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정책은 ‘애니씽 벗 바이든’
2차전지·전기차·빅테크 저주 내릴라
전 세계 금융 시장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지난 2021년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직후 트럼프 흔적을 지우고자 ‘애니씽 벗 트럼프(Anyting But Trump)’를 강조했던 만큼, 올해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하면 반대로 바이든 정부 정책을 뒤엎을 ‘애니씽 벗 바이든(Anything But Biden)’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한마디에 美 기술주 ‘출렁’
트럼프 피해주의 대표적인 섹터는 ‘친환경’이다. 트럼프는 재집권하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바이든의 기후 정책을 폐지할 것이라고 줄곧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태양광 등 친환경에너지 관련주는 트럼프가 첫 대선 토론에서 우세하다는 평가를 받자 일제히 하락세를 나타냈다. 7월 3일(종가 기준) 뉴욕 증시에선 선노바에너지(5.56달러)와 선파워(2.68달러)가 6월 27일 대비 각각 14%, 11% 내려앉으며 10%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퍼스트솔라(231달러), 인페이즈에너지(99달러), 넥스트에라에너지(71달러)도 각각 7%, 5%, 2%대 하락하며 부진한 주가 흐름을 나타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트럼프 정책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분야는 친환경으로 트럼프는 IRA에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며 “공화당 하원은 이미 전기차, 친환경에너지에 대한 보조금 지급, 메탄가스 배출 규제 등을 되돌리기 위한 법안을 제출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한 빅테크주와 전기차 관련 이차전지주도 트럼프 언행 하나하나에 출렁이는 트럼프 피해주다. 지난 7월 16일(현지 시간) 트럼프가 대만 반도체 회사 TSMC를 견제하는 발언을 내놓자 이튿날 미국 엔비디아는 6.6% 떨어졌다. 브로드컴(-7.9%), ASML홀딩(-12.7%), AMD(-10.2%), 퀄컴(-8.6%) 등 다른 기술주도 함께 큰 폭의 하락세를 나타냈다. 주요 반도체 종목이 모인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도 6.8% 하락하고 시가총액은 4960억달러 증발했다. 특히 이차전지주는 IRA 폐기 우려와 “취임 첫날 전기차 의무화를 폐지하겠다”는 트럼프 발언에 따라 투자 심리가 얼어붙었다는 평가다.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추려는 트럼프 정책이 일관적이기 때문이다. 과거 트럼프 1기 때도 연비 규제의 사실상 폐지 효과로 전기차 판매량이 줄어든 바 있다. 2018년 81% 성장세를 나타냈던 미국 전기차 판매량은 2019년(-12%), 2020년(-4%) 2년간 역성장했다.
바이든 사퇴에 韓 기업 적잖이 곤혹
보조금 의존 신재생에너지주 ‘타격’
국내 증시에서는 트럼프 수혜주 대비 피해주가 더 많을 듯 보인다.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라는 기본 방향성에 따라 반도체, 자동차, 이차전지 등 한국 주요 산업이 악재에 빠질 수 있어서다. 하이투자증권의 ‘트럼프 2기의 성격과 각 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재집권 시 반도체 과학법에 근거한 보조금 지급이 축소 또는 폐지될 수 있다. 여기에 트럼프 1기 정부 당시 겪은 관세 인상, 더 나아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논란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불거진다. 수출 중심의 한국 산업 특성상 트럼프 재집권이 불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크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1기 정부 당시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 규모는 2017년 179억달러에서 2019년 114억달러까지 하락한 바 있다.
지난 7월 22일 증시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에 트럼프 대세론이 이어지며 국내 트럼프 피해주가 요동쳤다. 반도체 대장주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1.7%, 2.2% 떨어졌고, 한미반도체는 3.7% 하락했다.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는 4거래일 연속 하락 마감하며 주가가 12%, 14%씩 빠졌다. 전기차 수요 둔화에 침체기를 겪고 있는 이차전지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배터리 대장주인 LG에너지솔루션이 4.9% 빠졌고, 삼성SDI,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비엠, 에코프로 등 이차전지주가 일제히 하락했다.
국내 신재생에너지주도 트럼프 피해주로 꼽힌다. 따라서 트럼프 피격 사건 이후 국내 신재생에너지주 역시 하락세를 면하지 못했다. 특히 한화솔루션 등 국내 신재생에너지 기업들은 미국 시장 비중이 높은 데다 IRA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다.
단, 친환경 정책을 되돌리기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문남중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산업 규제 정책의 완화 내지 폐지를 공약하고 있다”며 “물론 의회의 정치적 지형과 고용 증진 필요성을 포함한 경제 상황 등 현실 여건상 이런 공약을 모두 실행에 옮기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지지율 박빙…美 대선 시계제로
증권가에서는 해리스가 바이든 정부 인사인 만큼, 바이든 정책을 칭하는 ‘바이드노믹스’를 이어간다는 관측이 나온다. 해리스와 민주당은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환경 규제를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정책이다. 따라서 해리스 당선 가능성이 커질수록 태양광·풍력 관련 기업 혹은 탄소중립 관련 기업 주가가 부양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의 전기차 보조금 관련 정책이 지속된다면 전기차·배터리 관련주 역시 수혜를 입을 것으로 관측된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민주당에서 대통령이 나온다면, 현재 민주당 수혜를 받고 있는 반도체, 전기차, 이차전지, 신재생에너지 등이 긍정적인 움직임을 보일 전망”이라며 “트럼프 수혜주가 해리스 피해주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대선 불확실성이 커지자 국내 투자자들은 해리스 부통령 관련 종목인 ‘해리스 특징주’ 베팅에 나서는 분위기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7월 24일 유가증권 시장에서 현대약품은 전 거래일보다 4.28% 오른 5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한때 20% 오른 5770원에 거래되며 52주 신고가를 경신하기도 했다. 해리스가 낙태권을 지지한다는 소식에 영국 제약사 라인파마인터내셔널과 인공 임신중절 의약품 ‘미프지미소’의 국내 판권,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한 현대약품에 관심이 쏠린 것으로 해석된다.
증권가에서는 미국 대선 결과가 합리적으로 예측되기 전까지는 철저히 리스크 관리 차원의 투자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승혁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향후 미국 대선은 민주당의 전당대회, 2차 TV 토론 등 굵직한 이벤트가 예정돼 있는 만큼 아직까지 대선 결과를 속단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단, 해리스가 당선될 경우 현 미국 민주당 기존 정책의 연속성이 보장될 수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주식 시장의 불확실성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라고 평가했다.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0호 (2024.07.31~2024.08.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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