매기겠다고 벼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후보 수락 연설에서 통상 정책 관련, 고율 관세와 함께 ‘메이드 인 아메리카(미국 제조)’ 방침을 강조했다. 그는 자동차 산업과 관련, 중국의 멕시코 공장 건립을 거론하며 “우리는 이를 되돌릴 것이다. 만약 동의하지 않으면 모든 자동차에 100~20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며 미국에서 판매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산업 정책에서는 한국 주력 산업이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간다. 트럼프는 IRA·반도체 칩스법 등 바이든 정부 업적을 대거 축소·폐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후보 수락 연설에서 “새로운 녹색 사기(New Green Scam)”라며 바이든 정부 대표 입법 성과인 IRA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글로벌 공급망 정책도 수술대에 오른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중국 ‘디리스킹’ 기조 아래 동맹국 중심 공급망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에 초점을 뒀다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국 내 공급망 ‘온쇼어링(on-shoring)’에 무게를 둔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앞세운 주요 정책은 서로 상충되는 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을 두고 의구심이 적지 않다.
관세 인상은 종국에는 자국 소비자물가 인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다수 전문가 지적이다. 중국산 수입품에 60%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하자. 이 관세는 중국 상품을 수입하는 상당수 미국 기업이 일차적으로 부담한다. 미국 기업 입장에선 가격 인상으로 비용 일부를 자국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밖에 없다. 결국 고율 관세 부과에 따른 수입품 가격 인상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미국 소비자는 이전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트럼플레이션(트럼프+인플레이션)’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재차 커질 경우 저금리 공약은 무위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감세-금리 인하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가 세금을 감면해주고 재정지출을 늘리려면 국채를 더 찍어야 한다. 시장에 국채 공급이 늘면 채권 가격은 떨어지고 금리는 오른다. 이는 시장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기업 투자와 민간 소비가 위축되는 구축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또, 미국 금리 상승은 달러 수요 증가로 이어져 강달러를 부추길 수 있다. 결국 감세, 저금리, 저물가 그리고 약달러 등을 동시에 달성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진단이다.
2차전지·車·반도체 촉각
국내 산업계는 미국 대선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우리 기업이 대미 투자를 늘리는 가운데, 트럼프가 강도 높은 자국우선주의 발언을 쏟아내고 있어서다.
트럼프 당선 시 우리 대미 무역 흑자가 ‘부메랑’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대미 무역수지(수출-수입)는 287억달러(약 40조원) 흑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 기업 입장에선 관세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무관세 협정 체결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하려 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미국이 한국에 보편 관세 10%를 부과하면 연간 기준 대미 수출이 152억달러(약 21조원) 줄어들 것”으로 추정한다. 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덕분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를 무시하고 한국에 보편 관세 10%를 부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미 대선 풍향 민감도가 상대적으로 큰 업종은 2차전지와 자동차 산업이다. 반도체 산업은 미 대선 불확실성에 따른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것이라는 데 힘이 실린다.
미 대선 결과에 따라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평가되는 정책은 IRA다. 트럼프 경제 정책의 뼈대는 저렴한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산업을 되살리고 이를 통한 미국 제조업 경쟁력 강화다. 바이든 행정부 정책인 IRA를 ‘그린 사기’라고 원색적으로 비판하며 법안을 폐지하겠다며 벼른다.
다만, 폐지보다 축소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IRA 폐지는 입법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주별 이해관계가 다르고 공화당이 압도적 다수당이 되지 않는 이상 현실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단 관측이다. 결국 대통령 고유권한인 행정명령으로 IRA 효과를 축소시킬 것으로 관측된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 경우 우리 기업이 미래 이익을 기대하고 단행한 대규모 투자는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 분석했다.
현대차·기아도 미 대선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지난해 대미 자동차 산업(완성차·전기차·부품) 수출은 453억달러로 4년 전(223억달러)보다 2배 늘었다. 김경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이 보편적 관세 대상 국가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미국에 의존하는 수출 구조를 다변화하고, 미국 수입 시장에서 수출·현지 생산을 적정 수준으로 조절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게 산업연구원 진단이다.
반도체 산업 지원은 트럼프 2기 정부가 현실화하더라도 정책 연속성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칩스법으로 전 세계 설비 투자가 미국에 집중되고 이는 미국 경제의 소비·고용 확대라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미국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이 창출하는 투자와 고용은 긴축 충격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는 만큼, 지역과 정당을 초월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만 문제를 언급하며 “그들(대만)이 우리 반도체 사업의 약 100%를 가져갔다”고 말한 것에 비춰, 칩스법에 따른 지원금을 미국 기업에 몰아줄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각은 있다. IBK경제연구소는 “미국 기업과 그 외 기업에 대한 보조금 격차가 확대될 여지가 있다”며 “한국 기업의 파운드리 점유율이 하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0호 (2024.07.31~2024.08.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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