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정보로 시민에 유익함 전달…멜버른이 도시숲을 넓히는 방법
도시가 달군 팬처럼 뜨겁다. 여름은 이제 시작인데, 낮 기온은 30도를 웃돈 지 오래다. 그래도 거리에 나무가 있어 사람들은 잠시 숨을 돌린다. 한여름 가로수는 도시의 휴식처다. 여러 겹의 가지가 촘촘히 햇빛을 막고, 시원한 공기를 내뿜어 주변을 쾌적하게 다. 사람을 걷게 하고, 폭염과 폭우가 주는 충격을 완화한다.
제주도가 나무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도민·기업과 손 잡는 방식으로 녹지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국민일보는 달라진 제주도 도시숲 정책을 취재했다. 우리보다 앞서 기후 변화를 경험한 호주 멜버른의 고민과 이 도시의 녹지정책도 함께 살펴본다.
호주 멜버른시의 도시숲 전략(Urban Forest Strategy, 2012~2032)이 눈길을 끄는 것은 정책 목표가 분명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수립됐다는 점이다. 멜버른시는 2009년 최악의 자연재해를 경험한 후 도시숲 전략을 새로 작성하면서 ‘2040년까지 공공영역의 캐노피(나무 그늘)를 40%까지 확대하겠다’는 실용적인 목표를 내걸었다.
전략 마련에 앞서 진단에 착수했다. 도시 나무의 수종과 수령을 파악해 종다양성을 조사하고, 나무들의 남은 건강 수명을 예측했다.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해 도시 지표면 온도를 측정하고, 거리별 주민 연령 분포와 개발 계획 유무를 파악했다.
이 결과를 토대로 가장 열 온도가 높은 거리부터, 열에 취약한 인구가 많거나 나무 그늘이 적은 지역, 향후 개발 계획이 없는 지역(개발이 시작되면 나무를 뽑아야 하므로) 순으로 도시숲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캐노피를 확장하기 위해 멜버른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큰 나무를 심는 일’이었다. 시는 ‘공공영역 캐노피 40%’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년 3000그루의 나무를 심기로 했는데, 큰 나무를 심기 위해서는 길이 넓어야 하고 전신주 같은 지장물이 적어야 했다. 어디에 나무를 심어야 할지 결정하는 일이 중요했다.
시는 종합적인 여건을 고려해 거리별 적합 수종과 식재 방식을 담은 지침을 발간했다. 지침은 멜버른 10개 행정구역에 대해 각각의 여건을 반영해 별도로 제작됐다. 지침 적용 기간은 2014~2024년, 중간에 시장이 바뀌거나 담당 직원이 교체되더라도 업무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시민을 움직여라
멜버른시가 도시숲 정책을 추진하며 공들인 또 다른 부분은 ‘시민 참여’다. 시의 68%가 사유지다. 정책 초기에는 도로나 공원 같은 공공영역에 나무를 늘려가는 방식으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지만, 결국 사유지가 바뀌지 않으면 도시숲 확대는 한계에 봉착한다.
문제는 당위성을 호소하는 방식으로는 개인 부동산에 녹지를 늘리도록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2009년 ‘검은 토요일’(빅토리아주 산불이 시작된 날)의 악몽을 기억하는 것과 다른 문제였다. 시민들은 도시의 나무를 좋아했지만, 내 건물의 옥상에 정원을 만드는 일은 어렵고 당장 필요하지 않은 일처럼 느꼈다.
시는 동참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내보내는 대신 시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고, 녹지를 확대했을 때 어떤 유익함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 나가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녹색 건물에 대한 안내서 2종(‘Growing Green Guide’ ‘Valuing Green Guide’)을 발간했다.
이 중 ‘녹색성장가이드(Growing Green Guide)’는 멜버른시와 멜버른대학교, 빅토리아주정부가 함께 만든 호주 최초의 종합적인 도심 건축물 녹화 지침이다. 정부기관 도시계획 담당자나 건축가, 주택 소유자가 건축물에 녹색 인프라를 도입할 때 알아야 할 구체적인 기술적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가이드에는 녹화 작업을 진행하기 전 조사해야 할 사항과 기후 여건, 건물 녹화에 적합한 수종 선택, 유지 관리에 용이한 설계, 배수 및 관개, 비용 산정, 관련 규제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건물을 녹화했을 때 건물주가 얻을 수 있는 이익도 과학적 근거와 함께 제시했다.
시는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녹색 건축 안내서를 발간한 후에는 건물 녹색화에 적절한 공간별 식물 목록을 만들었다.
시는 일정 면적 이상의 건축물에 대해 호주 녹색건물협의회에서 정한 에너지 효율 등급을 충족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동시에 개발자들이 친환경 설계를 벤치마킹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설계 표준과 평가 도구(Green Factor)를 개발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보조금 지원도 시민 참여를 늘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시는 도시숲 기금을 통해 매년 도시 내 사유지의 새로운 녹화 프로젝트를 지원한다. 단, 공공에 미치는 영향이 큰 계획에 가점을 준다.
혁신적인 정보 제공
멜버른시가 도시숲 확대를 위해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은 솔직하고, 혁신적이다.
시는 2017년 4개 골목에서 시범 녹화 사업을 시작하고, 6년 뒤 프로젝트를 평가했다. 결과 보고서에는 4개 골목길을 선정한 이유와 결과, 각 사업지에 설치된 식물명, 관개 종류 및 운용 방식이 자세하게 기록됐다.
멜버른에는 도심에만 200개가 넘는 골목길이 있다. 면적은 9㏊가 넘는다. 시는 골목길 녹화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노하우를 얻기 위해 해당 프로젝트를 실시했고, 평가를 통해 3가지 모델을 도출했다. 결과는 자료로 정리했다. 누구나 시청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다.
아울러 시는 골몰길 녹화사업의 일환으로, 도심지 골목길의 녹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세계 최초의 대화형 지도를 개발해 공개했다. 햇빛을 받는 양, 바람에 노출되는 정도, 물리적 특성을 기준으로 골목길을 4개 등급으로 나눴다. 시민들은 지도를 통해 동네 골목길의 녹화 가능성을 알 수 있다. 시가 대상지를 선정할 때에도 과학적인 근거로 이용된다.
‘도시숲 비주얼(Urban Forest Visual)’을 통해서는 도시숲 정책에 대해 시민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있다. 도시숲 비주얼은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지도를 확대해 나무를 클릭하면 수령과 수종을 알 수 있으며, 개별 나무에 이메일을 발송할 수 있다. 시민이 보낸 이메일은 행정기관이 관리한다. 향후 10년 동안 시가 추진할 식재 사업을 거리별로 알 수 있고, 각 사업에 대해 의견을 보낼 수 있다. 도시숲 비주얼 사이트에선 여러 도시숲 사업을 통해 현재 시가 달성한 캐노피 비율도 그래프로 확인할 수 있다.
나무 아래 평온한 사람들
지난 5월 늦가을에 접어든 피츠로이 공원은 평화로웠다. 벤치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여성은 인근 안경점에서 일하는 20대 검안사 스테파니(Stephanie)였다. 그녀는 “2주에 한 번 도시락을 사서 공원에서 식사를 한다”며 “이런 휴식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40대 주민 실비아(Silvia)는 “건너편 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매일 공원을 지난다”고 했다. 그녀는 “공원에 분수대와 개울, 놀이터, 산책로 등 다양한 옵션이 있어 아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산책로에선 80대 할머니들이 다정하게 걷고 있었다. 30년째 이 구역에 살고 있다는 린(Lynn) 할머니는 “남편이 휠체어를 타고 있어 낙엽이 없는 계절에는 남편과 이 길을 자주 이용한다”며 “사람들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아이들은 축구를 하고, 가족이 소풍을 온다”고 했다.
공원 방문자 센터에 따르면 하루에 많게는 800명에 이르는 시민이 이곳을 찾는다. 센터 직원 브리짓(Bridget)은 “사람들이 이 공원에서 매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며 “우리는 이들에게 충분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나무를 해로운 동물로부터 보호하고, 이곳에 사는 다양한 생물을 방문자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멜버른시에서 20년간 도시숲 업무를 담당했던 이안 쉬어스(Ian Shears) 전 국장은 “더운 날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나무가 많고, 공원이 가깝고, 보행 쾌적성이 높은 도시를 선호하게 될 것”이라며 “멜버른의 도시숲 전략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립됐고, 우리는 그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멜버른=글·사진 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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